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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19.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6)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4일 페스     

아침 먹고 스케줄 점검하고 짐 정리하고 숙소를 나섭니다. 좁은 뒷골목들을 일일이 타고 돌면서 어제 봤던 블루 게이트를 다시 찾아 갑니다.

블루 게이트를 출발점으로 삼아 어제와는 다른 길로 메디나 시장을 관통해서 가방용 가죽 가공 작업으로 유명한 수아라 테너리(Tannery Chouara)를 찾아갑니다. 시장 안에는 다른 테너리(가죽공장)들도 있습니다만 이곳이 그중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있습니다. 

시장 통에 들어서니 이놈 저놈 달라붙으며 테너리? 테너리? 하고 묻습니다. 테너리 가는 길 안내해 주고 돈냥 좀 뜯어내려는 생난리 짓입니다. 어떤 친구들은 나를 “재팬?”으로 부르면서 말이죠. 어쩌다 안 되겠다 싶어서, “코리안~”이라고 대답해 주면, “오, 아리가또~!” 이러는 녀석도 있습니다. 곱게 세워 놓고 한 대 줘 박아주려다 참았죠.

열의 열 놈이 “노 머니 프리~!”라고 외쳐도 이놈들아, 니들이 무슨 기분 낸답시고 공짜로 길라잡이를 해 주겠냐? 끝에 가서 뻔뻔스럽게 손 내밀 것은 불 보듯 뻔할 뻔자. 내가 왜 이렇게 장담하느냐, 실은 엊저녁 이미 꼬맹이 한 놈에게 당했거든요. 시장 통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아주 착해 보이는 어린 녀석이 옆에 착 달라붙더니 졸졸졸 따라오면서 가게들을 지날 때마다 가게 물건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고생하는 아이가 기특하기도 해서, “응. 응.” 해 주었죠. 그냥 심심해하던 아이가 외국인 관광객에게 말이나 걸어 보자고 하는가 보다, 내버려 두다가 옆에서 하도 쫑알쫑알 떠들어대는 것이 귀찮아져서, “오케이 쌩큐, 굿바이~” 해 주며 손사래 짓으로 그만 가라고 하자 대뜸 “머니!”를 외치며 손바닥을 내밀어 보입니다. 앙증맞은 놈 같으니. 무시하려니 또 달라붙을 기세라서 별 수 없이 10디르함(천 원)을 주었습니다. 녀석은 인사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후다닥 사라지더군요.

페스의 메디나 재래시장에서는 오만 종자들이 돈 뜯어먹으려고 달라붙는다는 것, 요놈들의 친절에는 반드시 돈 요구 끝 질이 기다린다는 것, 알아두어야 합니다. ㅎㅎ     

여행지에서 과도하게 친절을 떨며 다가드는 인간들, 열의 열 모두 온전하지 않습니다. 돈을 원하거나 혹은 더 심한 짓을 하기도 합니다.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는 음료에 약을 타 먹여서 정신 잃게 한 후 돈이니 여권이니 넣어 둔 가방을 훔쳐간다고도 하잖습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홀로 여행 때는 더 각별히!

테너리 찾아가는 길 곳곳에서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별의 별 놈들 다 떼어놓으며 정신력 하나 믿고 그 혼란스러운 미로를 헤쳐 나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느 가죽 가방 가게 앞에 도착하자 점원으로 보이는 사내, 과한 친절을 떨며 안쪽에 테너리가 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라, 하면서 안내합니다. 입구 안으로 들어서니까 점원 사내가 한쪽의 소쿠리에 담겨 있던 민트 풀 두어 장 집어서 자기 코에 대어 냄새 맡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내게 그것을 건네줍니다. 테너리에서 풍겨나는 강렬한, 저네들이 천 년의 향기라고 부르는, 짐승 똥 냄새를 달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안내하던 그 친구, 갑자기 몸을 돌려 마침 입구에 들어서는 대여섯 명 단위의 관광객들에게 낼름 달라붙어서 열심히 친절을 떨어댑니다. 가방 좀 팔아먹으려면 나보다는 단체가 낫다 이거지? 이 배애신자······. 

2층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훅하고 덤벼드는 진한 똥 냄새와 함께 대단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커다란 독 크기로 숭숭 구멍을 파서 만든 둥그렇고 커다란 통 안에 비둘기나 노새의 똥으로 만든 똥물을 가득 채우고 그 안에 짐승 가죽을 담가 무두질(가죽에서 기름기를 제거하는 것)하는 장면. 가죽은 기름기가 빠져야 부드러워집니다. 각종 동물의 똥이 농작물에 훌륭한 거름 되듯이 여기에서는 품질 좋은 가죽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일까요, 자연의 이치일까요?     


#개똥참외 개똥지빠귀 말똥구리 쇠똥구리 말똥가리······ 똥은 생명이로다 


아무리 민트 풀을 코에 매달고 있다 해도 고약한 냄새를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오래 견디지 못하고는 그만 아래층으로 내려가자니 아까 친절을 떨다가 배신 행각을 보였던 그 사내, 이제는 또 찰싹 달라붙어서는 가죽가방 좀 사 달라고 졸라 댑니다.

가방 사 줄 마음, 1도 없습니다. 너는 아까 내게 모욕감을 주었어. 그렇게 배신을 때리더니 이제 와서 다시 또 친절가면을 써?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성이니라. 정성을 보여 주었으면 내가 열 개 스무 개도 팔아준다. 아까는 혼자인 나를 내다버리고 단체 사람들에게 똥파리 똥에 달라붙듯 하더니, 지금은 가방 하나라도 팔아먹고 싶다 그것이지? 닳고 닳은 이 친구는 가볍게 외면해 주고 곧바로 미로를 헤쳐 나와 숙소로 되돌아왔습니다.     

이곳 숙소에서는 1박만 머무는 것으로 했기에 정오 즈음에 체크아웃을 해 줘야 합니다. 하지만 다음 여정은 오늘 밤에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것으로 이어지다 보니 부득불 그때까지 페스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자면 배낭 짐을 숙소에다 계속 맡기는 것이 도움 됩니다. 그래서 어제 숙소 쥔장에게 내 스케줄을 얘기해 주면서 데이 오프(Day Off, 하루 숙박비의 절반을 주고 짐만 맡기는 방식) 비용 줄 테니 반나절만 짐을 맡겨 달라 했더니, 돈 더 받지 않을 것이고 배낭은 홀에 내놓으시라, 그러네요. 고맙지~! 하기야 숙박비가 좀 비쌌느니라. 1박에 4만5천 원이 뭐냐? 3만 원 정도면 딱 좋았을 방이거늘.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서 어제 먹다 남은 쿱스 빵으로 점심 요기를 해결하고 잠시 침대에 누워 쉽니다. 이제 걸어 다니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싶기도 합니다. 홀 테이블에 앉아 찍은 사진들을 노트북에다 갈무리한 후 배낭 짐 잘 챙겨 홀에 내놓고는 숙소를 나섭니다.

페스 떠나기 전의 마지막 어슬렁거림. 다시 한 번 더 블루 게이트로 가서 그 인근에 제법 널찍한 광장을 품고 있는 밥 소르파(Bab Chorfa)에 이릅니다. 메디나 시장 일대를 감싸고 있는 옛 성곽입니다. 

성문을 나가서 찻길을 따라 동북쪽으로 더 가면 고대 무기류들이 전시 중인 박물관이 있다는 옛 성곽 북 보르(Borj North)가 있고 거기서 더 가면 고대 무덤과 유적지로 유명한 메리니데 묘지(Tombeaux Des Merinides)가 있다는데, 내가 무슨 유적지 관광하러 다니는 놈도 아니고 가 봤자 심드렁한 사진만 찍어 올 것이 뻔합니다. 사진책자 만들 일 없을 뿐더러 그곳까지 일일이 갔다 오려면 오늘 여정 시간에 금이 갑니다. 더 재미있는 곳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반대쪽을 가야 합니다. 성문에서 발걸음을 돌려 숨 좀 고른 후 메니나 시장을 향해 돌진합니다. 너무도 자주 만나는 메디나. 기념품도 한두 점 사 가면서 아침처럼 시장 구경을 실컷 즐깁니다. 숙소 쥔 사내가 그려 준 지도를 보면서 시장 통 우측 길을 따라 가다 보니 고풍 찬연한 자태를 뽐내는 7백 년 역사를 지닌 이슬람 전통 학원, 아타린 마드라사(Al Attarine Madrasa)가 나옵니다. 대학교 급의 학교가 시장 안에 있다는 것은, 학교가 원래 이곳에 있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상점들이 늘어나다 보니 학교가 시장터 안에 가두어진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시장터가 늘어난 만큼 인간의 지식도 늘어났을까요? 

건축미만 잠시 즐기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남쪽 길로 방향을 잡습니다. 유기 가게들이 즐비한 세파린 광장(Seffarin Square, 30평 공간 정도의 작은 광장)이 나를 맞이합니다.

어디선가 땅땅거리는 소리. 유기 장인이 작은 쇠망치로 유기를 다듬고 있습니다. 구경하면서 잠시 발 쉼도 합니다. 유기장 옆에 앉은 중늙은이는 나를 심드렁하게만 바라봅니다. 니가 그렇게 구경만 하지 물건 사갈 놈 아니다, 척 보고 안 것이죠.

















광장을 지나 동쪽으로 계속 가자니 마침내 그 좁고 좁은 시장거리가 툭 끝나고 느닷없이 넓은 공간이 나옵니다.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도랑 하나. 물길을 가운데 둔 채 좌우로 생소한 모습의 가옥들이 쪼로록 연이어 붙어 마을을 이루고 있는 정경. 산책하기에 딱 좋은, 희한하게 생겼으면서 너무도 예쁜 마을입니다. 분명히 페스에서 쳐 줄 만한 공간이겠다 싶습니다.

갑자기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맞아서 부담될 정도는 아닌 비인지라 시원타 여기면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도랑물줄기가 끝나는 복개 다리가 나오는 곳을 지나 더 나아가면 메디나 시장의 또 다른 입구, 알씨프 광장(Place R’cif)이 나옵니다. 

여기는 메디나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리 좌판 상인들의 터인가 봅니다. 오래된 모스크가 쓸쓸히 내려다보는, 비에 젖어 있는 광장 풍경이 내 마음도 축축하게 하는군요. 이제 페스 여정을 마무리할 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광장을 벗어나니 재래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걷어지면서 군데군데 끼끗한 카페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 곳에 들어가 민트차 앗타이 한 잔을 주문해서 마십니다. 향긋한 냄새, 달달한 차 맛에 피곤이 가시는 듯합니다. 차 값은 10디르함, 천 원.

숙소에 돌아와 장거리 버스 이동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양말도 새것으로 갈아 신었습니다. 입고 신었던 속옷과 양말은 지퍼봉지에 넣어 두었다가 형편 되는 다음 여정지에서 세탁하기로 합니다. 이제 홀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 열어서 방금 전까지 찍었던 사진들 정리하는 것으로 시간 때우며 쉽니다.

이윽고 떠날 시간이 되었고 숙소를 나서서 택시 잡아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비오는 밤 8시 30분. 남행 버스에 몸을 싣고 눈을 감습니다. 콧노래가 새어나옵니다. 김수희의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 가락. 버스는 밤새 달리고 달려서 내일 이른 아침 6시 즈음에 메르주가(Merzouga)에 도착하겠죠. 이제 B612를 꿈에서 만나자고 잠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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