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2-1)

심부름 잘하던 보통 아이

by 소명작가


내 꿈은 선생님


할머니 집에 고모가 왔다. 키가 크고 미스코리아 나가라는 말을 자주 듣던 고모였다. 고모가 사는 작은 방엔 엄마한테서는 절대로 보지 못한 매니큐어와 화장품이 있었다. 몰래 들어가 매니큐어를 바르곤 했다. 고모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집에서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혼하고 집으로 돌아온 고모를 할머니가 구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여 가구가 되지 않는 깡 시골 마을에 시집을 간 고모가 돌아왔으니 할머니는 속에 맺힌 울분을 날마다 악다구니와 함께 풀어놓은 게다. 고모는 우리 집 작은 방에서 나와 같이 잠을 잤다. 고모는 날마다 내게


“내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어, 진아 넌 커서 꼭 내 대신 초등학교 선생님이 돼라.”

다른 꿈, 장래희망을 꿈꿔 본 적이 없다. 고모의 반복된 그 넋두리는 나의 뇌리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건 운명이라는 말이 맞을 게다. 운명적으로 내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정해졌다.


만년 부장


학교 생활은 꿈이 선생님인 아이다웠다. 숙제 꼬박꼬박 열심히 했다. 받아 쓰기도 늘 두 번째는 100점이었다. 우등상을 받았다.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알아보았다. 반장 부반장 리더감은 아니라는 것을 초등학교 2학년 저축 부장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내내 미화 부장, 문예 부장을 돌아가며 만년 부장의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으로 묶인 우리들은 5학년까지 내내 같은 반 생활을 했다. 키가 두 번째로 작아 늘 선생님 교탁 앞에 내 자리가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교탁 위 선생님의 교과서를 진도에 맞게 펴는 일은 늘 내 일이었다. 누가 시킨 기억은 없다. 아마도 학년 초 전 학년 선생님들의 브리핑에 나는 언제나 그 역할을 하는 아이로 브리핑된 듯하다.


비 오는 날 보리차 운반


비 오는 날 보리차를 들고 학교에 가는 건 인생 최대 난제였다. 그 당시 학교는 학생들의 마실 물을 학생들이 준비하게 했다. 빈주전자를 가지고 집에 가서 보리차를 끓여 학교에 가져오는 일은 1년 내내 돌아가며 당번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 주전자가 아이가 들고 학교까지 간다는 건 쉽지 않았다. 내 몸집보다 큰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고 학교까지 들고 가는 일. 그래도 맑은 날은 괜찮다. 무거워도 좀 일찍 집을 나서 쉬엄쉬엄 들고 가면 되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날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들고 책가방을 메고 그 주전자를 들고 가는 일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 어른 들은 왜 그걸 몰랐을까? 아마도 친구가 내 우산을 함께 들어준 것 같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전자는 무거웠고 비바람이 우산 속으로 쉴 새 없이 들이닥쳤고 옷과 가방은 비로 다 젖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같았다. 책상 위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든데 이 힘든 일을 아무도 안 도와주는 걸까 생각했다.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따져듯 물었다.

" 엄마 왜 비 오는 날 오차물 들고 가는데 안 도와줬어? 동생은 도와줬잖아.”

" 엄마가 도와 준거 아니야 그날 마침 삼촌이 와서 들고 가 준거지.”

세상은 늘 비껴가는 것 같았다. 행운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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