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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0.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9)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7일 마라케시~라바트     


어제 묵은 숙소는 아파트형 호텔이었습니다. 근방에서 가장 싼 것을 찾았는데도 1박 비용이 4만 원입니다. 그 대신 그라나다에서부터 구경하지 못했던 히터가 마침 있어서 묵은 빨랫감들을 밤늦게 빨아 널어 놓았는데도 아침 되어 보니 잘 말라 있더군요. 그것은 참 좋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 잘 챙기고, 빼놓고 가는 것 없나 재차 둘러보고 숙소를 떠납니다. 기차역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5분 거리. 여유 있게 도착했으니 기차표는 쉽게 샀습니다. 라바트행 첫 기차가 7시 50분입니다. 라바트까지는 3시간 40분 걸립니다. 그렇다면 라바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카톡 문자를 보내야 합니다. 어제 내내 언제 오냐고 보채던 친구입니다.

‘이따 11시 30분에 도착하니까, 나와라~’

곧바로 OK 문자가 뜹니다.     

기차를 타려고 개찰구를 들어서는데 개찰원이 내 표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시간이 잘못 된 것입니다. 깨알만 한 숫자를 다시 들여다 보니 5:50으로 되어 있습니다. 개찰구 직원은 급히 나를 안내해서 다시 매표구로 이끌어댑니다. 그리고는 매표원을 향해 으르렁대면서 빨리 새 표를 끊어라 마라 호통을 칩니다. 매표원 녀석, “어라? 이게 왜 그렇게 됐대유?” 젊은 놈이 벌써 노안이 왔나, 어디서 개구리 배영치는 소릴······.

개찰구 직원의 친절한 도움으로 제대로 된 표를 다시 받아 기차에 오릅니다. 그리고 라바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

같은 객실을 쓰게 된 영국인 부부와 수인사 나누고는 각자 그동안의 여정 이야기를 풀어가며 지루함을 달랩니다. 때로는 훌륭한 여행 정보들이 교환될 수 있기에 이런 대화는 여행자들에게 퍽 유익한 플랫폼이 되기도 합니다. 유쾌했던 두 친구는 중간 기착지 카사블랑카에서 내리더군요. 이내 몸은 한참을 더 달려서 라바트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역을 나서니 4살짜리 아들 하나 둔 서른둘 나이의 돌싱 여인이 나를 반깁니다. SNS에서 알게 된 친구로 이름은 하담.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말을 공부하고 있는 이 친구의 이름은 원래는 파티마(Fatima)인데 여름을 좋아한다고 하는즉 ‘여름 연못’ 뜻을 가지면서 또 원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도록 한 하담(夏潭)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 주었더랬죠. 하담과 나는 아이를 데리고 근처 햄버거 파는 가게로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 요기를 때웠습니다.

하담의 아이는 이름이 재드(Jad)입니다. 햄버거는 먹지 않고 감자칩만 집어서 먹습니다. 집어든 감자칩은 절반만 먹고는 나머지는 후딱 버리고 다시 새것을 집어 듭니다. 그런 아이의 행동. 연신 분주합니다. 계속 무슨 말인가를 웅얼거립니다.

아이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하담은 이 아이가 자폐증으로 진단받자 곧바로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답니다.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자폐증 아이를 혼자 힘들게 건사하며 사는 이혼녀이다 보니 마음이 참 짠해지는 여인입니다.      


라바트에서의 일정은 2박 3일입니다. 내 숙소를 물어오던 하담은, 호텔 같은 곳 들어가지 말고 그냥 자기 아파트에서 지내라고 합니다. 여비를 절약하라는 것이죠. 고민되는 것이 그 제안을 거절하면 혹여 하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즉 자폐증 아이를 피하려는 것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담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일단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하담의 집으로 가서 내 짐을 풀었습니다. 하담은 외곽 먼 곳에 지어진 허름한 아파트에 삽니다. 집 내부 상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 난감하다 싶도록 어지럽습니다. 일단 옷가지며 생활도구가 정리정돈과는 전혀 멀게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아이 상태 때문에 정리정돈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이가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서 흔들고 던지고 하니 말이죠. 심지어 주방은 열쇠로 문까지 잠가가며 사용합니다. 칼이고 불이고 있는 곳에 아이가 자칫 들어가서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욕실 문의 손잡이는 아예 빼놓았습니다. 욕실 안 샤워 꼭지 역시 떼어 놓은 상태입니다. 작은 침실에는 더블침대와 옷장, 행거가 비좁게 들어 차 있고 침실보다 더 작은 거실 공간에는 소파 하나에 장방형 테이블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그 흔한 TV도 PC도 없습니다. 아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하담의 가난이 더 큰 요인이겠다 싶습니다.

하담은 아이를 주말 이틀 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장애아동 전용 유아원에 맡기고는 아이를 맡기고 찾는 시간에 맞추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증권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합니다. 그러니 얼마 되지 않을 월급으로 어찌 넉넉하게 살겠습니까? 공연히 폐 끼쳐 주게 된 듯해서 자꾸 마음 불편해집니다.

그런 눅눅한 기분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3시 무렵 즈음 되어서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빨리 가자며 하담은 싸구려 합승 택시를 잡습니다. 연식이 거의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고물 택시에 우리 셋은 다른 사람 두 명과 끼어 앉은 상태로 라바트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중앙시장(Central Market)으로 달려갑니다.  

재래시장이야 더러운 곳도 있고 깨끗한 곳도 있고 좋은 냄새도 나고 불편한 냄새도 나고, 호객하는 소리에 흥정하는 소리에 다투는 소리에, 그런 시끌벅적한 것을 진풍경으로 삼는 공간이죠. 활력인 것입니다. 라바트의 재래시장. 오픈 공간에도 수크 공간에도 물품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라바트는 한 나라의 수도답게 대단한 생산력을 지닌 도시임에 분명합니다.

시장 상인들의 호객 소리는 낭랑합니다. 물건을 꼭 팔아야 한다는 절박감보다는 즐기는 듯 명랑함이 배어 있습니다. 물건 파는 것보다 손님과의 대화를 즐기려는 듯해 보입니다. 살면서 외롭지 않으려는 것이겠다 싶습니다.

시장 구경을 마친 후 다음은 무어인들이 만든 안달루시아 정원(Andalusian Gardens)을 찾아갑니다. 성곽 안에 꾸며진 정원은 아담하고 예쁘기만 합니다.

이슬람 문화는 예쁘고 정교하고 따뜻한 느낌을 풍깁니다. 반면 가톨릭 문화는 장대하기만 하다가 끝내는 권위적인 느낌을 풍기죠. 그런 점들을 볼 때 나는 이슬람 문화에 점수를 더 주고 싶습니다.  

대서양을 만나러 해변으로 향하는 길에 대단한 곳을 거치게 됩니다. 바로 이슬람식 마을 형태(Kasbah)를 예쁘게 보존하고 있는 우다야 마을(Kasbah Udayas)입니다.

 














이제 라바트 해변(Plage de Rabat)으로 내려가서 난생 처음 대서양을 만납니다. 사막 나라 베르베르족 여인과 그 여인의 아들내미를 품은 채 이 아프리카 땅에서 대서양 너머 번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것. 이 나이 되어 이런 일을 겪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해가 졌습니다. 대서양 바닷물은 검게 변해 갑니다. 우리는 해변을 떠나 도로 위로 올라왔습니다. 길 너머에 웬 묘비들이 수천 개 정도는 빼곡하게 심어져 있는 장관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담 왈, 도시 안에 큰 공동묘지를 만들어 놓는 것이 이슬람 문화라고 합니다. 우리는 명절만 되면 선산 성묘하러 그 고생고생 하면서 고향으로 달려가죠. 그런 점을 보면 이쪽 사람들의 성묘 문화가 한결 편해 보이는군요.

갑자기 민요 「성주풀이」 가사가 머릿속을 훑고 지나갑니다. 낙양 성 십리 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 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묘지를 지나니 아까 그 안달루시아 정원이 나오고 밤이 됨에 조명을 밝혀 놓은 모습, 보기 좋았습니다.

하담은 다른 재래시장을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끕니다. 따로 장 볼 것이 있다면서 말이죠. 와인을 사고 싶다고 하자 잠시 기억을 두드리더니 자기가 가려는 시장에 마침 와인 파는 가게가 있다며 그곳으로 얼른 가자고 합니다. 이 시간에는 까르푸 정도에서나 와인을 판매하고 다른 곳은 일체 판매 금지랍니다. 그 까르푸도 저녁 7시가 넘으면 와인 매장을 문 닫는다는군요. 그 대신 몰래 파는 술가게가 그 시장 안에 있으니 염려 말고 따라 오랍니다.

하담이 이끌고 간 시장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습니다. 내가 택시비를 쓸 것이니 택시를 타자고 해도 여행 중에는 돈을 아껴야지 낭비하지 마라며 고집을 피웁니다. 그래도 이 친구야, 지금 내 다리가 후들거린단 말이다, 킹~      

하담과 함께 도착한 시장은 아까 들렀던 시장보다 더 후줄근해 보입니다. 하담은 혹시 문 닫을지 모르니까 와인부터 사라면서 어느 허름한 건물 앞까지 나를 데리고 가서는 여자는 들어갈 수 없으니 나 혼자 들어가서 얼른 사 가지고 나오랍니다. 건물 안. 절어 있는 담배 냄새, 술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복도 끝 안쪽에 문도 벽도 없는 술 가게가 보입니다. 와인 두 병을 주문해서 값을 치르고 있자니 술 가게 좌우로 붙은 빠 바깥 복도에 서 있던 관상 지저분한 젊은 사내놈들이 계산대에 서 있는 나를 힐긋거리면서 저네들끼리 수근거립니다. 딱 보니 동네 양아치들이다 싶습니다. 잠시 후 한 놈이 다가와서 꺼떡대며 거친 투로 말을 걸어옵니다.  

“헬로우, 차이니스?”

페스에서도 마라케시에서도 재패니스냐 차이니스냐 많이들 물어왔죠. 일본 사람들은 오래 전 아프리카에 들어왔기에 인식상으로 우선권이 있을 것이고, 중국 사람들은 최근 들어 중국 정부가 아프리카 땅에 하도 돈을 풀어 대고 또 중국 여행객들이 넉넉해진 차이나머니 앞세워 떼로 몰려오다 보니, 아시아 사람 하면, 일본인, 중국인, 그 다음에 한국인, 이런 순서가 형성된 것이리라 봅니다.

“코리언.”

마지못해 대답해 주고는 쥔이 내주는 와인 병 담긴 봉투를 집어 들고 돌아서자, “헤이, 웨잇~!” 하고 외칩니다.

네놈이 서라 해서 내가 설 놈이냐,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아? 그냥 무시하고 건물을 나섰습니다. 쫓아 나와서 어쩌고저쩌고 계속 엉겼으면 들고 있던 와인병으로 후려쳐 줄 생각이었죠만, 녀석은 그것으로 끝이었는지 더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재드를 품에 안고 옹송그리고 있던 하담은 내가 무사히(?)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활짝 웃으며 나를 끌어 서둘러 그곳을 벗어납니다. 그렇게 이끌려 간 곳은 시장 내 행상 거리였고 하담은 그곳에서 닭고기 조금과 야채 이것저것을 적당한 양으로 삽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먼저 트램을 타고 최대한 외곽으로 나가서는 그곳에서 낮에 탔던 합승 택시를 타는 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하담은 세탁물 내놓으라고 합니다. 욕실에서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샤워하는 중에 하담은 재드에게 우유와 비스킷을 주어 그것 먹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고는 주방에서 요리를 합니다.

샤워 후 거실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 앱으로 텐지어(Tangier)에서 묵을 숙소를 찾아보고, 노트북에다가는 오늘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갈무리합니다. 내 앞 테이블에 붙어 서 있는 재드는 웅얼웅얼 괴성을 끊임없이 내뱉으며 비스킷을 우유에 찍어 먹습니다. 아이는 일 분 일 초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먹으면서도 계속 몸을 움직이고 어떤 때는 몸에서 나오는 열기를 참지 못하는지 느닷없이 벽으로 달려가 쿵 쿵 머리를 찧기도 합니다. 오늘 낮에 돌아다니던 중에도 걸핏하면 신을 벗어 내던지곤 한 것이 바로 같은 이유입니다. 하담은 요리하는 중에도 수시로 재드에게 달려가 아이를 달랜다, 뜯어 말린다, 고생입니다. 고생이 아니라 거의 전쟁에 가깝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주말 내내 둘이 집에 있으면서 하는 행동들이겠다 싶기에 지켜보는 내 마음은 내내 먹먹해져야 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노트북을 덮고는 내가 재드를 붙잡고 상대해 줍니다. 아이는 낯선 사람의 손길을 아직은 거부합니다. 잡아주면 뿌리치고 비스킷을 먹여 주려면 자기 손으로 잡아채어 먹고······.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중에 요리가 다 되었는지 하담이 웃는 얼굴로 요리 접시를 들고 거실로 나옵니다. 하담이 나를 위해 만든 요리는 쿠스쿠스(Couscous)라는 모로코 전통요리입니다. 베이지색을 띤 쿠스쿠스가 담긴 큰 접시가 내 앞에 놓여 집니다. 하담은 곧 내 옆에 앉아 자기 손으로 요리 한 줌을 집어 들어 주물럭주물럭 작은 덩어리를 만들어서는 곧장 내 입에 넣어줍니다. 그것이 쿠스쿠스 먹는 방식이랍니다. 시장에서 산 와인도 맛을 봐야죠. 한 병 따서 하담과 건배하고는 쿠스쿠스 시식에 들어갑니다. 내 입맛에는 어제 마라케시에서 먹은 칼칼한 타진이 더 맞다 싶은 것이, 이 쿠스쿠스는 맛은 조금 고소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밋밋합니다.     

라바트 외곽의 허름한 아파트 거실. 자폐증 아들을 힘들게 건사하며 가난하게 사는 한 여인과의 자연스럽지 않은 자리. 여인은 내게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받는 나로서는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늦은 저녁 식사 후 아이는 지쳐 곯아 떨어졌습니다. 원래 잠자는 시간은 저녁 7시인데 오늘은 무려 밤 10시가 되도록 잠을 못 잤고, 또 낮에는 엄마 손에 이끌려 라바트 시내 여기저기를 쏘다녔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어느 순간 스르륵 무너지더니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하담과 나는 남은 와인을 천천히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담은 고개를 숙입니다. 곧 가녀린 두 어깨가 흔들립니다.

“저 아이가 제 아들이랍니다. 미안해요.”

와인에 취하고, 여인의 눈물에 취하고, 여인의 모진 현실에 취합니다. 그렇게 라바트 외곽 어느 허름한 아파트 거실의 밤이 흐느끼듯 깊어갑니다.      


#술은 기쁨과 슬픔을 주지만 현실을 주지는 못한다     


12월 8일 라바트     


북아프리카 유일의 왕국 모로코. 그 나라의 수도는 이곳 라바트입니다. 전통이 강렬하게 살아 있는 곳입니다.

일요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정도는 여정 관리 차원에서 웬만하면 쉬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담은 나를 이끌고 다시 시내로 가자고 보챕니다. 오랜만에 접하는 사내인지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시간을 만들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 대신 오늘은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기로 하고는 쿱스 빵과 민트 차로 가볍게 아침을 때운 후 재드를 데리고 시내로 향했습니다. 하담은 더 재미있는 시장이 있다며 어느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라바트 구시장(Rabat Old Market)이라는 곳입니다. 어제 들렀던 중앙시장에 비하면 한결 더 옛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시장이군요.

내 고등학생 시절,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중앙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을 자주 가곤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장 풍경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온갖 짐승들 육류가 도축된 채로 혹은 살아 있는 채로 팔리고 야채에 생선에 생활용품에 옷에 신발에 등등을 구경하는 것이 퍽 재미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마음에 남아 있는 기억이 두 개 있습니다.

시장 입구로부터 한 50m 정도 즈음 되는 곳에 개를 파는 가게가 있었고 개장수는 젊은 사내였습니다. 어느 날, 한동안 뜸하던 끝에 오랜만에 시장 구경하러 갔습니다. 역시나 와글와글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 있는 중에 개 파는 가게도 지나치게 되는데 못 보던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연분홍 치마에 색동저고리 차림, 그리고 입술은 시뻘건 루즈로 떡칠하고 얼굴에는 밀가루를 뒤집어쓰기라도 했는지 새하얀 분칠 얼굴의 젊은 여자가 개들을 바글바글 우리에 가둬 놓은 가게 안, 개장수 사내 옆에 붙어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얼마 전 혼인을 치러서 신혼 중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개털 난무하는 그 숭악한 공간에는 가히 어울리지 않겠다 싶은, 하지만 신혼이랍시고, 너무 지나치게 모양을 낸 예쁜 색시의 모습. ‘아~!’ 어린 고딩 녀석이 신혼의 개장수 커플을 보고 무엇인가를 느끼던 순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기억. 정말 내가 좋아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 즈음은 어디에서든 지게꾼을 쉽게 볼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신당동 중앙시장에도 손님들이 구입한 무게 나가는 물건을 지게로 져 날라 주는 것으로 생업을 삼던 지게꾼들이 많았습니다. 그 지게꾼들이 사 먹는 밥이 있습니다. 우거지 국밥인 그것을 지게꾼들은 ‘지게 밥’이라 부르면서 먹었습니다. 1980년 전후, 당시에 학생용 버스 토큰 값이 60원인가 70원인가 할 때입니다. 그때 지게 밥 한 그릇 값이 백 원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천5백 원 정도 하겠네요. 어쨌거나, 그것에 내가 맛을 들였던 것입니다. 당시 서울 유학생으로 자취를 하던 나로서는 밥 해 먹기 귀찮을 때마다 돈 백 원 들고 찾아가곤 하던 단골 코스였습니다.

국밥집 할매가 어느 가게 앞 빈 공간에 좌판을 벌여 놓고 큰 솥에다 우거지 국을 잔뜩 끓여 놓았다가, 지게꾼들이 밥 먹으러 찾아오면 바로 뚝배기에다 밥 한 덩어리 넣고 국을 담아서 그 위에 김치 몇 점씩 얹어 주었죠. 그러면 지게꾼들은 여기저기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 국밥을 후후 불어 가면서 아주 맛있게 먹곤 했습니다. 그중에는 막걸리를 한 잔씩 걸치는 사람도 있었고요. 나 역시 그 국밥 사 먹기를 좋아했습니다. 지게꾼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가지고는 같이 시시덕거리면서 국밥을 아주 맛있게 먹곤 했습니다. 그 지게꾼 아저씨들은 처음에는 별 놈 다 본다, 여기더니만 나중에는 조카 대하듯 친근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가끔 막걸리도 한 잔씩 주고 말이죠. 아직도 눈에 선연합니다. 지게 밥 먹던 그 사람들 눈가에 잡혀 있던 행복한 웃음 주름.

재래시장 싫어하는 사람이야 드물겠지만 나는 그 두 가지 기억 때문인지 언제나 재래시장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 아니더라도 재래시장에는 일단 활력이 넘치잖습니까? 사람 사는 진짜 모습들인 것이죠. 그래서 외국 여행 가서도 빠짐없이 그곳 재래시장을 찾아가곤 하는 것입니다.      

시장을 나와서 트램 타고 시내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라바트 중심지에는 모로코를 상징하는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잠시 코르시카로 망명까지 하는 등 모진 시기도 겪었지만 마침내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사람으로 왕이 되어 모로코를 다스렸던 군주가 있었으니, 바로 무하메드(Muhammad) 5세입니다.

그가 1961년 서거하자 아들 하산 2세가 왕위를 승계했고(현재 왕은 손자 무하메드 6세), 모로코 국민은 선왕의 생애를 기리고자 라바트에 묘를 안장한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찾아 갈 하산 광장(Jardin Tour Hassan)이 그것입니다.

광장 입구부터 전통 복식차림의 근엄한 위병들이 서 있어서 이곳이 엄중한 곳이라는 것을 느낄 만합니다. 광장 안쪽의 탁 트인 공간이 무척 시원해 보입니다. 게다가 멀리로는 대서양이 들락날락하는 포구도 보이는 것이 관망 참 좋습니다.

무하메드 5세의 주검이 안치되어 있는 건물 안에도 들어가 봐야겠죠. 그의 관은 황금빛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옛 이집트 파라오들의 피라밋이 부럽지 않겠다 싶습니다그려.

광장을 떠나 근처 호젓한 곳을 거닐다가 조용하다 싶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늦은 점심밥을 먹습니다. 하담은 내가 계산하는 것에 상당히 미안해합니다. 나는 그저 다정하게 웃어 주며 괜찮다, 여비는 충분하다, 안심시켜 줍니다. 재드도 이제는 내가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걸을 때 내 손도 잡고 때로는 품에 안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웅얼거림과 걷다가 신발 벗어던지기는 여전해서 곧잘 애를 먹이곤 합니다. 레스토랑에서는 조금 비싼 서양식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담과 재드를 위해서입니다. 음식을 먹는다, 번잡 떠는 재드를 말린다, 어쩌고 하면서 겨우 밥 먹기를 마치고는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제처럼 트램 타고 어느 곳에 내려서 합승 택시 타는 식으로 말이죠.


집에 돌아와 샤워부터 하고 나서 재드를 맡아 봅니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하담은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옥상에 내다 걸고 등등 집안일을 처리합니다. 재드는 이제 내가 제법 익숙해졌는지 자주 눈을 맞춰 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를 꼭 안아 주면 아이는 어제처럼 거부하지 않습니다. 기분이 흐뭇해집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이렇게 예쁜 아이가 어쩌다 몹쓸 병에 걸렸을까, 그 생각하면 다시 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집안일을 마친 하담이 재드를 건네받았고 나는 노트북 열어서 어제 오늘 사진 갈무리에 페이스북 업로드에 그동안 들어와 있던 이런 저런 이메일 들여다보기 등을 해치웁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자 하담은 어제 사서 쿠스쿠스 요리 만들고 남은 닭고기를 가지고 다른 요리를 만들어 냅니다. 야채도 넣고 향료도 넣고 하면서 푹 쪄내는 요리였는데 와인과 함께 먹기 좋았습니다. 식사 후 하담이 설거지하는 동안 내일 일정을 점검해 봅니다. 다음 코스 탠지어에서는 하루를 묵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탠지어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페리를 타고 스페인 땅 타리파(Tarifa)로 넘어가서 거기에서도 곧바로 세비야(Sevilla) 가는 버스를 잡아타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탠지어에서 하루를 제대로 쉬어야겠다 싶습니다. 이곳 라바트에서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녁 예약한 탠지어 숙소 위치를 구글 맵으로 확인하고 다음 날 탈 페리도 표 예매해 둡니다.

늦은 밤. 하담과 재드는 벌써 잠에 들어 있습니다. 라바트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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