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에서 나오는 새의 투쟁
결혼 후 나의 지랄이 끝났다. 상대에 대한 의심으로 나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행동은 끝났다. 모든 것이 순탄했다. 마음도 편했다. 집안의 막내였던 남편은 존재만으로 사랑 그 자체였다. 그 사랑받음에 난 숟가락을 얹었다. 내 존재만으로도 기뻐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시어머님도 그저 더 자라 자라 하셨다. 그게 진짜인 줄 알고 일주일 늦잠을 잤다.
주중에는 어머님 형님 아주버님과 함께 지낼 때였는데 일주일 동안 아침에 잠을 푹 잤더니 아무도 말은 안 하는데 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일찍 일어나 밥 차리는 것을 도왔다. 손 위 형님은 너무도 온유하고 인자하셨다. 그리 철없는 동서였지만 내가 듣기 싫은 말은 평생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철없는 막내며느리 자리는 늘 편안하고 푸근했다.
결혼 후 9개월 후 첫아이를 임신했다. 입덧도 없었다. 다만 국수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국수를 먹지 않아 엄마가 국수를 준비하는 날엔 나를 위해 밥을 따로 준비를 해 두셨다. 그런 내가 매 주일 과외 가면 그 동네 국수를 사 먹었다. 추석 전이 예정일이었는데 추석이 지나가도 일주일이 지나도 아이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라는 말에 열심히 했다.
월요일 아침 형님이 일하시는 병원으로 갔다. 옆에 있는 산모들의 출산이 끝나도 나의 출산은 진행되지 않았다. 힘을 주고, 또 힘을 주었더니 오후에는 얼굴이 붓고 눈에 흰자가 터졌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분만실로 옮겼고 간호사 8명이 둘러싸고 배를 누르며 아이를 꺼내기 시작했다. 3번을 기계를 통해 아이 머리를 붙들고 나서야 아이가 태어났다.
온몸이 부서진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이 없었다. 아이를 내 옆에 눕히는데 돌아서 아이를 바라볼 힘이 없었다. 한 생명이 이 땅에 온다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과 같은 사투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회복실에 있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이렇게 나를 낳았구나, 이렇게 몸을 부수고 나를 낳았구나. 병실에 온 엄마를 보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의 수고가 나를 이 땅에 있게 했구나.
저녁이 되어 병문안을 온 지인과 남편과 영아실에 아기를 보러 갔다. 6-7명의 아이 중 저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었으면 하는 아이를 감싼 포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함께 아이를 보러 온 지인이
“아기를 안 낳고 무슨 영감을 낳았어?”
눈에 띄게 못생긴 아기를 놀렸다.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기도 엄마의 좁은 산도에서 죽을 고생을 한 것이다. 산도에서 머리가 안 빠져 압축기로 머리 빼내기를 3번이나 시도했으니 얼굴이 찌그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못생긴 아이는 한 달이 지나고 멋진 얼굴로 변신했다. 잘 먹고 잘 잤다.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다. 배고프면 웅얼거리다 먹으면 잤다. 발육도 운동 신경도 좋아 9개월 반에 걸음을 떼더니 10개월에 걷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태어난 지 19개월 후 둘째 딸이 태어났다. 둘째가 태어나는 과정은 책에서 본 그대로였다. 10분 간격 진통 5분 간격 진통을 느꼈다. 병원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놀랐다. 아이가 나오려 한다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일요일이라 의사 선생님이 도착도 안 했는데 호출만 한 상태였는데. 간호사는 힘주지 말라고 하는데 아이가 나왔다. 뒤이어 선생님이 도착하셨고 마무리 처치만 하셨다. 첫아이와는 너무나 다른 분만이었다.
19개월 터울의 남매를 기른다는 건 새로운 세계였다. 먹이고 입히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반찬 만들고 일이 끝이 나지 않았다. 버거운 육아와 가사 노동으로 울분이 쌓이고 분노가 올라왔다. 퇴근한 남편도 어지럽혀진 집안을 보고 불편해했다. 먹을 것이 변변찮아 남편도 화가 나서 자주 다투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외출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아파트 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맴돌았다. 난 점점 사나운 엄마 아내가 되었다. 아이를 가르치던 일도 아이 둘이 생기니 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
아이를 낳는 것은 기적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고 그 인간의 몸에서 나와 같은 종의 아이를 낳는다는 건 경이 그 자체였다. 그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행복이었다. 나 아닌 타자가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할 일이 쌓이고 외부 세상과 단절되는 경험은 나의 그다지 좋지 못한 내면을 만나야 아픔의 시작점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출산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내 몸이 부서져야 아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한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한 세계를 부수는 과정이었다.
기꺼이 할 수 있었다. 모성이란 건 그런 거였다. 아직도 아이가 태어난 9월의 바람이 불어올 무렵 그때의 산통이 온몸에 다가온다. 몸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기꺼이 감사한다. 내가 세상에 한 생명이 오는 통로로 쓰일 수 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