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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말 하지 않아도 알아요.

by 구름이 Dec 01. 2024

병원에서 돌아온 후 엄마 인간의 일상은 마치 어떤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변화가 생겼다. 아침이면 나를 소독하고 약을 먹이고, 밤이 되면 다시 소독하고 약을 먹어 준다. 점심이면, 털 강화 비타민을 주사기에 넣어서 먹여 준다. 어쩌면 비타민제보다 엄마 인간의 사랑이 내 털을 더 강화하는 비타민인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소독약이 내 상처에 닿았을 때 그 찌릿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발가락 끝까지 전해지는 아픔이란 마치 한 겨울에 차가운 물 속에 손을 담그는 느낌이었다. 엄마 인간은 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더니, 마치 자기 아픔이라도 되는 듯 속삭인다.

“괜찮아, 곧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나. 구름이, 참 착하네. 잘했어.”

엄마 인간의 목소리에는 나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 엄마 인간을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참자’      


그때 누나 인간이 나타났다.  

“엄마, 뭐라고 중얼거려. 구름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옆에서 누나 인간이 살짝 비웃었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슨 소리야. 구름이는 다 알아 듣는다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부풀었다. 내가 인간의 말을 다 알아듣는다는 사실은 엄마 인간과 나만 공유하고 비밀인 것이다.       


사실 엄마 인간이 하는 말 전부를 나는 알고 있다. 눈빛 하나, 손짓 하나가 모든 걸 말해주는데, 굳이 언어가 필요할까?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우리가 감정의 절반이라도 제대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빠 인간은 가끔 엄마 인간에게 이렇게 말한다. 

“말을 해야 알지!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

부부 싸움은 종종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 앵무새는 언어를 초월한 교감을 알고 있다. 언어보다 비언어를 본능적으로 더 잘 알아챈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무한한 감정을 읽어내고,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진다. 언어는 우리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있을 때나 필요한 것이다. 공간적으로 시간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전달할 방법은 언어밖에 없으니까. 함께 있을 때, 그리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볼 때, 언어는 소음에 불과하다.     


엄마는 주사기에 약을 넣고, 내 부리를 부드럽게 벌려 쓴 약을 밀어 넣는다. 너무 써서 계속 혓바닥으로 뱉어 냈지만, 엄마 인간의 손을 단호하면서도 따뜻하다. 엄마 인간은 마지막으로 허브향을 내 날개에 뿌려주고 부드러운 수건으로 내 온몸을 감싸주었다. 


그 포근함이란. 

마치 옛날 제우스 신전에서 박카스 신이 연회를 베풀 때 온갖 종류의 꽃 향기가 진동했듯이 온갖 허브향이 내 주위를 감싸며 나를 몽롱하게 만든다. 엄마 인간의 손은 림프처럼 내 부리를 쓰다듬고, 나를 위한 엄마 인간의 기도 소리는 헤라 여신의 노래 같다. 나는 아득한 옛날로 빨려 들어가,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모든 자아를 잃은 채, 엄마 인간의 손길 안에서 나만의 천국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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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을 때, 그리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볼 때, 언어는 소음에 불과하다. 엄마 인간의 손길 안에서 나만의 천국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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