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소민 Nov 17. 2024

악보 뒤 드러난 얼굴

10장

어느 날, 운영진에서 새로운 협연 곡이 결정되었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유진은 그 소식을 듣고 문득 궁금해졌다. ‘이번에 협연자로 선정된 사람은 누구일까?’ 그녀는 오케스트라 내에서 협연자로 선택된 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 순간, 유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협연자는 다름 아닌 서현의 딸이었다.


‘서현의 딸이 협연자라고?’


유진은 속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저 우연이라기엔 너무나도 의아했다. 곧 그녀는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둘 알게 되었다. 서현은 오케스트라에 큰 재정적 기여를 해왔고, 그 대가로 자신의 딸이 협연자로 선정된 것이었다. 그 순간 유진은 마치 진실의 장막이 걷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현이 오케스트라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웠고, 그 재력이 오케스트라 운영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진은 마음속에서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도 결국은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건가?’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서현이 단장 자리에 오른 것이 실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유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서현이 단순한 연주자의 역할을 넘어, 오케스트라 내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협연자로 딸을 내세우는 과정에서조차, 서현은 재정적 기여와 권력을 거래했던 것이다. 유진은 그동안 오케스트라에서 느꼈던 모든 것이 허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가 무슨 의미가 있지...’


유진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티기 힘들다는 무력감에 짓눌렸다. 서현과 그녀의 영향력이 모든 것을 장악한 이 오케스트라에서, 유진이 설 자리는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정기연주회를 앞둔 어느 날, 유진은 손에 리플릿을 쥐었다. 첫 장을 넘기자, 단장 인사말과 함께 서현의 사진이 한가운데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 속 서현은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굵은 글씨로 ‘단장으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자부심’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유진은 순간 멈칫하며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단장으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자부심?’


유진은 속으로 의아함을 느꼈다. 이 문장은 마치 서현 혼자 모든 성과를 일군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리플릿을 쥔 유진의 손끝은 서서히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그동안 오케스트라는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유진은 연습에서부터 공연 준비까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리플릿은 마치 서현 한 사람의 수고로 이루어진 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서현의 얼굴이 차지한 넓은 지면과 과장된 미소는 유진의 가슴속에서 불쾌한 감정을 일으켰다. 그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서현의 자부심은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마치 오케스트라 내에서 그녀가 지닌 권력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듯했다. 유진은 손끝으로 리플릿을 천천히 넘겼지만, 서현의 얼굴과 그 문구가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는 우리 모두의 것 아닌가?’


유진의 속마음은 복잡해졌고, 리플릿을 넘길수록 더 이상 그녀에게 자부심 대신 무언가 허탈함만이 밀려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