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병원을 다녀온 지 2주가 지났다. 그러나 내 병은 차도가 없었다.
털을 계속 빠지고 있었고, 오히려 연고 때문인지 깃털은 떡이 져서 움직임마저 둔해졌다.
엄마 인간은 걱정과 연민으로 가득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전화기를 들었다.
“거기 앵무새 카페지요? 저희 집 앵무새가 자꾸 털이 빠지는데, 혹시 카페에서 자주 가시는 동물병원 있나요? 앵무새를 봐주는 동물병원이 많지 않아서요.”
“네, 한 군데 있어요. 원장님이 직접 앵무새를 기르기도 하세요.”
이렇게 해서 엄마는 새로운 병원을 찾아냈다. 원장이 집에서 앵무새를 직접 기른다는 말에 엄마 인간은 크게 안심한 듯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하자, 전에 갔던 병원보다 훨씬 작고 허름한 인상에 실망이 스쳤다. 누구나 고급 병원의 VIP 실에서 나만의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주위를 둘러보니 진료 대기실에 앵무새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약간의 설레임이 느껴졌다. 나와 같은 모란앵무 친구가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짹, 짹, 짹~”
친구는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알을 품지 못한다고 주인이 병원에 데리고 왔단다. 시끄러운 녀석이다. 나를 못 들은 척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시선이 닿는 곳에 코뉴어 한 녀석이 점잔을 빼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콧대가 높다. 우리보다 인간의 말을 조금 더 흉내 낼 줄 안다고 으스대는 꼴이 보기 사납다.
나는 불안했다. 지난번 병원처럼 혼자 진료실로 들어가면 크게 소리 지르고 의사 손가락을 깨물어버리려고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던 참이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에는 엄마 인간과 같이 진료실로 들어갔다. 여차하면 엄마 인간에게로 도망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의사 인간은 내 깃털을 헤집으면 소독약을 뿌렸다. 이리 저리 내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일단 염증이 있으니까 소독약을 드릴게요. 하루에 두 번 뿌려주세요. 그리고 먹는 약도 있어요. 주사기에 넣어서 먹이시면 됩니다. 혹시 곰팡이 감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털을 뽑아서 배양해 볼게요.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거릴 겁니다.”
“전에 갔던 병원에서는 곰팡이균이 없다고 하던데요.”
“곰팡이가 바로 잘 안 보이는 경우도 있어요. 배양 검사을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의사 인간은 내 몸에서 세 개의 털을 뽑았다. 저항해 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 얼마나 노련하게 한 손으로 나를 움켜쥐는지 도저히 옴짝달짝 할 수가 없었다.
“몸에 다모낭 털이 나면 가려워서 부리고 털을 뽑기도 해요. 지금은 털이 없어서 잘 알 수가 없고, 털이 좀 자라난 다음에 다모낭 털이 있는지도 살펴볼게요.”
의사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 당연히 증상의 원인을 한 번에 알 수는 없겠지. 털이 빠지는 증상은 하나이지만, 그 증상의 원인은 수십 가지 일 수 있다. 한때 엄마 인간이 두통이 시달릴 때 신경정신과에 갔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수많은 환자들이 두통이라는 공통된 증상 때문에 찾아 왔지만, 원인은 수백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결국 치료 방법은 가장 의심되는 원인부터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먼저 염증 치료를 시작하였다. 일주일 후에 배양 검사에서 곰팡이균이 발견되면 곰팡이균 제거 작전에 들어간다. 그리고 당분간 털을 뽑지 않도록 한 다음 다모낭증 털이 있는지 검사가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이 아니라면 스트레스를 받아 자해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심리 치료가 들어간다. 마치 컴퓨터 알고리즘처럼 촘촘히 짜여진 치료 계획이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오니 간호사가 말을 걸었다.
“구름이 정말 얌전하네요. 다른 앵무새 같으면 소리 지르고 난리 치는데.”
칭찬인지 모르겠다.
지난번 병원에서는 성질 사나운 놈이라고 하더니, 이번 병원에서는 얌전하고 착한 놈이라고 하다니. 나에 대한 평가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내 성질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었다. 내 성질이 달라진 것은 나를 다루는 인간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를 괴팍하고 강압적으로 다룬다면 나도 힘으로 맞서게 되어 폭력적인 앵무새가 된다. 하지만 나의 아픔을 이해하고 다정하게 다루어준다면 나는 신뢰라는 자석에 이끌려 한없이 온순한 앵무새가 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정체성은 관계의 산물이라는.
엄마 인간은 하루 두 번씩 소독약을 뿌리고, 약을 먹이며 정성껏 간호해주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구름이 곰팡이균 배양 검사 나왔어요. 양성이네요. 다음 주에 구름이 데리고 내원해주세요.”
그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에 또 가야 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