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 유치원 1회 졸업생 (1-5)

우리 집의 자랑으로 성장하다.

by 소명작가

어느 날 막내를 업은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자꾸만 내 걸음을 재촉했다. 뒤를 돌아보며 자꾸만 빨리 오라고 했다. 냇가 건너 새롭게 들어선 건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복을 입히고 스타킹을 신기고 작은 가방을 메고 매일 그곳에 가게 했다. ‘새싹 유치원’이었다. 그 동네에서 유치원을 간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유일했다. 그 동네에서는 내가 유치원에 들어간 제일 잘난 아이였다. 하지만 그 유치원에서는 내가 제일 주눅 든 변두리 아이였다.


나는 이제 동네 아이들 무리에서 새로운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 공동체에 처음 들어갔을 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우리 집이 가난한 걸 그냥 느낌으로 알았다. 다른 아이들은 나와 다른 예쁜 블라우스를 속에 입고 단복 치마를 입었다. 어린 내 눈에도 넉넉한 집안의 예쁜 여자아이들은 무언가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여자 아이들 대부분 긴 머리를 하고 예쁜 핀을 꽂거나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왔다. 앞머리가 이마 중앙에 오고 삐뚤삐뚤 바가지 머리를 한 얼굴 찡그린여자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첫눈에 누군가의 정성과 사랑이 깃들어 있는 기품을 지닌 모습이었다. 반면 나는 누군가 팽개쳐 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누가 일부러 맡기지도 않은 주눅이 잔뜩 들어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자주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난 언제나 앞에 나서지 못했다. 한쪽 구석에 눈에 띄지 않을 자리가 내 자리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점심엔 노란 옥수수 죽이 나왔다. 하도 맛이 밍밍해 친구들과 우리 죽 먹지 말자 속닥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언제나 원생 모두를 모야 놓고 원장님이 “식사 노래 시작”를 외치면 우리는 병아리처럼 떼창을 불렀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아멘“

그리고 어김없이 맛없는 노란 옥수수 죽을 먹었다.


여름 어느 날 집에 갈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엄마들이 우산을 가지고 왔다. 하나 둘 이름이 호명이 되고 집으로 갔다. 많은 아이들이 이내 나가고 서 너 명 남은 아이들 틈에서 나는 문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왜 안 오지? “


거짓말이었다. 하는 나도 그게 거짓말이란 걸 알았지만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은 아이들 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말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생님이 한 마디 하셨다.

“진희야, 넌 그냥 집에 가라.”


선생님도 나도 알고 있었다. 엄마가 데리러 오시지 않을 거란걸. 기가 죽은 얼굴로 비를 맞으며 유치원을 나와 철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갔다. 철길 둑을 걸어가는데 비가 멈추고 해가 났다. 그 해가 원망스러웠다. 왜 조금만 더 빨리 비가 멈추고 해가 나지 않았을까, 그 해를 원망했다. 최초의 수치와 가식, 이중인격이 보인 지점이었다. 돌봄 받지 못한 아이라는 걸 누군가에게 들키는 순간이었다. 그 수치와 가식이 송두리째 밖으로 보이던 날은 내 인생 최초와 좌절 좌표점이었다.


그 이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 사건을 재 구조화 할 기회가 있었다. 가족과 여러 가지 상황을 육하원칙과 함께 다각도로 다시 되짚어 보았다. 그러자 엄마가 유치원에 오지 못한 이유가 선명하게 보였다. 어렴풋이 엄마가 왜 못 오시는지 알았던 기억이 맞았다.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한 한 살 남동생 3살 여동생 5살 남동생이 함께 집에 있었다. 그 동생들을 집에 두고 엄마가 내게 우산을 건네러 올 수는 없었다. 어린 나도 그 이유가 명확하게 기억은 못했지만 엄마가 못 온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선생님도 알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아는 유치원 담임 선생님은 그래서 나에게 집에 가라고 했던 것이었다. 내게 수치감을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기억 속에 이해가 안 되는 건 나의 이중성이다. 엄마가 안 올 걸 뻔히 알면서도 엄마를 기다리는 척을 하던 내가 우습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다. 어디서 그런 이중성을 배웠을까? 사회생활 속에 기죽기 싫었던 나의 본능 때문이었을까?


그 시절 나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진희야. 다 괜찮아. 엄마가 널 사랑하지 않아서 돌보지 않아서 데리러 오지 않은 게 아니야 데리러 올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 비싼 학비를 내면서 너를 그 유치원에 보낸 건 너를 향한 부모님의 희생이었어.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너를 그곳에 보낸 건 너를 잘 키우고 싶었던 마음이었어. 다 괜찮아. 수치도 아니고 버려짐도 아니었어. 너의 이중성의 표현도 친구들과 머쓱한 시간에 불쑥 나온 말이었지 가식도 아니었어 다 괜찮아 진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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