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대학원생 (3-2)

공부가 더 좋아서 간 교육 대학원

by 소명작가

소설가가 되고 싶어 들어간 학과였다. 수필론 수업에 수필을 써 오라고 했다. 교수님이 읽고 마음에 드는 수필 5편을 골라 매일 읽고 수업을 시작했다. 한 번도 내 수필이 읽히지 않았다. 글쓰기가 내 적성이 아니었다. 글쓰기에 관한 한 천부적 재능도 없었고 교수님 눈에 띌만한 경험도 내겐 없었다.


일찌감치 소설가 작가의 꿈을 접게 해 준 수필론 수업이었다. 문학 수업은 시론도 소설론도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접근할 분야가 아니라는 확신만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어학 수업은 재미있었다. 언어학 수업 시간에는 생기가 돌았다. 형태론, 통사론, 문법론 수업이었다.


다른 동기생들은 어렵고 재미가 없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이 수업이 좋았다. 특히 통사론을 강의하시던 이재인 교수님은 언어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수업 시간에 그분의 강의를 듣는 건 내게 대학 생활의 새로운 기쁨이었다.



요한복음의 태초에 말씀이 있니라 구절이 통사론 시간에 열렸다. 교수님은 언어는 거대한 생명체 인격체라고 말씀하셨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단순하게 쓰는 언어가 아니라 그 이상의 힘이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언어 속에 계신 신의 성품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수업에서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교수님도 맨 앞줄에서 교수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적고 메모하는 나를 기특해하셨다. 다른 교수님이 이교수 님이 내 칭찬을 많이 한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내가 좋아하는 공부만 하는 것도 너무 좋았다. 대학원 진학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여러 선배님들의 조언을 구하며 전공 공부만 하는 일반 대학원보다는 교직 자격증을 따는 교육대학원 공부를 권유받았다.


교육 대학원 수업은 토요일에만 있으니 다른 일도 병행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고 했다. 그 권유를 받아들였다. 평일에는 열심을 내던 신앙 단체 선배로 일을 하기로 했다. 간사라는 직함이 주어지는 일이었다. 내가 받은 신앙의 은혜를 후배들과 나누고 싶었다.


신앙이 없던 부모님께는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내심 졸업하고 일정 경제적인 부분의 기여를 기대했던 엄마의 기대가 무너졌지만 더 공부한다는 것에 반대하시지는 않았다. 어쩌면 대학원 진학은 신앙 단체 간사를 하고 싶은 내 깊은 속마음의 가면 같은 것이기도 했다.


대학원 수업


교육 대학원 수업은 너무나 실재적인 수업이었다. 학문을 실재 삶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주제로 접근하는 방법 자체가 너무 신선했다. 대학에서 평면적으로 공부를 했다면 대학원 수업은 위에서 조망하는 수업 같았다. 내게 주어진 소설 한 편을 분석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어떤 과정으로 이해시킬 것인가 과정을 공부하는 건 너무 흥미로웠다.


공부의 주제가 나를 넘어 대상자에게 넘어가는 경험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소설 수업에서 나의 애정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교안을 만들었다. 그 과정 자체가 기쁨이고 궁극적으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대학원 졸업 논문


그런데 논문 지도교수님을 너무 지독한 교수님으로 선정했다. 같이 입학한 동기는 사람 좋기로 소문난 국어 교육학과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했고 나는 국문과에서 졸업 안 시키기로 유명한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선정했다. 신의 한 수였다. 고통의 길로 들어서는. 늘 즐겁게 교수님과 면담하는 친구와 달리 나는 교수님을 만나고 오는 날은 절망으로 자괴감으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논문 첫 장을 몇 번을 썼는지 모른다. 이런저런 책을 뒤져 서론을 써 가면 며칠 뒤 교수님은 시뻘건 볼펜으로 문장하나하나를 고쳐 다시 써오라고 하셨다. 이건 비문이다. 이건 번역체 문장이다. 이건 표현이 어색하다. 등등 하필 형태론 교수님을 논문 지도교수로 선정하다니 미친 짓이었다.

조사하나 토씨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다섯 번을 주고받으니 공부를 그만두어야 하나 싶었다. 국어 국문학 4년 국어 교육학 2년의 공부는 헛 공부였다. 심한 자괴감이 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졸업하는 건 내 일생일대의 가문의 영광을 성취해야 하는 과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장을 떼러 온 나를 비웃던 그들에게 되갚아 주어야 할 나만의 복수극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굳은 내적 맹세를 성취해야 했다.


논문 발표회


선배가 나눠준 우황청심원을 얼떨결에 먹었다. 그 약 때문인지 하나도 떨지 않았다. 오히려 청중을 웃기면서 내 발표를 이어나갔다. 그 엄한 자리에 웃음소리가 나게 한 것만으로 나의 논문 통과는 기정 사실화 되었다. 하지만 뒷날 교수님을 찾아갔을 때 교수님은 나에게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었다.

“발표 잘했다고 논문이 통과되는 건 아니다. 너 하기 달렸다. “


이상한 여운이 남은 말씀을 하셨다. 약간의 뇌물을 요구하는 눈치였다. 그 당시 나는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초 양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통과 이전에 교수님에게 뭔가 선물을 한다는 건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졸업이 하고 싶었다.


내 양심을 접었다. 엄마에게 멸치를 사달라고 했다. 내 고향에서 나는 멸치는 전국에서 최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이었다. 엄마가 멸치와 쥐포 두 박스를 사 주었다. 나는 그걸 뇌물로 들고 교수님 방을 찾았다. 교수님은 처음 보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셨다. 나는 양심을 접었고 교수님은 만족을 얻었다. 논문 지도생 가운데 제 때 졸업을 한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나온다. 사실 멸치는 뇌물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교수님도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사회성도 없이 앞뒤 꽉 막힌 나를 대상으로 작은 선물 하나 얻고 싶은 마음 하나를 어렵게 표현한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몇 박스 더 사서 드렸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육학 국어 교육 전공 석사 학위를 얻었다. 국어 교사 임용 시험에도 응시할 수 있는 교사 자격증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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