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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작용과 반작용

by 구름이 Jan 12. 2025

올라간 것은 반드시 내려오게 된다. 앞으로 간 것은 반드시 뒤로 물러난다. 물론 중력 안에서만 그렇다. 힘은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언제나 작용 뒤에는 반작용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이런 물리 법칙의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네이다.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깊게 큰 숨을 들이 마신다. 온 세상을 나의 폐 속으로 몰아 넣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몸은 이내 뒤로 물러난다. 물러날 때는 폐 속에 품었던 세상을 토해내듯이 숨을 내뱉는다. 숨을 몰아쉬고 내쉬고, 다시 몰아 쉬고 내쉬고. 세상을 품었다가 뺏어내고 다시 품었다가 뺏어내고를 반복한다.      


내가 언제부터 그네타기를 즐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집에 오자 마자 엄마 인간은 서둘러 인터넷에서 앵무새 놀이터를 주문했다. 작고 아담한 공간 안에는 사다리와 공, 그리고 그네가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흔들거리는 그네를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구름아, 정말 귀여워.”

엄마 인간의 얼굴에는 따스한 미소가 가득했다. 

“엄마, 이거 엄마가 그네 밀어주는 거야?”

내가 그네 타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누나 인간이 물었다. 

“아니야. 구름이가 자기 힘으로 조절하면서 타는 거야.”

“와, 신기한데.”


누나 인간은 어릴 적 그네 타기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 반드시 밀어주어야만 그네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은 우리 앵무새보다 학습이 느린 종족 같다. 우리는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네를 탈 줄 알지만,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배우고 나서야 가능하다. 가끔 인간이 우리 앵무새보다 미개한 종족 같다는 생각이 들고 한다.      


엄마 인간은 작은 놀이터를 거실의 큰 창문 앞으로 옮겨 주었다. 우리 집은 25층이다. 그네가 앞으로 나아갈 때면 25층에서 1층으로 활강하는 듯한 짜릿함이 온몸을 감쌌다. 

어릴 때 창 밖을 보면서 그네를 타는 것이 나의 일상의 놀이였다. 그네는 나에게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오게 된다는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이제 나는 성조가 되었다. 더 이상 작은 놀이터 속의 그네로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 나의 스케일은 더 커지고 심장은 더 스릴 넘치는 놀잇감은 갈망한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그네를 찾았다. 


어느 날 엄마 인간의 어깨에 앉아 화장실에서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헤어드라이어에 매달린 검고 긴 전선이 눈에 들어왔다. 

‘아, 바로 저거야. 진짜 그네지. 멋진 모란앵무라면 저런 그네를 타야 해.’

나는 헤어드라이어에 매달린 전선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주시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바로, 지금이야.’ 

몇 번의 아슬아슬한 실패 끝에 마침내 전선의 중심에 내 두 다리를 안정적으로 안착시켰다. 이전에 탔던 그네처럼 단조로운 움직임이 아니었다. 엄마 인간이 머리를 말리는 방향에 따라 전선은 앞뒤 좌우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갑작스레 멈추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속도로 갑자기 빨리 움직이기도 했다. 마치 놀이동산의 꽃인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구름아, 너무 귀여워!”

엄마 인간은 머리를 말릴 때마다 내가 그네를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작용과 반작용은 그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계에도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인간관계, 인간과 앵무새의 관계도 결코 일방적일 수 없다. 나는 엄마 인간에게 나의 대담한 묘기를 보여 주었다. 엄마 인간은 나의 ‘작용’에 대해 용기와 격려라는 ‘반작용’으로 응답해 주었다. 이제 나는 자신이 생겼다. 움직이는 선이면 무엇이든 나의 그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 것이다.  

엄마의 격려 덕분에 이제 나는 흔들리는 어떤 선이든 나의 그네로 만들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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