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기억 (1-4)

막내 동생의 출산을 지켜보다

by 소명작가

온 식구가 한 방에 잠이 들고 깨었다. 다섯 식구가 나란히 누울 수는 없었지만 엄마 아빠가 눕고 나면 그 옆으로 나란히 나, 남동생, 여동생이 옆으로 쭉 잠이 들었다. 그날 밤에 자다가 중간에 잠을 깼다. 누가 나를 흔들어 깨운 게 아니었다. 아마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와 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밤중에 내가 눈을 떴을 때 필경 어린애 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었다. 동네에서 가끔 보던 아저씨가 우리 방 아랫목에 계셨고 아빠는 분주히 그 아저씨의 심부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누워서 내내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평소 같지 않은 방안 분위기에 난 다시 잠들지 않고 아예 자리를 잡고 그 자리에 앉았다. 잠이 깨서 앉은 나를 아무도 눈여겨보거나 더 자라는 말씀은 없으셨다. 아마도 나를 못 볼 만큼 다급한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마가 지났을 까 엄마가 누운 자리 아래쪽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막내 남동생의 탄생 순간이었다. 그렇게 내 기억의 첫 장면에 그 남생동이 태어나던 자리가 있었다. 엄마의 메모에는 ‘1974년 양력 11월 14일 새벽 4시’라고 적혀 있었다. 내 나이 4살 10개월이 지나던 날이었다.


내 기억 속에 엄마는 그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우리 모두를 두고 제주도 여행 갔을 때 사진에도 그 남동생은 엄마의 손에 번쩍 들어 올려 있었다. 우리 집은 안방에서 나오면 나무 마루가 있었다. 그 나무 마루에 앉아서 신발을 찾아 신을 신었다. 그 마루에서 내려오면 시멘트 바닥의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대문이 있었다. 대문을 나서기 전 얼마 간의 좁은 통로를 통해 들어가면 부엌이 있었다. 엄마는 그 부엌에서 아궁이 불을 지펴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부엌에 막내 동생을 데리고 갈 수 없으니 동생이 앉을 무렵부터 마루에 남동생을 앉히고 나에게 남동생 뒤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넘어지지 않게 내가 지지대 역할을 하라는 거였다. 나는 친구들과의 놀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동생을 잡고 있는 무료함을 견딜 내가 아니었다. 봄이 올 무렵이었으니 마을 아이들은 동네 길에서 어울려 놀 무렵이었다.


남동생 등이나 붙들고 앉아 있기엔 놀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컸다. 그 일을 시키고 엄마가 부엌에 당도해 요리를 하느라 분주히 오가는 소리가 들려올 때쯤이면 동생을 그 나무마루에 앉혀두고는 살글살금 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섰다. 오른쪽 골목으로 몇 걸음 디디면 “쿵” 소리와 함께 남동생의 울음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그러면 부엌에서 “진아” 엄마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와 함께 엄마가 대문을 나와 내 목덜미를 행여 잡을까 하는 두려움에 나는 있는 힘껏 골목을 내 달렸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더 이상 내 귀에 들리지 않을 거리만큼 냅다 달렸다.


동네 큰 길가로 나가 어김없이 놀고 있는 친구를 만나 돌치기 고무줄놀이를 했다. 어둑해질 무렵 노는 우리를 데리러 온 엄마들이 모든 동무들을 데리고 가면 혼자 남은 나는 할 수 없이 집으로 갔다. 엄마한테 불나게 혼이 날 걸 알지만 친구들과 놀이를 포기는 할 수 없었다. 즐거움이 끝난 자리에는 언제나 혼이 날 두려움이 가득했다. 후회도 했다. 왜 그랬을까!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갔다. 큰 소리가 나는 게 당연한데 엄마는 조용히 한마디 하신다.

“얼른 저녁 먹어”

시간이 흘러서 그런가 놀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해서 그런가 엄마는 동생을 버려두고 간 나를 혼내시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나는 늘 그랬다. 내가 살뜰히 동생을 돌봐 준 기억은 없다. 매번 놀다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똑같은 말을 했다.

“저녁 먹어.”


나의 책 친구 막내 동생


막내 동생은 엄마 아빠의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다. 그저 존재가 귀하고 애틋해서 엄마는 아들의 이름조차 아껴 불렀다. 대부분 아들아 아들아 부를 뿐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엄마를 놀럈다. “엄마 아들 깨질까 봐 그러는 거 거지! ” 부러웠다. 존재만으로 사랑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장남 장녀는 언제나 과업이 주어졌다. 공부를 잘해야 했고 반듯해야 했고 모범생이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동생은 우리 집안에서 갖지 힘든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고 있었다. 군대를 마치고는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했다. 그 동생에게서 듣는 세계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책을 좋아했다. 나도 동생도, 우린 정서를 책으로 공감했다. 엄마가 갑자가 돌아가시고 우리 모두 죄책감에 그리움이 시달렸다. 그때 우리 둘은 책으로 그 정서를 나누었다. 내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권했고 동생은 엄마를 부탁해를 권했다. 우리 그렇게 문자를 나누었다. “태야 이거 읽어줘,” “누나 이거 읽어줘”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그렇게 함께 나누었다. 최근 사춘기 아들의 반항으로 힘들다는 연락이 왔다. 또 책을 권했다:<부모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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