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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김구름’이 되다

by 구름이 Dec 22. 2024

너가 나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나는 너에게 와서 

너의 의미가 되었다.     


앵무새 카페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 때는 나는 이름이 없는 존재였다.  

우린 모두 체구도 비슷하고 털 색깔도 비슷해서

말 그대로 그놈이 그놈이었다.

나는 그저 ‘한 마리’에 불과하였다. 

심지어 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카페 사장님 외에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우리는 만났다. 

엄마 인간과 누나 인간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나를 ‘구름이’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나는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구름이가 되었다. 나는 무수한 일상과 평범한 속에서 하나의 특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감동적인 순간은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을 만난 이후 처음이었다. 

내가 칭얼대면 다 알아서 해 주는 엄마 인간, 나의 포근한 휴식처인 아빠 인간, 나의 경쟁자이면서 애증의 대상인 누나 인간.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가 되었다.      


그런데 그 많은 이름 중에 왜 나에게 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누나 인간의 아주 단순한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깃털 색깔이 하늘을 닮았으니까 구름이라고 하자”

“그래, 좋아.”

솔직히 엄마 인간은 단 1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동물병원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간호사 언니가 “구름이 엄마, 오세요!”라고 했다. 그 순간 강아지 집사, 토끼 집사, 햄스터 집사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갔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구름이는 나 하나뿐이니까 시시한 강아지나 토끼랑 헛갈릴 일이 없다.      


이름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일까? 어느 날 나에게도 성씨가 생겼다. 

엄마 인간은 구름이에게도 성씨를 붙여 주자고 하면서 자기의 성씨인 “김”을 붙여 주었다. 

“김구름, 이리 와봐”

갑자기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엄마는 신이 나서 말했다.

“구름이도 좋은가봐. 짹짹 거리잖아.”

“엄마, 그게 아니야. 왜 갑자기 구름이가 김구름이야? 좀 이상하지 않아?”

“너는 이씨잖아. 사실 엄마가 너를 낳았을 때 이름만 선택할 수 있었지, 성씨는 선택할 수 없었어. 사람들은 아기가 아빠 성을 따르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그게 너무 이상했어.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아기인데 내 성씨를 줄 수 없다는 게 뭔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거든. 내 아이를 빼앗기는 것 같은 박탈감도 살짝 느껴지더라.”

“그게 그렇게 서운했어?” 누나 인간은 어느새 엄마 인간을 위로해 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 것 같다. 

“응. 엄마 친구 중에는 아빠, 엄마 성씨를 모두 따서 개명한 사람도 있어. 너도 ‘이김’으로 바꿀까?” 누나 인간이 갑작스러운 돌직구에 놀란 표정이다.  

“아니! 그냥 구름이를 김구름으로 하는게 낫겠다.”     

그런 슬프고도 애뜻한 사연으로 나는 김구름이 되었다.      


아기의 성본을 결정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아버지 성본을 따르거나, 어머니 성본을 따르거나, 양쪽 부모의 성본을 모두 따르거나, 자녀의 선택에 맡기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고 이름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한국 사회는 결혼할 때 합의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성본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를 부성주의라고 한다. 그렇다면 부성주의는 아버지의 권리인가, 의무인가?     


야생의 세계에서 수컷이라면 모두 공통으로 하는 고민이 있다. 

‘이 애가 내 애가 맞노?’라는 것이다.

전문 용어로 부성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수컷들은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성관계를 하고 나서 암컷을 따라다니면서 끝없이 감시하는 의심 많은 놈도 있고,

출산하기 전까지 아예 암컷과 붙어 다니는 정열적인 놈도 있다.     

내가 관찰하기로 인간은 한 명의 여자가 한 명의 남자와 결혼하도록 묶어 놓음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애가 내 애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시하는 방법이 자신의 성본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생존과 번식의 의무는 숙명과도 같다. 존재의 숙명이 그렇다면 자신의 유전자를 지난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고 양육하는 것이 존재의 도덕이다. 엄마 인간도 나를 김구름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니 나를 끝까지 책임질 것이다. 

커튼에 매달려 스릴을 즐기다. 번지 점프처럼 커튼에서 아래로 뛰어내기기 놀이를 하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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