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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앵무새 호텔 첫째날

by 구름이

오늘, 엄마 인간과 함께 자가용을 올랐다. 병원에 가는 줄 알았는데, 오늘따라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느낌이 이상하던 찰나에 엄마 인간은 나를 안고 한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앵무새 친구들의 웃고 떠드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전화했던 구름이에요. 삼일 동안 호텔링 서비스를 이용하려구요.”

“네. 안녕하세요. 구름이는 특별히 신경 쓸 부분이 있나요?”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요. 다모낭증이 있어서 꼬리 쪽 털을 부리로 자주 뽑아요.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소독약만 뿌려주시면 돼요.”


나는 다른 친구들의 대화를 엿듣느라 엄마 인간의 대화 내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보다 훨씬 덩치 큰 녀석은 커다란 나뭇가지에 점잖게 앉아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신비로운 숲의 예언자처럼 우뚝 서 있었지만,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좀 눈에 거슬렸다. 물론 감히 내가 상대할 녀석은 아니었다.

“어머, 구름이가 좀 무서운가 보네.”

나는 엄마 인간의 어깨 위에 앉아서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구름아. 저기 모란앵무 친구들이 있다. 가 보자.”

엄마 인간은 나를 데리고 내 또래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아기 앵무와 모란앵무들은 커다란 박스 안에 오순도순 모여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살짝 내려 앉아서 그 녀석들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녀석들은 내 존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어머, 구름이가 새 구경 하네요. 후후후.”

“태어나자마자 입양했으니까, 모란앵무를 실제로 보는 건 거의 처음일 거에요. 자기가 사람인 줄 아나 봐요.”

엄마 인간의 대화 내용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아무리 머리가 안 좋아도 내가 사람이 아니라는 지능 정도는 갖고 있다.


모란앵무 녀석들은 참 신기하다. 서로 몰려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별일 없이 서로의 부리를 비비고 있다. 점점 호기심이 발동했다. 하늘의 달빛을 닮은 노오란 털을 가진 모란앵무 녀석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그 녀석 옆으로 사뿐히 날아가 착지했다. 녀석의 부리를 내 부리로 살짝 문질러 보았다. 그 녀석은 거부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녀석이 나타나더니 나를 부리로 쪼아댔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다가갔나? 너무 놀라서 기겁할 뻔했다. 푸드덕 날아서 엄마 인간의 어깨 위로 날아갔다. 나의 믿음직한 피난처는 역시 엄마 인간의 어깨이다.

“구름아, 괜찮아?”

엄마 인간도 깜짝 놀라서 내가 어디 다치지 않았는지 살펴본다.

‘엄마. 아픈데는 없지만, 너무 놀랐어요. 다시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을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 인간의 어깨에 부리를 사정없이 부벼댔다.


이런 정신 없는 와중에도 나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너무 놀라서 착지할 곳을 찾아 이리 저리 날아다니다가 엄마 인간의 어깨에 안전하게 착지하자, 나를 지켜보던 어린 남자 인간이 칭찬의 말을 쏟아 냈다.

“와, 애는 어떻게 이렇게 잘 날아요?”

‘후후. 나의 매력이 발산되었군.’ 하지만 엄마 인간은 나를 더 자랑하고 싶었나보다.

“윙컷 하기 전에는 훨씬 더 잘 날았어.”

역시 엄마들의 자식 자랑은 끝이 없는 바벨탑인 것 같다.


드디어 내가 묵을 방이 정해졌다.

예쁜 언니 인간은 큰 방에 있던 두 녀석을 옆 방으로 옮기고, 그 방을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구름이는 처음이라 갇혀있으면 답답해할 것 같아서, 넓은 방으로 드릴게요.”

“와, 구름아, 특실이다. 우리 집에 있는 너 방보다 세 배는 넓은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방이 넓고 아늑해도 자유로운 하늘보다 넓을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엄마 인간의 어깨에 앉아서 강제로 수용당하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다.


예쁜 언니 인간이 내 방에 먹을 것을 한가득 넣어 주는 것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말린 과일도 잔뜩 들어 있었다.

“어머,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넣어 줘도 돼요?”

엄마 인간은 걱정스러운 듯 물어 본다.

“괜찮아요. 애들은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만 먹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급식해줘도 상관없어요.”

이런 횡재가 있나! 집에서는 엄마 인간이 찔끔찔끔 주는 간식이라 늘 아쉬웠는데, 여기서는 아낌없이 나에게 베풀어 주었다. 나는 얼른 들어가서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구름이가 잘 먹네요. 적응을 잘할 것 같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엄마 인간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엄마 인간은 나를 다독이며 연신 말했다.


“구름아, 잘 먹고, 잘 놀고 있어. 엄마가 두 밤 자고 데리고 올게. 털 너무 많이 뽑지 말고, 건강하게 있어야 해. 엄마가 금방 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그렇게 엄마 인간은 떠났고, 나는 호텔에 혼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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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새들을 구경하였다. 하지만 녀석들이 너무 짹짹거려서 귀가 아팠다. 나처럼 과묵하고 사색적인 친구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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