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사진 속 나는 사랑받은 아이
백일 기념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이가 있다. 앞으로 솟은 시원한 이마가 있다. 눈이 똘똘하다. 온 눈에 힘을 주며 카메라가 아닌 누군가를 가만히 응시한다. 콧날은 오뚝하고 높지도 낮지도 않다. 콧날 아래 인중이 선명하다. 표정 없이 입술은 모아져 있다. 아랫입술은 두툼하다. 양옆의 귀는 얼굴 뒤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값이 나가 보이는 털실 옷을 입고 있었다. 목에는 꽃받침이 있고 윗도리와 아랫도리가 분리된 옷, 양말까지 한 벌로 맞춘 만든 이의 정성이 가득 들어간 고급 옷이다. 군데군데 다른 색깔 문양도 들어있다. 머리도 백일이라 가지런히 정리를 해 둔 듯하다. 약간 처질듯한 통통하게 오른 볼살을 보니 잘 먹고 잘 잤다.
그녀는 처음 알았다. 백일 사진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오래된 사진 묶음에서 그 사진을 보고서야 자신도 백일 사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는 동안 그녀는 내내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소리를 지르며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하는 엄마의 간섭을 받아내느라 지치고 힘들었다. 아니 그녀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남동생이 태어나기까지 그저 이혼으로 도망가는 남편을 붙잡아 둔 하나의 매개체였을 뿐 그녀의 엄마에게 그녀는 그다지 소중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고 놀랐다. 백일 된 딸의 사진을 찍었다니. 예사 정성이 아니고서야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 시골 마을에 그래도 라라 사진관이라는 사진관 하나가 시내에 있다. 지금도 사진관에 가면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든 비싼 돈을 내야 가족사진을 찍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그녀는 딸의 백일을 기념했다.
백일 전에 죽는 아이가 허다했다. 그래서 백일 전에는 출생 신고도 하지 않는 일이 예사로운 때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꼬까옷을 입고 시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25살 앳된 엄마에게 처음 온 생명이었다. 존재 자체가 경이고 신비 그 자체였다. 젖을 빨고 울고 웃고 그 생명으로 불안 불안한 결혼 생활도 안정이 되었다. 그 아이는 엄마에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무수한 눈 맞춤을 하지 않고서는 저런 눈망울을 백일 된 아이가 가질 수 없다. 아이는 엄마의 눈을 보며 자라니까
사랑은 여러 색깔의 옷을 입는다. 여러 모양의 색을 갖는다. 그래서 한쪽에서 사랑의 빛깔과 옷을 보여주지만 바라보는 쪽에서 취향이 달라서 영 마뜩잖을 수도 있다. 특히 그 상대가 까다롭거나 이기적이면 그 모든 상대방의 노력은 보이지 않을 게 분명하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철이 들어도 한 번 각인된 자신의 신념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백일 사진이라는 하얀 글씨 속의 어린아이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다.
‘너 충분히 사랑받았어. 내 눈을 봐. 얼마나 수많은 눈 맞춤을 한 눈빛이니? 얼마나 많이 나로 인해 행복했겠니? 엄마 아빠는 내 존재로 헤어지지 않았어’
그녀는 보았다. 그 아이의 엄마가 얼마나 세상에 나온 그녀를 환대했는지 이제야 알아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심통을 부리고 투정을 부렸다. 15개월 뒤에 태어난 남동생이 엄마의 사랑을 다 빼앗아 갔다고 왜 그녀만 미워하냐고, 왜 그녀가 먼저 태어났는데 남동생 밥을 먼저 퍼냐고, 왜 사람들이 진희 엄마 안 부르고 수홍이 엄마라고 부르냐고 ….
너무 늦었다. 그녀는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고 원망하던 일을 사과하고 싶은데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마음이 아팠다. 사과를 받아야 할 엄마는 이미 말을 건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남겨둔 다른 피붙이가 있다. 조건 없는 사랑과 환대를 베푼 엄마가 지금도 가장 기뻐할 일은 엄마가 남긴 또 다른 생명들과 즐거운 만남을 갖는 것일 것이다. 그녀의 엄마가 사랑하던 또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일을 가장 기뻐할 것이다. 그녀의 엄마에게 엎드려 무릎 꿇고 ‘그동안 내가 오해했었노라, 내가 철없었노라’ 사죄하는 대신 이제 그녀는 엄마가 가장 기뻐할 일을 찾아 나서려 한다.
세상에 온 그 아이를 온 힘으로 환대해 준 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