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향해 차가 출발한다. 엄마 인간을 나를 조수석에 태웠다. 하지만 키가 작다보니 바깥 풍경을 볼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것들의 바쁜 움직임과 소음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엄마 인간에게 보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삑, 삑, 삐약”
“응, 구름이가 바깥 세상이 궁금한가보구나. 잠깐 기다려 봐.”
잠시 후 차가 멈추었다. 엄마 인간은 내 케이지를 들어 운전대 위에 올려 주었다.
“자, 구경해 봐. 저기 버스와 트럭이고,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이지?”
“뾱, 뽁”
처음 보는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낯선 곳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삑, 삑, 꽥, 꽥. 어떤 녀석이 소란스럽게 아는 척을 한다. 이놈의 인기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다. 예전에 앵무새 카페에 있었을 때 내 부리와 입 한번 맞추려고 애를 쓰던 녀석들이 생각난다.
자세히 보니 나보다 어린 모란앵무 친구이다. 큰 케이지에 들어가 있지만 그 케이지가 좁아 보일 정도로 이리 저리 부산하게 돌아다닌다.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게, MBTI가 E가 틀림없다. 엄마 인간은 그 녀석에게 관심을 보인다.
“어머, 색깔이 참 특이하네요. 이런 색깔은 보기 힘든데. 이 아이는 왜 여기 와 있는 거에요?”
“아, 이 아이는 제가 기르는 아이에요. 오늘 같이 출근했어요.”
“이름이 뭐예요?”
“마지막에 태어나서 그냥 ‘막내’라고 불러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간호사는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앵무새에 대한 정보를 쉴새 없이 쏟아냈다.
“구름이 들어오세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수다가 잠시 중단되었다.
작은 횃대 위에 올라 앉으니 의사 선생님이 몸무게를 재 주었다.
“48그램이네요. 지난 번보다 조금 살이 올랐어요. 이제 곰팡이 약은 그만 먹어도 되겠어요. 털을 좀 볼게요.”
의사 선생님은 소독약을 몸에다 사정없이 뿌려댔다.
‘아이, 차가워. 깜짝이야. 좀 살살해요.’
“꽥, 꽥, 꽥”
나는 발버둥을 쳤다.
“구름아, 왜 그래. 시원하잖아.”
나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손아귀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발버둥을 칠수록 손아귀의 힘이 점점 세게 나를 누른다. 모든 걸 포기하고 있는 순간, 의사 선생님이 유레카를 외쳤다.
“여기 다모낭증 털이 있네요.”
‘앗, 따가워!’
순간 몸에서 털이 뽑혀 나갔다. 그렇게 몇 개의 털의 뽑혔지만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구름아, 털 뽑으니 시원하지? 다모낭증 털이 있으면 몸이 많이 가려워요. 그래서 자기가 털을 뽑으려고 하다가 그 주변에 있는 다른 털까지 다 뽑아버리기도 하고, 부리로 쪼아서 염증이 나기도 하거든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모낭증은 치료법이 있나요”
“치료법이 없어요. 그냥 유전이에요. 특히 모란앵무에게서 많이 나타나요. 털이 날 때마다 뽑아주는 수밖에 없어요.”
엄마 인간은 다모낭증 털을 휴지에 소중하게 쌌다.
진료실 밖에 나오니, 간호사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총알을 잔뜩 장전하고 교전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적군을 만나 총알을 내뿜는 총구와 같다.
“구름이가 다모낭증 털이 있었네요. 다모낭증 털이 있으면 그 부위가 미친 듯이 가려워요. 정말 새들이 미친 듯이 부리로 긁어 대거든요. 그런데 구름이는 그 정도는 아니네요. 성격이 좋은 아이에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병원을 나올 때 간호사는 뭔가를 만들어서 엄마 인간에게 건네주었다. 둥그렇게 생긴 것만 봐서는 뭐에 쓰는 물건인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바로 그 물건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자 그 신기한 물건에 대해 누나 인간이 물었다.
“엄마, 이게 뭐야?”
“응. 넥카라야. 구름이가 자꾸 똥구 쪽이 가려워서 긁으니까, 목에다 해 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