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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0.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8)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6일 메르주가~마라케시     


이른 아침 6시 즈음 잠에서 깨어나 천막 침소에서 나와 하늘부터 올려다보니 어젯밤마냥 구름 덩어리들이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지는 것, 벽돌 초콜릿 덩어리 녹여 먹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떠날 준비를 마칩니다. 이른 시간에 미니버스(관광객 상대로 개인이 운행하는 대절 차량) 타고 마라케시(Marrakech)로 건너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메르주가의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이스마엘은 아직도 꿈결에서 헤매는지 기척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녀석을 기다리는 중에 동녘 하늘이 동살로 발갛게 물들여지기 시작합니다. 어제 밤 별 보기가 절반의 성공이었다면 이 일출만큼은 근사해야 할 텐데, 기원하는 심정으로 캠프에서 나와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립니다. 이윽고 작은 점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빨간 불덩어리가 점점 커집니다. 하늘의 구름 덩어리들도 슬금슬금 비켜 주니 멋진 일출을 기대해도 되겠다 싶습니다. 과연, 어마무시한 장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출이라고, 뭔가 영롱하고 심오한 기운을 뿜으며 해는 조금씩 머리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동녘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붉게 태워 댑니다.

“사막에서 맞는 일출이라, 멋지구나!”     

이스마엘이 언제 일어났는지 밖에 나와 나를 찾습니다. 출발 준비 다 했느냐를 묻더니 곧 사륜 바이크가 도착할 것이다, 그것 타고 나가면 된다, 일러 주고는 일출 배경으로 이리저리 내 사진을 찍어 줍니다. 

5분도 되지 않아 바이크 소리가 모래 구릉 너머에서 들려옵니다. 얼른 침소에서 배낭을 꺼내들고 나와 보니 어제 아침 식사를 챙겨주던 무하메드가 올라타 있네요. 나 때문에 이른 이 시간 숙소에서 사륜바이크를 몰고 온 것입니다. 고맙고 미안하고. 무하메드는 씩 웃으며 얼른 타기나 하라고 손짓합니다. 잠시 기다려라, 하고는 캠프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파스칼 일행과 작별을 해야 할 텐데. 녀석들의 침소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고양이 소리로 가르릉 가르릉 들립니다. 그래, 그냥 이렇게 작별이다, 인생은 쿨 하이 쿨 바이(Cool Hi Cool Bye), 인연이 이어지면 다시 또 보겠지.

이제 배낭에서 이것저것을 꺼내고는 이스마엘을 부릅니다. 이스마엘에게 작은 캠코더와 4K 액티브 카메라, 충전기들, 그리고 알뜰하게 플래시까지 챙겨서 건네주었습니다.

“이놈들 아직 솜털도 안 빠진 새것이다, 잘 써라~”   

이번 여행에 쓰려고 새로 장만한 것들인데 핸드폰 카메라보다 해상도가 떨어지는 것들, 가지고 다녀 봤자 짐만 됩니다.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스마엘은 땡 잡았다는 표정으로 고마워합니다. 이스마엘과는 덥썩 포옹과 부비부비 뺨따구 인사로 작별을 고하고 이제 모하메드 등에 껌딱으로 착 달라붙습니다. 

모하메드는 얄라~!를 외치며 바이크를 몰아 달립니다. 나도 힘차게 얄라~!를 외치며 거리낄 것 없는 기분으로 괴성을 질러대 봅니다. 모하메드는 내게 자기를 꼭 끌어안으라 단단히 일러 주고는 일부러 경사가 있는 곳만 골라 바이크를 몰아댑니다. 그렇게 녀석은 우리가 타고 있는 바이크가 허공으로 붕 날아올랐다가 반대 경사면으로 와락 떨어지도록 하는 신공을 틈만 나면 펼쳐 보입니다. 그때마다 얄라와 환호를 계속 짖어 대다 보니 정신이 너무도 시원해집니다!       

어렸을 때 「사하라 특공대」라는 제목의 외화 TV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사하라에서 지프 한 대로 독일 전차들과 맞붙어 용감하게 싸우는 미군 특공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지요. 기억에 남는 것 중에서 특공대가 모는 지프가 사막 위를 붕붕 날아다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보기 좋았던 어린 나, “나도 크면 저거 꼭 타꼬야~” 하고 속다짐을 하곤 했었는데, 이만큼 나이 먹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 비록 기관총 달린 지프는 아니지만 이렇게 사륜바이크를 타고 붕붕 날아다니고 있습니다그려.

격한 사륜바이크 주행 끝에 호텔로 돌아왔더니 이스마엘의 큰 형 되는 압둘라가, 이스마엘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이스마엘이 주라고 한 것이 있다, 내게 신문지로 싼 둥그런 무엇인가를 건네줍니다. 신문지를 까 보니 생짜 돌덩이가 나오고 두 조각으로 갈라진 채 드러내 보이는 돌 안쪽에는 보라색 원석이 번쩍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돌이 크리스털이나 혹은 재수 좋으면 다이아몬드를 품고 있는 그런 사막 돌이라고 합니다. 카메라니 뭐니 받았다고 자기도 선물을 챙겨 주는 것입니다. 심성 착한 녀석.     


#돌은 보석을 품거늘 내 마음은 보석은커녕 돌도 품지 못하나  


숙소 홀에 두었던 배낭을 찾아서 메고 나서자 SUV 시동을 걸어 놓고 있던 무하메드는 얼른 차에 타라고 합니다. 이제 차는 황량한 메르주가 마을을 벗어나 어제 들어왔던 길 반대쪽으로 열심히 달립니다. 그렇게 20분 정도 달리니 내가 어제 새벽 메르주가에 왔을 때 버스에서 내렸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이스마엘이 얘기해 준 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더군요. 버스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 다른 캠프에서 놀다 나오는 관광객들인 모양입니다. 버스 기사는 나를 20분이나 기다렸다고 얼른 가자며 서둘러 차 뒤쪽 문을 열고 짐칸에다 내 배낭을 싣고 나서는 이스마엘이 부탁해 왔다며 내 자리로 조수석 넓은 자리를 내줍니다. 실은 내가 ‘이코노믹석 증후군’을 살짝 가지고 있다, 내가 타야 할 차편이 미니버스라면 공간이 조금은 더 넓은 조수석을 부탁하자, 했던 것을 이스마엘이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착하고 고마운 친구입니다. 

무하메드와도 작별을 나누고 이제 버스는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꿈결 같았던 사하라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이제 마라케시를 향해 10시간 동안 달리고 달려야 합니다.

오늘 저녁 전에 도착하면 참 좋겠다 싶은 것이, 마라케시에서 묵지 않고 곧바로 라바트(Rabat)로 이동하는 것이 일정상 좋기 때문입니다. 미리 확인해 본 마지막 기차 출발 시간이 저녁 7시 20분이니까 미니버스가 열심히만 달려 주면 바라던 대로 될 수 있습니다.

가는 도중 웨스턴 하이 아틀라스 국립공원(Western High Atlas National Park)이 멀리 보이고 그곳에는 많은 설산 봉우리들이 들어 차 있습니다. 사막에 무슨 설산이랴 하겠지만 사하라 서쪽 끝에 설산들이 무수히 있다는 것, 희한합니다. 그 설산 여러 개를 가파르게 넘고 넘으면서 올겨울 첫눈을 이 아프리카 땅에서 맞습니다.

눈 내리고 비 내리는 설산들을 넘느라고 마라케시에는 예정보다 2시간 더 늦은 밤 8시 30분 즈음에 도착했습니다. 결국 라바트로의 이동은 내일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기차역 맞은 편 레스토랑에 들어가 먹을 것을 주문하고는 근처 숙소를 검색해서 예약합니다. 기차역 근처인지라 가격이 만만찮습니다.

늦은 시간의 저녁 요기는 얼큰한 닭고기 스튜 타진(Tajine, 대표적 모로코 전통 음식)과 양고기 꼬치구이 딘데(Dinde)로 해결합니다. 타진은 주로 닭고기를 갖은 양념으로 쪄내는 것인데 이게 빵과 같이 먹으면 맛이 훌륭합니다. 딘데는 양고기 특유의 달달한 맛을 내며 입에서 그냥 녹습니다. 제법 맛있는 음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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