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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생로병사의 병(病)이 찾아오다

by 구름이

삶은 마치 바람과 같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바람이 언제 불어올지 알 수 없듯이 병도 그렇다.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 것이고, 살아있기 때문에 병이 있는 법이다. 삶이라는 사막에서 한 줄기 바람처럼 병이 찾아 왔다.


어느 순간부터, 목 주변이 가렵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고 본능적으로 날개짓을 하고 부리로 털을 고르는 것이 일상의 리츄얼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털을 고르다 보면 빠지는 털이 평소보다 많다고 느껴졌다. 이튿날, 다시 가려움이 꽁지 깃털 주변에 느껴졌다. 부리로 살며시 정리하다 보니 떠나가는 털이 떠나야 할 시간을 재촉하는 듯하다.


엄마 인간과 아빠 인간은 분주하게 두 주를 보냈다. 나 또한 깃털과 씨름하며 바쁜 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저녁, 누나 인간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평소에도 느꼈지만 누나 인간은 이 집에서 관찰력이 가장 좋다. 예전에 경비 아저씨의 운동화가 바뀌었는데, 그걸 가장 먼저 알아챈 것도 누나 인간이었다.

“엄마, 구름이 목 주변에 피부가 좀 빨개진 것 같애!” 그녀의 말은 마치 새벽에 뜬 별처럼 영롱하고 또렷하게 들렸다.

“글쎄.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는데. 좀 두고 보자”

역시 엄마 인간은 MBTI가 ‘T’라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이성’이라는 이름을 지닌 차가운 얼음 위로 누나 인간이 띄운 새벽 별은 미끄러져 내려가 버렸다.

‘어머, 구름이가 어디 아픈가? 불쌍하네.’ 이런 말이라도 할 것이지.

도무지 공감을 하지 못한다. 가끔 인간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나갔다. 나는 여전히 피부의 가려움과 함께 부리로 목과 엉덩이를 긁으며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엄마 인간이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구름아, 너 목 주변이 어떻게 된 거야? 털이 없잖아!”

그날 밤 온 가족이 나를 가운데 놓고 둘러 앉았다.

‘구름이 털 실종 사건’을 주제로 가족 회의를 열었다. 인생은 이렇게 작은 사건을 중심으로 굴러가기도 하는 법이다. 아빠 인간은 내 내 몸 구석 구석을 열어 보기 시작했다.

“목 주변하고 꽁지에 털이 빠지고 피부가 빨갛게 되어 있는데. 흠...”

이제야 모두 심각성을 인지하였나보다.


다음날 아침 엄마 인간은 몇 군데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은 강아지나 고양이만 치료하고, 나 같은 앵무새를 치료하는 곳은 별로 없나보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특수동물에 속한다. 아무 수의사에게 몸을 보여줄 수 없고 특별한 수의사에게만 몸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특수동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에 날개에 힘이 들어갔다.

“거기 특수동물도 진료하시나요?”

“네. 가능합니다. 아이 이름이 뭔가요?”

“네? 제 아이 이름은 왜 물으시지요? 앵무새 진료 받을건데요.”

“아니요, 앵무새 이름이요.”

“아. 구름이요”

“네. 예약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엄마 인간은 동물병원에 전화하는 것이 처음인가보다. 내 이름을 묻는 질문에 왜 그렇게 당황하는지 모르겠다.


엄마 인간은 나를 이동장에 넣어 주었다. 오랜만에 외출이라 마음이 살짝 설레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두근거리는 설렘 속에서 길을 따라 갔다. 그런데 오늘은 차를 타고 간다. 엄마 인간은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가끔 바깥을 구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옆으로 스치는 큰 차들과 지나가는 인간들을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병원에 도착하였다.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한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는데, 저 멀리서 신기한 동물이 다가온다.

회색의 긴 꼬리를 흔들며 우아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사파이어 같은 푸른 눈의 신비한 동물이다. 푸른 눈이 어찌나 영롱한지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그 눈동자 속에서 나는 분명 바다를 보았다. 그런데 갑작스런 천둥 번개로 나의 항해는 막을 내렸다. 그 동물이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갑자기 이동장으로 손을 뻗는다.

“야옹~”

나는 깜짝 놀라 최대한 구석으로 도망쳐 몸을 웅크리고 버텼다.

“야, 저리 가!”

엄마 인간이 손을 휘저어 그 신비한 동물을 쫓아 버렸다. 엄마 인간 덕분에 고양이 환자는 물러갔다. 사파이어 눈을 가진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의 왕족처럼 도도하고 꼿꼿한 모양으로 구석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뒷모습도 어찌나 우아한지.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구름이 들어오실게요!”

여기서는 앵무새도 존대를 해 주니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간호사와 의사가 나의 온몸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샅샅이 훑는 것이 아닌가. 이런 황당한 대접은 처음이다.

‘내 몸에 손 대지 마!’

“꺅! 꺄~~악! 꺅!”

하지만 어떻게 두 인간의 힘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나의 괴성도 먹히지 않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내 몸을 모두 보여주고 말았다.

검사가 끝나고 엄마 인간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슬픈 눈빛으로 엄마 인간을 쳐다보았다. 엄마 인간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꼈을까? 내가 좋아하는 파인애플 젤리를 조금 잘라서 주었다. 하지만 너무 놀라서 식욕이 있을 리가 없다.


잠시 후 의사는 엄마 인간을 불렀다.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는 이랬다.

“구름이, 성질이 대단하네요. 자기 몸을 만지니 아주 사나워져요. 자기 몸을 못 만지게 해요.”

그건 내가 성질이 사나워서가 아니라 당연한 거 아닌가? 검사를 이렇게 저렇게 할 거라고 먼저 설명해 줘야지,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니 그런 거지. 의사는 환자에게 설명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 한마디 설명도 없이 진료는 하니 내가 당황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의사는 자신의 부주의를 나의 성격 탓으로 돌리고 있다.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의사가 말했다.

“다행히 곰팡이균은 아니고 세균성 염증인 것 같습니다.”

의사는 소독약과 피부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나의 일상은 약과 함께 돌아왔다. 삶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위기와 위안을 담고 있다.


이제 나의 일상에 새로운 리츄얼이 생겼다.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씩 피부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는 일이다. 괴롭지만 어쩔 수 없다. 연고를 바르지 않으면 털이 모두 빠지고 민둥이 몸이 될 수도 있으니 참아야 한다. 비가 온 후에 땅이 더 견고해지듯이 피부가 아물고 새로운 털이 나면 더 멋진 구름이가 될 것이다.


가끔 질병이 찾아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질병이 나으면 건강한 삶에 더 감사하며 살게 될 것이다. 같이 사는 인간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고통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 고통은 시간을 따라 새털처럼 가볍게 흩날릴 것이다.

KakaoTalk_20240924_223146941.jpg 삶은 예기치 않은 위기와 위안을 준다. 그로 인해 내 삶은 더 풍요로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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