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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월 Aug 29. 2023

3일차

1부

3일차 (1부)


7월23일(일)


철저한 준비없이 실천으로 옮겨졌던 필리핀에서의 한 달 살기를 준비하면서 ‘필리핀은 섬이니까 매일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을거야’라고 나는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마닐라에 도착하니 메트로 마닐라는 한마디로 서울과 위치적 개념이 비슷했다. 서울 시내에서 바다를 보려 인천까지 가려면 자동차를 타고 족히 1시간은 가야한다. 메트로 마닐라 시내에서도 마닐라 베이까지 가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서울에서 바다다운 바다를 보려면 강릉을 가야하고, 그럼 대략 3시간 정도 걸리는데, 메트로 마닐라에서 바다다운 바다를 보려 바탕가스까지 가면 그것도 대략 3시간 걸린다.


난 이 사실을 바다를 보러 가기 위해 그랩 택시를 타면 되겠지 싶어서 어플을 누르는 순간 알게 되었다. 준비성 없는 내가 한심스럽고, 뭐든 행동이 생각보다 먼저인 내 성향을 매 순간 망각하는 스스로가 무척 실망스러웠다. 전날 대니에게 바다를 보러간다고 약속을 하고 잠들었는데 아마 그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얘기하면 실망과 짜증이 동시에 폭발할게 분명했다. 다행히 새벽잠이 없는 내가 헐레벌떡 바탕가스를 가는 방법을 찾았고 또 그 바탕가스 지역 내에서도 그럴듯한 해변을 찾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우리의 적당한 목적지는 마따붕까이가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바탕가스를 가려면 파사이(pasay)역에서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이 바탕가스까지 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인데 객기 넘치고 어드벤처를 즐기는 20대 배낭 여행자를 제외하고는 절대 절대 이 방법으로 가지말길 간곡히 부탁한다. 하!! 누차 얘기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고 나는 무식하게 용감했다.


아침 일찍 자는 대니를 깨워 그랩 택시를 타고 파사이 역으로 향했다. 보니파시오에서 파사이 역까지는 대략 30분정도 걸린다. 필리핀 3일차인 우리는 필리핀에 도착하자마자 깔끔하게 정비된 보니파시오에서 일상을 시작했기에 그동안 필리핀의 민낯을 볼 기회가 없었다. 이른 아침 택시 창밖으로 펼쳐진 필리핀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보았다. 합판 비슷한 것으로 대충 지붕이 덮혀져 있고 벽은 다 허물어져 철근이 보이는 지경이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었는데 그 앞 빨랫줄에 옷가지가 나름 가지런히 널려있었다. 스콜 같은 소나기가 수시로 오는 지역인데 아마 비가 많이 오면 저 집 안에 머무는 것이나, 밖에 나와 있거나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추운 거울이 없어 아무리 벽과 지붕이 허술해도 추위에 고통 받지는 않겠다 싶은 요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지저분한 거리 속에 아이가 아기를 업고 구걸을 하고 그 뒤에는 부모인지 뭔지 모를 어른이 멀찍이 앉아 있다. 아이를 앞장 세우는 것이 관광객들의 동정심 유발에 용이하고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돈을 얻어내기 위함일 게다. 그런데 그 어른의 눈빛은 아이의 보호자가 아닌, 저 아이가 돈을 갖고 도망갈까 지켜보는 모습 같았다. 참... 아이를 갖은 엄마로서 내 아이도, 심지어 나도 이런 나라에 태어날 수 있었겠다는 생각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쨌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안감이 몰려왔다. 분명 저 안에는 우리를 타깃으로 는 많은 나쁜 사람들이 있을 것 같고 바다고 뭐고 그냥 안전한 보니파시오에 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한편 우리가 얼마나 축복받은 상황인지 알았으면 해서 대니에게 한마디 건네려고 옆을 보았는데 아침 일찍 깨워 그런지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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