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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바이올린 도전기

by 구름이

음악이란 무엇인가?

그 정체는 무엇이기에 이토록 다양한 소리가 우리 귀를 사로잡는 것일까?


우리의 먼 조상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생존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는데, 이는 은혜로운 날씨와 풍부한 먹이 덕분이었다. 하지만 수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자 한다면, 즉 번식을 위해서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고군분투해야 했다.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우리 새들은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아름다운 목소리와 부드러운 깃털을 가지고 있기에, 이 둘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만 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깃털을 고르고 목소리를 연습하는 것은 필수였다. 특히 목소리가 유난히 고운 수컷은 스스로 작곡한 세레나데를 부르며 암컷을 유혹했다. 어쩌면 인간의 음악도 우리의 세레나데를 본떠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지금 내 집에 머무르고 있는 인간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음악을 즐긴다. 엄마 인간은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성악 등 여러 종류의 음악을 하루 종일 틀어 놓는다. 처음엔 그저 따분하게만 느껴졌지만, 엄마 인간의 어깨에 앉아 이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며 졸음이 오고, 그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다.

아빠 인간은 엄마 인간보다 훨씬 시끄러운 음악을 선호한다. 가끔 민중가요나 혁명가를 틀어 놓고 혼자 감상에 젖어있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누나 인간은 엄마나 아빠 인간보다 훨씬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은 느릿하고 감성적인 노래를, 또 어느 날은 빠르고 요란한 비트의 곡을, 그리고 때론 지나치게 조용해 기운을 빼앗아 가는 노래까지, 그녀의 취향은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언어는 한국어뿐이지만, 누나 인간은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멜로디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방탄소년단에서 시작된 그녀의 취향은 요즘에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이문세의 노래에서부터 해바라기, 신해철과 넥스트, 크라잉 넛까지, 그녀의 취향은 한계를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 무엇이냐고?

엄마 인간이 하루 종일 음악을 틀어 놓으니, 나도 모르게 취향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엄마 인간은 직접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하루에 한 번쯤은 나를 위해 바이올린을 켜주곤 한다. 처음 바이올린을 보았을 때, 나는 그 매력에 단번에 사로잡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만든 악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 인간의 왼쪽 어깨에 앉아 있다가, 슬그머니 바이올린으로 옮겨 타서 부리로 살짝 건드려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이 세상을 떠나버릴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엄마 인간은 몹시 화가 나서 외쳤다.

"야, 이 XX야, 안 돼! 저리 가!"


욕을 들을 만큼 큰 잘못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일단 몸을 피해야 했다. 아빠 인간이 놀라 달려와 소리쳤다.

"구름이 XX가 내 바이올린을 갉아 먹으려고 하잖아!"

아빠 인간이 다가와 나를 구해주었다. 나는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마구 뛰던 심장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의 첫 번째 모험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 날, 엄마 인간은 다시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다. 오늘은 그 나무 몸통에 부리를 대는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이번에는 무엇을 탐험해볼까? 엄마 인간의 오른손에 들린 긴 막대기가 내 시선을 끌었다. 송진이 발라진 그 긴 막대기, 그 정체가 나의 호기심을 사로잡았다. 나의 후각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송진 향이 풍기던 그 순간, 나는 마치 울창한 소나무 숲의 그늘, 약간은 습하고 어둡지만 신비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속에서 이 나무 저 나무를 날아다니며 청솔모와 장난치고 있는 어린 새들이 떠오른다. 나는 어느새 송진이 발린 그 나무 막대기로 돌진해버렸다. 그리고 그 송진 속에 머리를 파묻고 말았다.

"야, 이 XX야, 도대체 뭐 하는 거야? 활 털이 다 빠지잖아!"


엄마 인간은 나를 또 한 번 세차게 몰아냈다. 나는 바이올린과 정말 인연이 없는 걸까?

엄마 인간은 이번엔 정말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며칠 동안이나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마다 문을 닫고 나를 방에 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 인간은 그렇게 모진 마음을 오래 가질 수 없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녀의 장점이자, 때로는 단점이기도 하다.


KakaoTalk_20240722_134851405.jpg 나는 악보를 읽기 전에 털 고르기와 발톱 고르기는 한다. 자, 이제 엄마 인간과 함께 악보를 읽어 볼까?


이틀 후, 엄마 인간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내가 옆에 있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나는 보면대 위에 조용히 앉아 그녀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흠, 예전보다 음정이 조금 나아졌군.'


연습에 지름길은 없다. 꾸준히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엄마 인간은 오직 그 믿음 하나로 10년이 넘도록 바이올린을 연습해왔다고 한다.


한참을 바라보다 보니, 갑자기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것도 아주 효율적인 방식으로. 효율적인 춤이란, 춤을 추는 사람 위에 올라타 그 움직임에 맞춰 함께하는 것이다.


나는 엄마 인간의 오른손 등 위로 살짝 날아올라 앉았다. 엄마 인간은 연습에 몰두하느라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녀의 오른손은 위아래로,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때로는 분절된 동작으로 계속해서 움직였다. 나는 엄마 인간의 손등 위에서 계속 춤을 추었다. 바흐의 선율에 맞춰, 비발디의 곡조에 맞춰 춤을 춘다. 이 세상에 나처럼 고상한 취미를 가진 앵무새는 분명 없을 것이다.

IMG_3326.PNG 엄마 인간이 허락해 준 나의 자리.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에 안성마춤이다. 다만, 올라가다가 갑자기 내려가는 활에 균형을 못 맞추면 허공에 붕 뜰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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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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