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첫인상
화성 남자를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말 겨울 교정에서였다. 대학에서 나의 부족한 사회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터라 학과나 다른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캠퍼스에서도 신앙 모임에 가입해서 성실하게 생활을 했다.
같은 교회 선배가 도서관 앞에서 마주친 화성 남자를 우리 SFC 멋진 선배라며 소개를 했다. 군대 가기 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던 선배였는데 이제 곧 군대 제대하고 봄에 복학할 거라고 말했다. 교회 선배의 소개에 인사를 하는데 나하고 눈도 안 마주치고 엉뚱한 말만 했다. 아예 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나도 너라는 인간하고는 앞으로 상종 안 한다. 앞으로 엮일 일 없다. 두고 봐라’ 그 몹쓸 맹세를 했다.
이후 봄이 되어 학교에 복학한 화성 남자는 중앙 도서관 2층 자유 열람실에 자리를 잡았다. 학과 동기들과 늘 같이 모여 공부를 했다. 나는 중앙 도서관 5층 열람실에서 자리를 잡았다. 마침 여자 기숙사가 완공되어 완행버스 통학을 그만두고 학교 기숙사에 입주했다. 행복했다. 학교에 오고 가는 것이 제일 힘든 하루 일이었는데 교내에 살게 되니 학교가 집과 정원과 내 서재 같았다.
도서관이 문을 여는 새벽 5시. 기숙사에서 책가방을 챙겨 도서관으로 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당도한다. 도서관 열람실 문이 열리면 왼쪽에 있는 칸막이 자리 창가 쪽에 자리를 잡는다. 큐티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한다. 8시에 기숙사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도서관에 가면 후배들이 내 자리에 가방을 걸어 두고 수업을 간다. 도서관에 5시에 자리를 맡아두면 후배들이 학교에 오면 내 자리에 가방을 걸어 두고 수업을 다녀왔다. 내 자리는 후배들의 아지트였다.
그 화성 남자 선배는 매일 아침 10시쯤 5층 열람실로 왔다. 나를 발견하면
“커피 마시자”
말을 건넸다. 복학 후 함께 신앙 단체 리더로 활동할 무렵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복학한 선배가 와서 커피 마시자 말을 건네면 커피를 뽑아 도서관 앞 정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난 주로 들었다. 말을 잘하지 않던 때였다. 내 안에 깊이 침잠되어 있던 시간이었다.
선배는 가끔 질문도 던지고 자신의 일상에 대한 고민 진로라던가 단체의 행사에 대한 일들을 내게 말하며 스스로 정리하곤 했다. 내 의견이나 조언은 필요 없었다. 난 그냥 들어주는 후배였다. 난 화성 남자 선배를 약간 싫어했다. 캠퍼스에서 내가 화성 남자를 먼저 발견했을 땐 언제나 길을 돌아갔다.
우린 졸업반이었다. 이제 진로를 찾아야 할 때였다. 내가 대학 입학할 때 군대 갔었고 3학년 2학기에 복학하고 함께 4학년이 되었다. 난 그 당시 대학원 진학이 결정되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때였다. 선배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집안의 요구가 충돌되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혼자 말하다 가곤 했다. 첫인상이 워낙 별로였기에 찾아오면 그런가 했다.
그런 그가 좀 특별하게 다가온 건 꿈 때문이었다. 그저 그런 일상이 지나갈 즈음 기숙사에서 자다가 꿈을 꾸었다. 보통 주말이면 집에 가서 섬기던 교회를 가곤 했는데 그즈음 공부량이 늘어 주일 아침에 교회로 갔다. 토요일 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선배가 나타났다. 기숙사가 허물어졌는데 그 담을 넘어 내게로 와 손을 잡았다. 그러다 잠을 깼다. 갑자기 선배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화성 남자를 향해 새로운 연정을 품기 시작한 이유가 그게 전부다.
왜 그리 하루가 안 가던지, 월요일은 왜 그렇게 안 오던지, 월요일 아침 10시면 분명 커피를 마시자며 도서관으로 올 터이니 그때 보자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 10시가 되고 11시가 되어도 커피 마시러 오지 않았다. 내가 창문가에서 선배가 어디 있나 살폈다. 도서관 앞 정원에서 과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쭈——-욱 선배는 내 자리에 오지 않았다.
그 기다림은 속절없는 기다림이 되었다. 기다리지 않을 때는 오더니 기다리니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고 싶은 내 마음을 말할 수는 없었다. 선배에게 잘 보이고 싶어 예쁜 옷을 입었었나 보다 친한 후배가
“언니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예뻐지지? ”
“시작도 못 한 사랑이 끝났어”
“누군데? 누군데? 말해봐.”
“말 못 한다.”
내 짝사랑은 시작도 못 하고 끝나버렸다. 졸업을 하고 그는 집안의 반대로 자신의 꿈을 접은 채 취직이 되어 구미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