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철 Jong Choi May 20.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0)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9일 라바트~탠지어     


아침이 되었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나서 배낭 정리를 하고 있는 중에 하담도 부스스 일어나 거실로 나옵니다. 하담 왈, 오늘은 오후 시간만 일할 것이다, 잠시 후 재드를 유치원에 데려다 준 후 다시 집에 돌아올 것이다, 그런 후에 기차역에 같이 가서 탠지어 가는 기차 편을 챙겨 주마, 그럽니다. 오늘은 1시간 일찍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기로 했고 9시면 돌아올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랍니다. 라바트에 오기 며칠 전 라바트에서는 월요일 떠날 것이다, 알려 주었더니 미리 이것저것 맞춰 놓은 모양입니다.     

재드와 헤어지기 전 한 번 아이를 품어 주었습니다. 하담이 재드를 데리고 집에서 나간 후 이제 기다리는 2시간 동안 할 일이 있습니다. 집안 대청소입니다. 재드가 거실이고 방이고 바닥 여기저기에 우유를 흘리고 다니겠다, 과자도 씹다가 퉤퉤 뱉어서 바닥 곳곳에 과자 파편이 달라붙어 끈적거리겠다, 거기에 하담 이 친구도 정리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인지 주방도 거의 난장판 수준입니다. 싱크대에 별의별 지저분한 것들이 잔뜩 묻어 있고 그릇들도 정신없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습니다. 욕실의 세탁기도 비뚤하게 구석에 밀쳐 놓은 상태이고 각종 욕실용품들은 벽 거치대 일체 없이 그냥 바닥에 아니면 세탁기 위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습니다. 어딜 둘러보아도 사람 사는 공간이 절대 아니다 싶을 정도입니다.

일단 바닥부터 소 혀로 솨악 핥듯 물걸레 청소를 하고 나서 주방 식기 정리, 싱크대 청소, 각종 쓰레기 몽땅 모아서 큰 비닐봉투에 담기, 욕실 정돈하기, 방 안 옷가지 일대 정돈 후에 제자리에 각 잡아 놓기······. 그 정도 하고 나서 보니 한결 나아져 보입니다. 온몸에 땀이 흥건하기에 샤워 한 번 다시 하고는 하담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시간이 되어 하담이 부랴부랴 들어오네요. 집안 꼴 달라진 것 보고 놀랍니다. 

하담은 나를 끌어안고 풀어 주지 않습니다. 재드는 커 가면서 괜찮아진다, 자폐증 그것, 큰 병 아니다, 너도 살면서 힘들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재드를 봐서라도 강해져야 한다······. 하담은 고개를 당차게 끄덕입니다.

“걱정말아요. 해낼 수 있어요.”

다시 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침 시간을 많이 까먹었으니 만큼 이제 서둘러 기차를 타야 합니다.

“가자.”

우리는 합승 택시로 기차역까지 가서 딱 좋은 시간의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하담은 아련한 눈길로 다시 안겨 옵니다.

“하담, 재드와 행복하게 살아야 해.”

하담은 급히 제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담은 비닐 봉투를 꺼내 건넵니다. 자기 엄마가 시골에서 아르간 오일을 만들어 판다며 그 오일을 한 병 담아 주는 것이랍니다. 나는 하담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하담의 손을 잡은 내 손 안에는 많지는 않지만 유로 지폐가 접혀 있습니다. 손을 떼면서 그것을 하담의 손으로 쥐도록 해 줍니다. 돈임을 느끼고는 거부하려는 하담의 눈길. 하지만 다시 두 손으로 하담의 손을 감싸 주면서 웃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담과 작별합니다.     

라바트가 나를 붙잡습니다. 하담의 눈물이 나를 붙잡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중 뿔낼 일 있겠습니까? 나중에 형편 되는 대로 가끔 돈이나 부쳐 주는 것이라면 몰라도 내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당장 저 둘을 위해 여기서 혹은 한국으로 데려가서 해 줄 일,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 무슨 약속을 해 봤자, 어차피 현실성 없는 얘기일 뿐입니다. 미안하고 괴롭다는 생각에 그저 아랫입술만 꽉 당겨 뭅니다. 

그렇게 라바트와 하담과 작별하고 텐지어로 향합니다.      

탠지어는 프랑스어 발음으로 탕헤르라고도 부릅니다. 

기차역에서 숙소까지는 택시를 타야 합니다. 숙소 위치가 페스 못지않은 미로 마을에 있고 또 그곳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리는 가까워 택시요금은 우리 돈 천5백 원 정도, 기본요금만 나오더군요.

택시가 더는 못가겠다는 막다른 길이 나와 차에서 내립니다. 그곳에서부터 예약한 숙소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어찌어찌 마을 입구 같은 옛 성곽 문 안으로 들어서니 마을 껄렁이들과 잡담하고 있던 40대 중반짜리 사내가 배낭 짊어진 나를 보더니 자석처럼 달라붙습니다. 딱 보니 룸펜입니다. 내 숙소 지도를 보고는 따라오라네요. 오냐 그래, 앞장 서봐라.

사내 덕분에 숙소는 쉽게 찾았습니다. 그 친구 아니었으면 제법 애먹을 뻔했던 것이 숙소가 이 집인지 저 집인지 모르도록 서로 비슷비슷한 문을 가지고 있었고, 초인종도 없는 문마다 일일이 쥔장 이름을 불러 대어야 했을 것입니다. 사내가 뭐라고 큰소리로 외쳐 대자 그제야 젊은 쥔 녀석이 문을 열고 나를 받아 줍니다. 찰거머리 사내는 아니나 다를까 돈 좀 달라고 애걸합니다. 10디르함짜리 동전 하나 주니 바람같이 사라지는군요.

숙소는 의외로 깨끗하고 좋습니다.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셔 봅니다. 두고 온 하담이 자꾸 생각납니다. 잠시 그렇게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 추스른 후 배낭을 열고, 옷이니 세면도구니 뭐니 풀어냅니다. 그중에 하담이 세탁해 준 옷가지들. 아직 채 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세탁기로 탈수까지 했건만 이틀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습니다. 라바트가 해안 도시여서 그랬나 봅니다. 행거를 끌어다가 그 위에 걸쳐서 바람 좀 맞으라고 창문 앞에 놓습니다. 이 빨래들이 마를 때면 하담에 대한 아련한 생각도 말라 없어질까요?······.      

공용 욕실에서 샤워한 후 내일 일정 점검. 타리파 행 첫 배를 잡아타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 닿는 대로 12시발 세비야행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배 닿는 시간이 오전 11시. 입국 심사가 늦어질까 걱정입니다. 타리파 페리 터미널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거리는 2km. 심사 시간을 30분 정도 잡고 나머지 30분 동안 택시를 타든 걷든 해서 도착해야 합니다. 아슬아슬합니다. 12시발 버스를 놓치면 네 시간 더 있어야 그다음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비야에는 밤늦게 도착하게 될 것이고 하루 일정이 고스란히 덧없이 흐르게 됩니다. 물론 네 시간 기다리는 동안 손톱만한 타리파 마을을 돌아볼 수는 있겠죠. 하지만 문제는 무거운 배낭입니다. 이것을 짊어지고 어딜 돌아다니겠습니까? 쉽지 않은 행보가 됩니다. 그러니 예정대로 버스 탈 수 있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이제 쥔 사내로부터 들은 정보대로 근처 구경 나갑니다. 탠지어는 쉬러 온 만큼 여기저기 헤집고 다닐 일 없습니다. 숙소를 나서서 우선 근처 페리 터미널 가는 길부터 점검합니다. 스페인이든 모로코든(유럽의 웬만한 올드 타운들도 그렇고) 하도 미로가 많다 보니 아침에 길 잃을 일 없도록 해서 첫 배를 무사히 타자는 생각에서입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숙소를 페리 터미널 근처에 잡은 것이고요.

동선 확인 마치고 나서 이제 반대 방향에 있는 메르칼라 정원(Merkala Garden)을 찾아갑니다. 이게 말이 정원이지 가 보니 돌산입니다. 돌산 낭떠러지 바로 아래 해변 도로가 있고 도로 옆으로는 광활한 대서양이 바짝 다가와 붙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돌산에 앉아 대서양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나도 돌산 끝자락에 걸터앉아 대서양과 지브롤터 해협이 만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엊그제는 하담, 재드와 함께 대서양을 바라보았건만 지금은 혼자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돌산을 떠나 산 아랫마을의 중심이 되는 아브힐(Avril) 1947 광장으로 가 봅니다. 광장이라고 해 봤자 좁은 공간에 작은 분수대 시설 같은 것 만들어 놓고 사람들 모여 앉아 담배만 열심히들 피워 대는 공간이더군요. 담배 냄새를 피해 근처 노천카페에 들러 저녁 요기를 합니다. 하담이 해 주었던 닭고기 찜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과 함께 맥주를 주문했습니다.

알코올 들어간 진짜 맥주가 있느냐는 거듭된 내 확인에 호객꾼이 염려마라 했기에 서빙 나온 맥주를 의심 없이 마셨습니다. 맥주는 아주 작은 사이즈의 병이다 보니 몇 모금 마시자마자 벌써 빈 병입니다. 그나저나 어째 소식이 없습니다. 한 병 더 시켰습니다. 뚜껑 딴 새 맥주가 나왔습니다. 아차, 싶어서 알코올 표시를 살폈더니, 그럼 그렇지, 무알코올입니다. 쥔장 불렀죠. 호객꾼 좀 불러와라, 그 친구가 나한테 진짜 알코올 맥주 있다고 속였다, 맥주 값은 치를 수 없겠다, 말했습니다. 호객꾼 사내는 튀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상황 파악한 쥔장은 돈 받지 않을 테니 염려 말고 식사 마저 하시라, 합니다. 모로코 사람들, 착하긴 착합니다. 하지만 맥주로 기분 상한 저녁 요리가 맛있을 리 없습니다. 대충 먹고 자리 털고 일어나 시장을 끼고 있는 마을 정경을 둘러봅니다. 도중에 오늘 밤 야참과 내일 아침거리로 쿱스 빵 1개, 바나나 3개, 오렌지 1개, 물 한 병도 삽니다. 아직 해는 저물고 있지 않은 시간.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 예쁘고 작은 카페에 들러 거리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휴식을 취합니다. 

하담 생각이 또 납니다. 당분간은 힘들겠지. 하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니겠느냐. 견디고 이겨 내거라. 세차게 머리를 가로저으며 하담 생각, 이제는 내려놓자고 다짐합니다. 탠지어가 저물고 내 모로코 여정도 저물어 갑니다.

모로코에서의 8일 동안 계획에 맞춰 4천 디르함(55만 원 정도)으로 잘 버텼습니다. 사하라 투어비와 숙박비(상대적으로 모로코는 숙박비가 조금 비싼 편)가 비중을 많이 차지했고 나머지는 정신력으로 버틴 것이 주효했다 싶습니다. 커피값 계산하고 동전을 털어 보니 21디르함. 커피 한 잔 값이 15디르함 정도 하니까 내일 아침 배 타기 전 페리 터미널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시면 탈탈 다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스페인에 들어가서부터는 다시 유로 돈을 쓰겠죠. 계획대로 알뜰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널어놓은 빨래들은 여전히 습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배낭에서 드라이어를 꺼내 뜨거운 바람을 한 시간 정도 쐬어 주었더니 한결 좋아졌습니다. 미안하게도 쥔장에게는 전기세 좀 나오겠습니다그려.      

작가의 이전글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