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중학교 국어 선생하고 그 남자와 헤어져
백수 생활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또 움직이셨다. 내 고향의 중학교 고등학교는 다 사립 중고등학교였다. 나도 사립 여중 여고를 다녔다. 중고 시절 우리끼리 선생님들이 돈을 주고 학교 선생님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저 무용 선생님은 삼 천만 원 주고 선생님 하러 왔대, 저 국어 선생님은 이 천만 원이래, 우리끼리 수군댔다. 사실인지 아닌지 몰랐지만 늘 그런 이야기들은 간간이 들렸다.
아마도 사립학교여서 그런 소문이 돌았던 것 같다. 예쁜 무용 선생님이 1년 정도 하다가 시집을 가고 학교를 그만두면 들인 돈도 다 못 벌고 시집가면 어떡하냐! 그냥 시집가려고 선생님 잠깐 했나 보다 하며 우리끼리 선생님을 놀렸다.
아버지가 그 중학교 국어 선생님 자리가 났다고 했다. 마침 학교를 설립한 재단 이사장이 은퇴하고 그 집안 둘째 아들이 새로운 이사장으로 취임을 한 시점이었다. 새로 취임한 이사장을 연줄로 알아서 아버지는 천만 원이라는 공탁금만 걸면 그 자리를 주겠다는 허락을 받았노라 하셨다.
이력서 가지고 오라고 엄마를 통해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백수 생활이 거의 1년을 넘기던 시절이었다. 무기력함, 무능력감이 더 내려갈 바닥이 없을 정도였다. 그 성화에 이력서를 건네고 절망했다.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날 밤 교회에 가서 몇 시간을 울었다. 나는 그 자리에 갈 수는 없다고 이 길을 막아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신은 너무도 분명하게 응답하셨다. 양심이 허락지 않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지쳐가는 백수 생활과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도 있고 해서 기다리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당장 내일이라도 출근해야 할 상황인 것 같던 일이 도무지 연락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나고 그 자리에 대학원을 같이 졸업한 학과 동기생이 들어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이사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학교 교장이 이사장이 추천한 사람은 채용 안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다른 사람을 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때 마침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선생님이 친구를 추천해 그 자리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은 나한테 일어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친구가 돈을 내고 이사장을 통해 선생 자리로 가려고 했고 내가 추천을 통해 돈을 안 내고 그 자리로 들어가는 일. 그 일은 내게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라고 왜 나한테 그 일이 거꾸로 일어났는지…
신이 원망스러웠다. 신에게 나의 원망하는 소리를 더 크게 들리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 꼭대기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나한테 너무 하신 거 아니냐고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시냐고 소리를 질렀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원망스러운 하늘빛만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언제나 좌절과 불행은 내 몫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백수 생활. 아침에 집 옥상에서 아침이면 분주히 학교 가고 직장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에 가슴이 서늘해지던 시절이었다. 나만 세상에 부름을 받지 못한 낙오자 같았다. 아침은 언제나 밝은 햇살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밝은 햇살까지 싫었다. 나에게 가혹한 이 인생은 언제 끝날까 하는 의문이 늘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