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를 다 먹고 우리는 SM AURA 쇼핑몰에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기로 했다. 중간에 한국 마트가 있어서 그곳에 잠깐 들러 비빔면과 떡볶이를 구매했다. 그런데 SM AURA 슈퍼마켓에 가니 한국 라면, 고추장, 쌈장 등 몇몇 한국 식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제품은 한국 마트 가격보다 저렴했다.(T.,T) 매장을 둘러보다 고기를 사려고 육류 코너에 갔는데 한글로 적어 놓아도 알송 달성한 다양한 고기 부위가 영어로 적혀 있어 도통 어떤 고기를 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번역기를 돌려도 요리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다 그게 그것 같았다. 가장 쉬운 단어인 'STAKE'라는 글씨가 눈에 띄어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샀다.(사실 스테이크용 고기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대충 가격을 봤는데 무척 저렴했다. 가격이 싸니 혹시 맛이 좀 덜할까 싶어 손바닥 반 보다 조금 더 큰 덩어리 2개를 샀는데 가격이 한국 돈으로 겨우 3천 원 정도였다. 고기 맛이 어떨까 상상하며 대충 장을 보고 그랩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니에게 날씨도 좋으니 같이 수영을 하자고 했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는지 숙소에 있겠단다. 그래서 나만 홀로 수영장으로 향했다. 나는 스무 살 언제 즈음에 수영을 배웠다. 몸치인 나는 모든 체육에 소질이 없었고 그 덕분에 수영을 배우는데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자유형->배영->평영->접영 순으로 배우는데 나와 같이 배우기 시작한 초급반 동기들은 열심히 진도를 나갔는데 나만 외떨어져 혼자 자유형을 주구장창 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도 무식하게 인내심이 많은 덕에 어떻게 어떻게 접영까지 배웠다. 그렇게 배워둔 나의 수영 스킬을 이렇게 잘 써먹는 순간이 20년이 지나서 찾아올지 나도 몰랐다. 역시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이 상황에 이 말이 맞나?ㅋㅋ) 물장구만 치고 노는 것과는 다르게 아무도 없는 수영장을 온갖 다양한 수영을 하면서 맘껏 즐겼다. 특히 배영이 끝내준다. 물 위에 힘을 빼고 편하게 누워 팔, 다리를 조금씩 움직인다. 청명하게 맑은 파란 하늘 안에 새하얀 구름이 바람을 타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 맛에 여행을 오는구나 싶었다.
누군가 교육이란 자고로 내가 앞으로 살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거리를 배워가는 거라고 했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겠구나 싶었다. 원소 기호니, 갑신정변이니, #이 붙은 음표는 반만큼만 음색 차이를 갖는다는게 사는 데 뭐가 그리 중요할까. 사실 살면서 얼마나 그 지식을 되새기는 기회가 오나 싶다. 지금 나는 대충 배운 수영 실력으로 행복해졌는데 말이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미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첫째 아들이 공부 좀 하라는 내 잔소리에 "엄마 여기는 스포츠가 엄청 중요해"라는 말을 듣고 앗! 했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지금의 우리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겠지만 필리핀의 하늘은 그깟 게 무슨 상관이냐 말하는 것 같았다.
저녁은 낮에 산 스테이크 고기를 구워서 먹었다. 우려와 다르게 맛이 괜찮아서 앞으로 자주 먹어야겠다 다짐했다. 저녁을 먹고 집 옆에 있는 베니스 그랜드 카나몰(venice grand canal mall) 구경을 갔다. 당연히 큰 슈퍼마켓도 있었다. 이곳 필리핀의 쇼핑몰은 1층 혹은 지하에 잘 정비된 큰 슈퍼마켓을 꼭 하나씩 가지고 있다. 쇼핑몰의 다른 층은 한국과 똑같은 가격의 유명 브랜드 매장이 즐비한데, 절약정신으로 똘똘 뭉친 나 같은 사람은 몇 번 아이쇼핑을 하다 상대적 박탈감에 금세 재미를 잃고 식상하다. 근데 슈퍼마켓은 다르다. 저렴한 음료수, 과자, 다양한 식자재를 구경하며 장을 보면서 뭔가 자유롭게 물건을 사는 느낌을 느낄 수 있고 또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구매한다는 만족감도 준다.
베니스 몰은 이름 자체에서 느낄 수 있듯이 건물 중앙에 조그마한 물길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유럽의 베니스처럼 긴 노 젓는 배를 운행한다. 그리고 그 배에 사람을 태우고 가끔 노 젓는 이는 물길 중간에 배를 세우고 노래를 불러 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팁을 줘야 할 거다.) 사람들이 꽤 많이 줄을 서 있는데 역시 대니는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타지 않았다. 그리고 또 베니스 몰은 다른 쇼핑몰과 다르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때 그때 유행하는 캐릭터의 의상을 입는 광대들이 곳곳에 서 있다. 보통 유명한 관광지나 역사 앞에 보면 독특한 포즈를 하고 있거나 몸에 치장을 하고 그 앞에는 모자나 조그맣한 상자가 놓여있는데 그런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곳 광대들이 입은 의상이 좀 독특하다. 대부분 내가 본 것들은 나름 어려운 포즈를(눈 속임 이지만서도) 취하고 있거나 공을 들여 치장한 티가 나는데 여기 있는 광대들은 그냥 커다란 의상을 통으로 뒤집에 쓴 느낌이다.(곰돌이 탈인형 처럼..) 그래도 관광 온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눈요기로 충분해서 그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그 앞 상자에 팁을 넣는다. 의상을 입은 사람, 인공 뱃길, 다이닝 중심의 쇼핑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쇼핑몰을 한참 돌아보다 대니가 헬스장을 찾아냈다. 다니고 싶다고 얘기해서 가서 얼마냐고 물으니 한 달 헬스장 이용료가 1,800페소(한국 5만 원 정도)였다. 우리는 2주만 등록하고 싶다고 얘기하니, 한 달을 등록하던지 아니면 1일 자유 이용료 500페소를 내고 이용하란다. 이게 무슨 계산법이냐 싶겠는데 그냥 한 달 등록하라는 이야기다. 사실 한 달 이용료도 한국과 비교해서 별로 비싸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냥 2주치 1,800페소 지급한다 생각하고 등록하기로 했다. 그래도 한 번쯤 더 생각하고 싶어 월요일에 다시 오마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나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잠들기 전 우리는 다음 날은 스킨스쿠버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우린 꿈에 부풀어 있었다. 푸른 바다, 예쁜 물고기, 아름다운 해변..... 그런데......음.....어찌 되었든 2일차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