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문 선생님
마침이라는 말이 맞다. 중학교 2학년 엄마의 오락실 덕분에 용돈이 많아진 나는 그 용돈으로 서점에서 소설책을 샀다. 그 시절 내게 소설의 재미를 알려준 한문선생님이 있었다. 옆반에서는 국어 선생님 우리 반에서는 한문 선생님 이름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박경숙 선생님. 일주일에 한 시간이던 한문 시간 10분을 남겨 두고 그 선생님은 소설 이야기를 해 주셨다.
입담이 구수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일주일 내내 기다혔다. 처음으로 해 준 이야기 내 인생 소설이 된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 어었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선생님의 모습, 이야기를 하시던 조그만 입술, 두툼한 복코, 작은 눈이 웃으면 더 작아지는 눈 나는 그 선생님의 그 순간을 다 기억한다.
아내가 병원의 다른 의사와 집에서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중 대화를 방해하던 3살 자신의 딸을 밖으로 내 보냈는데 그때 강가에서 지나가던 일당 노동자에게 살해를 당한다. 아이가 죽은 이유에 아내의 불륜이 있음을 알게 된 남편은 그 사실에 분개해 친딸을 살해한 살인자의 딸을 입양해 아내에게 키우게 한다.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복수심 때문이었다.
입양한 딸 요코가 7살이 되던 해 청소하다 발견한 쪽지 속에서 자신이 애중중지 키우는 딸이 자신의 딸을 살해한 살인자의 딸이란 걸 알게 된다. 분노에 배신감에 치를 뜬다. 그때 집에 돌아온 요코의 목을 조르지만 요코는 죽지 않았다. 그 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내밀한 내밀한 학대를 요코에게 행한다.
요코는 엄마의 구박과 학대에도 반듯하게 잘 자란다. 오빠도 요코가 입양해 자란다는 걸 알고 연정을 품고 집에 놀러 온 오빠의 친구도 요코를 좋아한다. 나중에 결혼에 이르자 엄마는 요코에게 출생의 비밀을 말하고 요코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에 친딸이 죽은 강가에서 음독자살을 한다.
후에 독자들의 요청 때문에 살아난 요코는 다시 한번 죄와 용서의 문제를 풀어 나간다. 사실 요코는 살인자의 딸이 아니었다. 불륜을 저지른 다른 사람의 딸이었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너무 재미있었다. 선생님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기엔 일주일이 너무 길었다.
빙점을 시작으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박완서의 오만과 몽상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점으로 달려가 소설책을 샀다. 엄마의 오락실 사업의 성공은 내게 꿈을 갖게 해 준 자양분을 제공해 주었다. 책을 사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엄마도 늘 책을 좋아했기에 은근 소설책을 사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때 내 꿈은 소설가로 정했다. 내가 요코를 통해 구박받는 딸의 서러움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위로를 받았으니 나도 소설가로 힘든 누군가를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뒤 내 방은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작가별로 소설을 모조리 사서 읽었다. 미우라 아야꼬의 책도 수필집까지 사 사서 모았다. 이문열, 그리고 박완서 모두 내게 소설가의 끔을 꾸는 내게 스승이 되어 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 전공을 선택해야 할 무렵 난 망설임 없이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 난 소설가의 꿈을 잊지 않고 있었다.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건 효도였다. 다는 생활비를 아낄 수 있었으니까
일부러 작은 책가방을 메고 전공이나 교양 과목의 큰 책은 손에 들고 시외버스를 탔다. 그 당시 대학생들의 패션이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싫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