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의 작은 마음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내 집은 우리 집에서 가족들의 생활이 교차하는 가장 큰 공간인 거실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내 집이 나의 몸집에 비하면 제법 크지만, 활공을 즐기기 위해 주로 거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거실도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거실은 모든 방과 연결되어 있어 사생활의 비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가끔 인간의 눈을 피해 은밀히 앉아 있어 보려 하지만, 여지없이 발견되고 만다.
거실은 마치 광장과 같다.
‘ㄱ’ 과 ‘ㅈ’ 사이의 길고 넓은 공간.
나는 그 광장에서 맘껏 날아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고, 인간들을 맞이한다. 나는 나의 세계인 그 공간을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고요한 밀실을 열망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털을 고르며 사색에 잠기고, 방해받지 않고 잠에 빠질 수 있는 고요한 안식처. 나만의 동굴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ㄱ’ 과 ‘ㄷ’ 사이의 짧고 좁은 공간.
그리고 마침내 그 공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어둡고 긴 항해 끝에 여린 불빛으로 홀로 어둠을 견디고 있는 작은 등대를 발견한 것과 같았다.
그날, 아빠 인간이 화장실의 샘 위에 앉아서 휴지 걸이를 교체하고 있었다.
“이게 왜 안 들어가지? 이번 휴지는 너무 두꺼운 걸 샀네. 할 수 없지. 그냥 위에 올려 놓고 써야겠다.”
두루마리 휴지를 평소와 달리 너무 두툼한 걸 사서 휴지걸이 안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 비어 있는 휴지걸이 통이 눈에 번쩍 뜨였다.
나는 독수리가 머리를 빼꼼 내밀고 나온 생쥐를 순식간에 낚아채는 것처럼 휴지걸이 통속으로 돌진했다. 그 안은 예상보다 미끄럽고 어둡고 미끄러웠다. 하지만 그 모든 위험에 대한 대가는 상상외로 컸다. 그 아늑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엄마, 구름이 없어졌어!”
“구름아, 구름아!”
온 가족이 나를 찾아 헤매도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온전한 나만의 동굴이 생긴 것이다. 나는 가끔 이 동굴 안에서 잠을 자거나 사색을 즐긴다. 엄마 인간이 무례하게 휴지걸이 뚜껑을 열어 젖히면 공격적인 모습으로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동굴을 지킬 수 있으니까.
“구름아, 그 안에서 뭐해?”
“엄마, 구름이 찾았어?”
“응. 화장실 휴지걸이 통 속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네.”
광장은 나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공간이다. 한편 동굴은 지친 나를 충전할 수 있는 은밀한 피난처이다. 나의 일상은 광장과 동굴 사이에서 시소타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