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치유자 (5-2)

박사 과정

by 소명작가

일단 3년을 기한으로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기로 했다. 3년 동안 영어 공부와 상담 학위를 받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 역시 공부할 적절한 과정을 찾으면 상담 공부를 하기로 했다. 남편은 학기제로 운영하는 Fuller에서 개설된 상담학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미국 학교에 개설된 한국어 과정이었다.

또 목회학 상담 과정이라 공부가 힘들지는 않았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학기 중 일주일 출석 수업에 참여하면 학위를 받는 과정이었다. 남편은 그곳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목회에 금방 적용할 수 있는 실제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여러 분야의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내면 성찰이 깊어졌고 학문적으로 상담에 관한 기초와 전문 지식을 넓혔다.


나도 상담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인의 소개로 맨해튼 블랜톤 필 상담학교에 입학을 했다. 2년 과정이었다. 30명 남짓 한인들과 함께 수업을 받았다. 수업은 토요일 내내 맨해튼에서 했다. 토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맨해튼으로 나갔다. 영화에서만 보던 맨 허튼 시내를 걷는 건 토요일 나만의 낭만이었다. 여러 수업이 다 좋았지만 마지막 시간 Peer Group 모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현재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시작하건 상관없이 그 이야기에 반응하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 생각과 느낌만을 이야기하는 건 낯설고 힘들었지만 내 안에 온전히 집중하는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내 생각과 느낌은 언제나 부정되는 교육만을 받았는데 내 생각과 느낌이 정답이어야 하는 시간은 내게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다.


함께 공부하던 동기생 중 유난히 차분하고 인자한 분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 주위로 사람이 몰려들었다. 나만 그분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찬찬한 말과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늘 솔직하게 털어놓은 모습은 언제나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했다. 학기가 좀 지나고 나서 말문을 턴 만남은 나의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난 그동안 내 삶의 열쇠를 찾으려는 마음으로 심리학 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공부가 깊이를 더해갈수록 이상하게 변하는 내 모습에 힘겨웠다. 심리학을 공부할수록 내면의 울분과 고통이 깊어졌다. 배운 대로 내 삶의 자아를 찾고 내면의 생각 감정을 나름 존중하려 했지만 나는 점점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더 이기적이고 더 괴팍해졌다. 이웃과 나누지 못했다. 아무도 방해받지 않고 싶어 내 안에 두꺼운 벽을 쌓고 고립되었다. 난 언제나 피해자였고 타인은 가해자였다. 난 언제나 상처받았고 타인은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 심리학을 배울수록 우물가의 여인처럼 목마름은 깊어졌다.


심리학에 회의가 절정일 그때 그분은 내게 전혀 다른 상담학을 전수해 주었다. 성경적 상담학이었다. 미국 크리스천 상담학 분야에서 저명한 래리 크렙의 성경적 상담학을 한국에서 배웠다고 했다. 지금까지 배운 심리학 상담학 그리고 신앙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상담학이었다.


남편도 상담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라 성경적 상담학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분은 우리 둘을 위해 강좌를 열어주었다. 8번의 강좌를 들으며 인간 내면의 구조를 이해했고, 내 안의 죄는 무엇이며 그 죄를 다루는 방법과 죄를 해결하는 회개의 방법을 배웠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내 마음을 해결하는 과정을 알려달라고 기도했던 기도의 응답이었다. 성경적 상담의 7단계로 분석하면 풀리지 않던 내면의 문제와 매듭이 풀렸다.


나는 이 7단계를 배운 후 2년 동안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책상에 앉았다. 내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7단계로 분석했다. 마음이 혼란스러운 일이 줄었다. 원망스러운 타인이 줄었다. 모든 게 내 문제였다. 내 안의 생각 구조와 틀이 문제였다. 어린 시절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성인이 된 나에게 계속 영향을 미쳤다.

정신의 수술 과정이었다. 엉켜진 문제는 풀고 끊어진 조각은 이어주고 뭉그러진 부분은 자르고, 잇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했다. 웃기 시작했다. 웃는 것이 가능해졌다. 누굴 만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토록 원망하던 부모님과도 관계를 회복했다. 난 타인의 시선에 규정된 내가 아니라 비로소 본연의 나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 내면 탐구 과정에서 공부가 우상이 된 나를 발견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아버지의 초등학교 졸업장을 떼고 나오던 날 공부해서 그들을 비웃어 주겠다는 내적 맹세를 버렸다. 마지막 논문 학기에는 박사학위에 집착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논문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함께 공부하던 동기생의 응원과 가족의 응원으로 학위를 마무리했다.


성대한 졸업식은 없었다. 아예 학위 과정을 마무리한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나는 나로 살 수 있었다. 세상이 정해 주는 자리, 만들어지지 않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학위는 책꽂이 깊숙이 감추고 이민의 삶에 충실했다. 유학 3년의 기한으로 시작한 미국 삶이 정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교육 목사로 일하던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부름을 받았다. 숙고 끝에 담임 목사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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