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 사이에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펼쳐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 제목만큼은 나의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세상에는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호기심’이라는 단어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호기심은 모든 지적 생명체가 공유하는 본능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강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작은 지적 생명체다. 사실, 인간의 호기심은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은 때로는 생사를 건 모험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 다윈이라는 청년이 갈라파고스라는 외딴섬에 발을 디뎠던 이야기가 있다. 그도 꽤 호기심 많은 인간이었음에 틀림없다. 내 갈라파고스 친척 새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생전 처음 보고는, 겁 없이 다윈의 머리와 어깨 위로 날아들었다. 심지어 다윈의 손에 앉은 녀석도 있었는데, 그 순간 다윈이 모자로 덥석 잡아버렸다고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쳤다 해도 인간의 손은 너무나 강력하고 정교해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호기심은 식욕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식욕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본능일 뿐 아니라, 맛을 음미하고 즐기려는 욕구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나 많다. 이 모든 맛을 경험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은 우리 모란앵무에게 있어 크나큰 수치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 인간들은 늘 내게 알곡과 과일 향이 나는 팰릿을 준다. 가끔은 말린 과일이나 무염국수도 덤으로 준다. 말린 과일은 내 최애 음식이지만, 무염국수는 한 번 맛보고 그 밋밋함에 실망해 다시는 입도 대지 않는다. 엄마 인간은 내 집 위에 커다란 갑오징어 뼈를 걸어두었다. 처음에는 그저 장식품인 줄 알고 감상만 했지만, 어느 날 호기심이 발동하여 부리에 대어 보니, 사각사각 부서지며 은근히 짭짤한 맛이 났다. 나름 괜찮은 간식이었다.
그러나 나의 진정한 특식은 뭐니 뭐니 해도 인간의 음식이다. 아빠 인간은 저녁 식사 후 소파에 앉아 별별 간식을 즐기곤 한다. 그중에는 짭조름하고 바삭한 소리를 내는 음식도 있었다. 나는 아빠 인간의 손 위에 앉아 처량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빠 인간의 입 주변을 맴돌며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노렸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그 음식을 빼앗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야, 저리 가!"
아빠 인간은 나를 모질게 쫓아냈다. 하지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몇 번이고 시도한 끝에 결국 아빠 인간은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새우깡 하나를 던져 주었다. 나는 쏜살같이 달려가 그 맛을 탐닉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그런데 지금껏 이런 걸 혼자 먹기만 했단 말이야?’
감사보다는 원망이 먼저 솟구쳤다. 아빠 인간이 또 하나를 던져 주려고 손을 들자,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아싸!’
하지만 엄마 인간이 이내 저지하고 나섰다.
"그만 줘. 과자가 사람 몸에도 안 좋은데, 구름이가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그 순간 엄마 인간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식탁 위에 누나 인간의 흘린 밥풀도 별미다. 고소하고 쫀득한 그 맛은 일품이다. 하지만 부리에 끈적이는 밥풀이 묻기 때문에 털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여름이면 엄마 인간은 삶은 옥수수를 주고, 가을이면 구운 밤을, 겨울이면 시원한 홍시를 준다. 모두 내가 사랑하는 음식들이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다. 내가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들까지 생각하면, 80세가 넘도록 맛보고 맛보아도 부족할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갈 이유 중에 이만한 이유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