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아이 (2-3)

아버지 같았던 담임 선생님

by 소명작가

처음 뺨을 맞던 개학 날


손 선생님과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4학년 첫날 나는 엄마가 사준 당시 유명한 원아동복 빨간색 예쁜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목을 리본으로 묶고 입으면 부드러운 촉감에 기분까지 좋아지는 옷이었다. 4학년 반 배정이 끝나고 운동장 조회 시간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남학생 한 명과 함께 앞에 섰다. 다짜고짜 선생님이 내 뺨을 때렸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학교 선생님에게 혼도 나지 않았던 나인데 뺨을 맞다니 뺨은 화닥거리고 머릿속은 어질어질했다.


‘내가 왜 맞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교장선생님 말씀하시는데 앞은 안 보고 계속 발로 운동장에 그림을 그렸다.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니?”

그게 날 때린 이유라고, 말이 안 된다. 땅보고 발바닥으로 그림을 그린게 뺨을 맞을 이유가 된다고. 수치와 억울함이 뒤범벅된 4학년 첫날 신고식을 치렀다.


그런데 난 4학년 선생님이 며칠 지나지 않아 너무 좋아졌다. 첫날 이유도 알 수 없는 일을 겪었지만 그 뒤로 1년 내내 선생님이 화를 낸 기억이 없다. 늘 인자하게 웃으시고 공부 시간에도 친절하게 상냥하게 가르쳐 주셨다. 첫날 늘 그랬듯 아이들 분위기를 주도하기 위해 일부러 무섭게 보이신 것이었다. 1년 동안 화를 내신 건 그 첫날뿐이었다.


학교 아이


선생님은 이내 나를 잘 돌봐 주셨다. 특히나 정서적인 면을. 난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기를 싫어했다. 그냥 학교에 남은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집에 가곤 했다. 나중에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학교에 남아 놀다가 가는 아이를 학술적으로 학교 아이라고 칭하는 용어가 있었다.


선생님은 한 번도 내게 왜 집에 안 가냐고 묻지 않으셨다. 오히려 학교에서 노는 나를 선생님의 집 방향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퇴근길에 집 앞 골목에 내려 주소 가시곤 했다. 방과 후 가정 방문에도 나를 데리고 가시곤 하셨다. 반장도 아니었는데


그 시절 엄마는 늘 살림에 절약이 삶이 모토인 듯하셨다. 학교에서 미술이나 잡다한 준비물을 사야 하는데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꼭 이렇게 말했다. ”없다. 그냥 가.”


나름 모범생인 내가 선생님이 지정한 준비물을 안 가지고 학교에 가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면 그때서야 엄마는 호주머니를 열어 동전을 주시곤 했다. 난 그런 기분으로 거의 울음을 터뜨릴 듯 내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 꼭 짓궂은 남학생이 내 이름을 가지고 지은 별명으로 나를 불렀다.

“진희 진돗개.”


그러면 어김없이 말 한마디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조회 시간에 나타난 선생님의 첫마디는

“누가 진희 울렸어?”

그제야 내가 고개를 들고

“현철이가 놀렸어요.”

“현철이 앞으로 나와.”

그러면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두 대 맞고 들여보냈다.


아침마다 통과 의례 같은 것이었다. 난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았다. 선생님은 언제나 내 편이셨다. 따뜻한 마음을 전해 받는 게 이런 건가를 선생님을 통해 경험하고 있었다.


4학년이 끝나고 선생님은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셨다. 늘 선생님이 그리웠다. 교회에 다니셨던 선생님이 닭을 잡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하나님이 만든 동물을 잡아 죽이는데 마음이 아팠다던가 교회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실 때 나오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내 뇌리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삶이 힘겨워질 때면 선생님이 보고 싶었고. 선생님이 다니신다는 교회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그럴 기회를 찾지 못했다.


현철이의 짝사랑 고백

훗날 중학생이 된 나에게 현철이는 가끔 집으로 전화를 해서 얼굴 한 번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단호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놈이 왜 전화를 하냐고. 선생님 말씀이 옳았다. 너한테 관심이 있으니 너를 놀리는 거라고 했던 말씀이 맞았다. 하지만 난 그때 마음을 힘들게 하던 현철이 얼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 반창회를 하던 날 현철이는 내 곁을 맴돌며 내 이름을 불러대었다. 그냥 서로 웃었다. 우린 성년이 되어 있었고 옛날 일을 웃으며 이야기할 만큼 자라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치러진 내 결혼식에도 현철이는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우인으로 참석해 결혼식을 축하해 주었다. 어린 시절 우리의 풋풋한 감정은 그렇게 우정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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