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땅에 디디지 못하는 삶 (5-1)

미국 생활 시작

by 소명작가

온 가족이 한국을 떠나던 2006년 6월 대한민국은 뜨거웠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는 4년 뒤 월드컵에도 이어졌다. 월드컵의 열기가 무르익은 6월 14일 우리 가족은 축구 응원복을 입고 미국 뉴욕 공항에 도착했다. 시어머님과 큰 집의 두 남자 조카도 함께 입국했다. 우리를 배웅하는 의미도 있었고 큰딸을 보고 싶은 마음, 큰집 조카들의 영어 공부도 겸하여 7명이 입국을 했다.

시누이 집에 짐을 풀었다. 한국에서 입국한 7명과 형님 세 식구 10명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대식구의 삶이었지만 지하, 1층 그리고 2층으로 나누어진 집이라 그리 북적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큰 집도 아닌데 한국 집 구조에 익숙해진 내 눈에 그 집은 내게 영화에서만 보던 저택 같았다.


“형님 어찌 이리 넓은 집에 사세요? 너무 보기 좋아요.”


우린 그 집에서 남편의 4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첫발을 디딘 미국은 자연의 왕국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큰 나무, 집 뒤뜰에서 연결된 공원도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운동장이었다. 동네 산책길에도 큰 나무와 공원이 있었다. 어딜 가도 나무와 새, 꽃이 반겼다.


형님은 당시 세탁소에서 옷을 고치는 테일러 일을 하셨다. 일주일에 4일은 출근을 했는데 집에 돌아오면 차려진 밥상에 너무도 행복하노라 자주 말하곤 했었다. 예전에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으로 밥을 했는데 나와 함께 살게 되면서 요리에 대한 부담이 없어져서 행복해했다.


우리가 짐을 푼 미국 동네에는 한국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뉴저지 부촌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동네였다. 우리가 도착한 6월은 미국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한국에서 일부러 영어 공부를 전혀 시키지 않았다. 미국에 와서 미국식 발음을 그대로 익히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마침 조카가 학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 조카가 며칠간 파닉스를 가르치고 ESL 반에서 영어를 익혔다.


아들은 방학 동안 타운에 있는 축구 교실에 참가했다. 한국에서 활동적이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이는 구석에 혼자 있는 게 다반사였다. 그 아이를 운동장 바깥에서 지켜보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딸은 1학년이었다. 미국 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년이 바뀌었다. 아들은 3학년 딸은 2학년에 배정되었다. 한국에서는 학년 차이가 2년이었는데 미국에서는 1년이 되었다. 집 앞에 영화에서만 보던 노란색 스쿨버스가 왔다. 아이는 책가방을 울러 매고 차에 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첫날 지하실 방 책상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낯설고 힘들까 싶어 나도 함께 말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스쿨버스가 집 앞에 도착하기 전에 나가 있으라고 시누이가 신신당부하고 아침에 출근했다. 설거지하며 밖을 내다보니 이웃집 엄마들이 서너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난 그들 옆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영어도 못하는데 그들과 말을 섞기가 힘들었다.

부엌 창문으로 보다가 스쿨버스가 도착하면 나가야지 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스쿨버스가 떠나는 중이었다.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는데 딸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놀랐다. 남편과 딸을 찾으러 차를 타고 스쿨버스를 쫓아갔다. 그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해 교무실에 들어서니 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웅크린 딸은 나를 보고 나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놀라 울지도 못했다.


좌충우돌 우린 그 집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형님 가족들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 그땐 몰랐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이 낯선 미국 땅에서 우린 어떤 모습으로 생존했을까? 선뜻 집을 내준 고모, 매일 퇴근길에 아이들의 학교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준 조카, 그 비싼 학원비를 한 푼도 받지 않고 내내 공부시켜 준 큰 조카, 잡다한 관공서 일을 함께 진행해 주신 아주버님.


이미 익숙해진 미국 생활 속에 난 그분들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있음을 알았다.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미국 생활의 타성에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룬 듯 착각에 빠졌다. 아들과 딸은 명문 고등학교, 명문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대기업에 취업해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분들이 내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분 친절 덕분이다.

익숙해진 삶을 살다 보면 작은 몸짓에 서운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나는 그들의 은혜를 물에 새기고 작은 몸짓도 서운함으로 새기고 살고 있다. 나의 삶은 여전히 은혜를 모르는 삶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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