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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앵무새 호텔 셋째날

by 구름이

태양의 화살 같은 햇살이 아침 창으로 날아와 날카롭게 꽂힌다.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이 어제와 같은 태양인지, 아니면 다른 태양인지 늘 궁금했다. 창문으로 날아오는 햇살의 각도는 하루하루 달랐고, 빛의 굵기도 매번 달랐다. 어떤 날은 구름 속에 숨어서 수줍게 떠 올랐고, 또 어떤 날은 멀찍이 자리한 아파트 틈에서 마치 핵폭탄이 폭발하듯 터져 올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속의 태양은 매일 달랐다. 특히 오늘 같은 날, 그것이 어제의 태양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오늘은 엄마 인간이 나를 데리러 오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두 밤을 자고 나면 엄마 인간은 온다고 했다.


문득 어디선가 읽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내일은 언제와요?”

엄마는 다정하게 대답했다.

“자고 나면 내일이야.”

아이는 잠을 자고 일어난 뒤 엄마에게 또 물었다.

“엄마, 이제 내일이에요?”
엄마는 웃으면서 다시 대답했다.

“아니야. 오늘 자고 나면 내일이야.”

하룻밤을 더 자고 난 뒤에 아이는 같은 질문을 했다.

“이제 정말 내일 맞죠?”
그러나 아이는 결코 내일은 만날 수 없었다. 자고 나면 언제나 아이를 맞이하는 것은 ‘오늘’이었으니까.


나에게 오늘은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었다. 오늘의 태양은 내일의 태양으로 빛나기에 더 눈이 부셨다. 아침을 먹고, 친구들이 노랫소리와 장난치는 소리, 때로는 다투는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가는 걸까?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을 때는 그처럼 쏜살같이 지나가던 시간이었는데, 기다리는 동안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기 싫어 뒷걸음치는 그림자처럼 질질 끌려 지나간다.


시간은 두 가지 속성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은 객관적 시간이다. 누구도 25시간이나 23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또 하나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 시간이다. 주어진 24시간으로 같지만, 우리가 느끼는 시간 감각은 모두 다르다. 사랑하는 노랑이 친구와 같이 놀 때는 얼마나 시간이 짧은지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의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꽁꽁 묶어서 어두운 독방에 가두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잔인할 만큼 너무나 길다. 나의 시선은 늘 같은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다. 미세한 소리와 옅은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나의 눈동자는 흔들린다. 마치 기다림은 고문처럼 나의 뼈를 서서히 깎아 내린다.


고문같은 시간 속에서 아침의 태양은 시커멓게 변한 피부색으로 어둠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때 현관문에 달아 놓은 종소리가 경쾌하게 딸랑거리며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낯익은 얼굴들이 앵무새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구름아, 잘 지냈어?”

엄마 인간이 반갑게 다가와 내 방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엄마 인간의 손가락 위에 폴짝 올라탔다.

“구름아, 밥 잘 먹었어?”

엄마 인간의 등 뒤에서 또 다른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반쪽, 동반자인 아빠 인간이었다. 나는 얼른 아빠 인간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내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그저 아빠 인간의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를 분주히 오고 갈 뿐이다.


기다림의 끝에서, 다시 떠오르는 오늘을 본다.


IMG_1251.JPG 아빠 인간의 어깨에 앉아 털을 고르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시간이다. 나의 반쪽, 인생의 동반자인 아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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