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사장님(2-4)

왕만두 오락실

by 소명작가

사업 계획


중학교 2학년이었다. 꽤 오래 엄마 아빠는 사업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이 자라니 아빠의 월급, 엄마의 부업으로 우리의 교육비를 충당할 수 없다는 현실의 압박감이 부모님을 눌렀다. 두분은 식사시간마다 어떤 사업이 좋을까를 고민하셨다. 어느 날 오락실을 하자는 결론이 났다. 그리고 장소 물색에 들억갔다. 우연히 공원에 놀러갔다가 오는 길 코너에 점포 임대 글자를 본 기억이 나서 말씀드렀다. 뒷날 오락실 자리는 그곳으로 결정이 났다. 그 집 간판은 <왕만두> 그대로 사용했다.


오락실은 생각보다 간편한 사업이었다. 인테리어도 필요없었다. 간판도 필요없었다. 붙어 있던 <왕만두>를 그대로 사용했다. 비어 있는 실내에 엄마는 10대의 기계를 사들어 놓았다. 이제는 이름도 그리운 갤러그, 테트리스 , 퐁퐁 그렇게 사업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노트를 사서 매일 수입을 적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 값도 갚았다. 주말에는 많은 액수의 돈이 적혓따. 우리 동네 유일한 공원 입구라 주말엔 사람이 몰렸다. 더 좋은 건 버스 정류장 앞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공원에서 놀던 중,고 학생들이 집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왕만두 오락실에서 놀았다. 한 사람은 입구에서 버스가 오는지 살폈다. 버스가 나타나면 가방르 챙겨 하던 오락을 멈추고 달려 나갔다.


살림 살이가 나아지는게 실감났다. 엄마는 내게 잔소리 대신 용돈을 넉넉히 주셨다. 준비물 살 돈도 울어야 주던 엄마는 내가 말만 하면 돈을 척척 내 주셨다. 난 행복했다. 오락실을 하느라 바쁜 엄마가 좋았다. 병아리가 배추를 쪼듯 매사에 나를 쪼아대던 잔소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영혼은 자유오웠고 호주머니는 든든했다. 중2가 이만큼의 행복 외에 뭐가 더 필요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나를 진돗개라 부르며 놀리던 현철이는 이 맘때 부터 길 저편에서 마주치면 왕만두 어이 왕만두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난 눈길만 한 번 안 주고 쌩하니 지나쳤다. 나쁜 놈 되내이며. 이젠 울지 않았다. 개의치도 않았다. 난 그 때 울보도 아니었고 그 왕만두 오락실은 내게 영유와 행복을 주던 곳이었기에 왕만두라고 놀리는 외침도 좋았다. 현철이가 왜 놀리는 지도 알았으니까


칼국수와 충무 김밥


가끔 돈이 필요하면 오락실에 들렀다. 식사 시간이 되면 오락실 한 켠에 있던 작은 방에서 엄마는 음식을 시켜 주었다. “충무 김밥 먹을래? 칼국수 먹을래?” 난 언제나 충무김밥이었고 막내는 언제나 칼국수였다. 반쪽짜리 김에 밥만 쌌는데 왜 그리 맛있는지 오징어와 또 삭은 무 김치는 왜 그리 맛있는지, 나중에 그 집은 <생활의 달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 이후 그곳은 문전성시를 이루는 유명한 충무 김밥 집이 되었다. 그럴 만했다.


막내가 늘 시켜먹던 칼국수 집은 훗날 이사를 했다. 난 그 칼국수 집을 잚 모르는데 남동생은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면 오락실로 하교를 했으니 매일 그 칼국수를 먹었다. 나중에 그 동네가 개발이 되면서 새로 건물을 짓게 되자 칼국수 집 할머니는 다른 곳에 건물을 짓고 칼국슈 집을 열었다.


막내가 그 할머니 칼국수 집을 찾는데 애 먹었다고 햇다. 겨우 찾았노라 했다. 고향에 갈 때면 언제나 그 집에 들러 식구들이 칼국수를 먹고 볼 일을 본다고 했다. 아버지의 팔순 잔치로 귀국한 나를 데리고 그 집에 갔다. 막내가 그 집에 가는 건 칼국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와 비슷한 연배로 늙어가시는 할머니를 보기 위해서란 걸 말을 안해도 알 수 있었다. 그 집엔 엄마랑 먹던 칼국수가 있었고 엄마랑 잘 지내시던 할머니가 있었다. 동생에게는 인생의 일부가 얹어진 곳이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늘 그곳에서 해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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