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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책 먹는 앵무새

by 구름이

하루 종일 먹고 잠을 자다 보니, 어느 순간 나를 둘러싼 세계가 점점 더 무료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 존재가 그저 먹고 자는 데에만 국한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 운명을 강하게 부인하고 싶다. 잠이란, 어둠이 찾아올 때만 필요한 것 아닌가? ‘이렇게 좋은 세상에 태어났는데, 새 다운 취미 생활이 필요하지 않은가?’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이 집의 인간들은 참으로 많은 종이와 책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엄마 인간은 늘 손에 종이를 들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도 책을 손에 쥐고 있는 광경을 볼 때면, 그 호기심을 억누르기 어렵다. 나는 가만히 책 위로 날아 올라,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엄마 인간은 내가 글을 읽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앵무새가 아니다. 나는 글자 속에 숨겨진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이다.

책 위에 앉아 엄마 인간을 쳐다보던 나는, 갑자기 부리가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옳거니!” 생각했다.

책의 종이는 제법 뻣뻣해서, 씹으면 그 식감이 아주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나는 아삭, 아삭, 아사삭~ 책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앞뒤로 몇 번 구멍을 내니, 마치 핑킹 가위로 자른 듯 깔끔하게 종이가 찢어졌다. ‘아,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나?’ 나는 스스로 놀라며 다시 시도해 본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 인간이 “이 자식아, 뭐 하는 거야? 저리 가!”라고 외쳤다. 나는 깜짝 놀라 날개를 퍼덕였다. 엄마 인간의 손이 다가오자, 마치 내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듯한 위협을 느꼈다. 엄마 인간은 내 새로운 취미를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내 안에 깨어난 이 재능을 어떻게 그냥 묻어 둘 수 있단 말인가?


며칠 뒤, 엄마 인간은 책상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다른 종이 뭉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늘의 목표물이 정해졌다.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서 한 입 살짝 맛을 보았다. 그리고 엄마 인간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는 순간,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 순간, 나의 콩알만한 간이 좁쌀만큼 작아졌다. 엄마 인간이 다시 나에게 소리를 지를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번엔 다행히 엄마 인간은 다르게 반응했다. 그녀는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알아챘는지, 특별한 선물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바로 빳빳한 이면지였다.

“자, 맘껏 씹어 드세요.”

엄마 인간의 이 말에 나는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엄마 인간, 최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목표물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는 씹고 또 씹었다.


KakaoTalk_20240822_091403546.jpg "어디 보자, 이 책이 먹을만한가... 먼저 한 입만 살짝 맛을 봐야겠어! "


며칠 후, 나는 누나 인간의 책꽂이에 <책 먹는 여우>라는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제목에 이끌려,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야기는 이러했다.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여우가 있었는데, 그 여우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을 진짜로 먹어치웠다. 한 권, 두 권, 그렇게 책을 먹어 치우다가, 결국에는 먹을 책이 사라지고 말았다.


먹을 책이 없어지자, 여우는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내가 직접 책을 쓰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여우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기 시작했다. 마침내 여우는 자신이 쓴 책을 입에 넣었고, 그 책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책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도 언젠가 내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남의 책도 이렇게 맛있는데, 내 이야기 책은 또 얼마나 맛있을까? 나는 상상 속에서 그 맛을 음미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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