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만나는 분노
두 아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든 건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분노를 만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발달 단계에 맞게 건강하게 잘 자랐다. 하지만 내 속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분노는 순한 아이들에게 쏟아졌다. 아이도 짜증이 늘고 울음이 늘었다.
둘째는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분리 불안까지 동반했다. 엄마에게서 안정감은 느끼지 못한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 울음을 터뜨렸다. 첫째는 말을 하는 시기라 나와 말로 다툼이 잦아졌다. 외향성과 활동성이 겸하여지다 보니 어디를 가든 부산스러웠고 제지하느라 번번이 애를 먹었다. 나도 힘들고 아이 둘은 침울해졌다. 나의 내면의 고장이 발견될 때면 늘 절망이 찾아왔다.
우연히 동네에서 광고를 보았다. 부모 역할 훈련 일명 PET (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광고였다. 8주간 동안 듣는 훈련, 말하기 훈련, 의견 조율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강의를 들으러 갔다. 신기했다.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내가 말하는 방법을 바꾸자 집안 분위기가 변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였다.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내 마음을 전달하면 아이가 내 말을 경청하고 순응했다. 신기했다.
하지만 강좌가 끝나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난 다시 소리를 질렀고 아이는 반항했다. 분명 다른 삶이 있다는 걸 경험했는데 왜 난 제자리인지 또 절망했다. 다시 교육을 받으러 갔다. 몸에 익을 때까지 몇 번을 다녔다. 나중에는 강사 과정에 지원했다.
PET 교육을 통해 나는 달라졌다. 아이들의 말 특히 감정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에 아 힘들구나, 아 속상하겠다, 슬펐겠구나 라는 말을 하는 법을 배웠다. 아이는 내 말에 금방 얼굴이 환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도 <너 이거 왜 이렇게 했어> 대신 <엄마는 네가 양말을 빨래통에 담아두면 마음이 참 기뻐. 다음에 양말을 벗어 여기 담아줘> 너 전달법 대신 나 전달법을 사용했다.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도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다. 외식을 하러 갈 때도 모두 의견을 말했다. 네 사람의 의견이 합의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동의하면 메뉴를 정하고 길을 나섰다. 아이도 부모도 다 한 표 한 표였다.
4번 연속받은 PET 훈련은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이 더 알고 싶었다.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을 경험하는 것은 더 많은 교육의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두 아이가 유치원에 갈 무렵 크리스천 상담 연구원이라는 곳을 찾았다.
월요일에 한 번 하루 종일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1년을 그곳에서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배웠다. 특별히 원장님이 들려주시는 어린 시절 고난과 극복하는 과정은 수강을 하는 학생들에게 매번 감동을 주었다. 수업 시작 전에 서로에게 물었다.
“손수건 준비했어?”
우리 모두 아픈 마음을 치유했다. 1년은 금방 흘렀고 더 공부하고 싶었다. 다른 기관을 찾았다, 하이 패밀리 그곳에서 교수님들의 강의와 상담 실습을 겸하며 1년을 보냈다. 교수님들이 마련하는 특별 강좌에도 그 당시 비싼 돈을 내고 참석했다. 그렇게 2년을 심화 과정에서 공부하는 동안 마음에 관해 더 많은 공부하는 꿈을 꾸었다.
부모 역할 훈련은 내게 좋은 출발이 되었다. 사람이 안 변하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배움을 통해 변할 수 있음을 몸소 경험하게 해 주었다. 내 부모가 나를 대하던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는데 사람이 사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았다. 배움은 나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자신의 속에 갇혀 살던 남편도 조금씩 문을 열었다.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대상은 언제나 남편이었다. 몇 년간 말없이 듣던 남편도 강좌에 참석하기 위해 월요일 아예 결근을 요청했다. 남편도 자신의 마음을 알기 위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