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랄 공연장 (4-2)

연애

by 소명작가

화성 남자는 2년 직장 생활을 했다. 소식도 끊겼다.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여기는 나였기에 내 감정 같은 걸 누군가에게 표현할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캠퍼스에 불쑥 나타났다. 화성 남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가끔 캠퍼스에 나타나 커피를 마시고 가곤 했다. 대학 4학년 짧은 선배를 향한 짝사랑에 실패했던 터라 선배에게 예전처럼 아무런 감정 없이 대했다.


나를 찾아와서 자신이 접었던 꿈을 이제는 찾아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때 그냥 한 마디 했다. 자신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니냐고. 화성 남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중단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신학 공부였다. 목사가 되고 싶어 했다. 대학원 가기 위해 새로 공부를 시작했다. 캠퍼스에서 간사로 일하며 신학 공부를 했다.


나도 대학원 공부를 하며 교대 캠퍼스를 돕고 있던 터라 함께 만날 기회가 많았다. 함께 만날 기회가 많아지니 다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억누르는 마음은 오히려 더 튀어 올랐다. 하지만 내 감정을 드러내기엔 소심하고 두려움도 컸다. 그냥 시간이 흘렀다.


가끔 커피도 마시고 가까운 곳에 나들이도 함께했다. 데이트는 아니었다. 그냥 친한 선후배의 만남이었다. 그 분위기를 바꾼 건 선배였다. 10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커피숍에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자세한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한다는 말에 나도 전부터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매일 이별하는 이상한 연인


우린 연인이 되었다. 이제는 선후배의 만남이 아니라 연인으로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매일 싸웠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을 때였다. 전화가 오면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했다. 그러다 내가 삐져서 인사도 없이 집에 가버린다. 이제 우리는 끝났구나, 이제 헤어졌구나 하는 마음에 허탈감으로 집에 간다. 실연의 아픔을 달랜다. 뒷날 또 전화가 온다.


“밥 먹자.”

‘아직 안 헤어진 거구나.’


다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한다. 또 삐진다. 인사도 없이 집에 온다. 또 헤어졌구나. 실연의 아픔에 좌절한다. 뒷날 또 전화가 온다. 3년을 그렇게 만났으니 적어도 300번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내 안에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신호가 그렇게 표현됐다. 타인을 향한 불신은 화성 남자를 괴롭혔다. 만나면 이상한 지랄로 만남을 마무리하는 나를 한 번도 나무라거나 왜 그러냐고 다그치지 않았다. 그게 사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난한 신학생이라고 불같이 반대하는 아버지의 성화를 넘어서 설득과 인내로 결혼을 허락받았다.


아버지는 상견례에서 시어머님의 인자함과 온유함에 탄복하시며 마음을 놓으셨다. 신혼여행 후 시댁에 데리고 가는 신행의 길에서 내내 눈물을 흘리셨다. 사돈댁에 도착하셔서 내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내려 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따로 나를 부르셔서 그동안 미안했다고 하시면서 내 앞에서 우셨다. 아버지는 늘 미안한 마음 때문에 사위와 눈을 맞추지 못하셨다.


난 사람도 사랑도 믿지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을 앞둔 결혼 생활을 지켜보며 자랐다. 난 내 결혼에 나를 버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난 늘 바닥을 내보였다. 이래도 나를 버리지 않고 데리고 살 거냐고 만날 때마다 지랄하며 악을 쓰며 그에게 무언으로 묻고 또 물었다.


화성 남자는 그 지랄과 나의 바닥을 견뎌 주었다. 지랄이 풍년이었던 나의 연애 생활. 돌아보면 이 시간이 없었다면 우리의 결혼 생활은 벌써 파탄이 났을 것이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나의 고질 이 이 연애 기간에 다 드러났다. 수천 번 내게 물었다. 이 결혼을 해야겠냐고 의심과 불안, 절망과 좌절 3년의 연애는 지금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오늘의 삶의 기초가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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