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한달살이

by 서산

“일도 하고 여행도 하는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싶어요” 버킷리스트 꼭대기에 있는 제 바람이었습니다. 구름 위에 두둥실 떠다니던 바람은 딸깍거리는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제 눈앞으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목적지는 치앙마이, 출발날짜는 당장 일주일 뒤 목요일이었습니다. 모순되지만 즉흥적이면서 준비된 결정이었습니다. 즉흥적인 이유는 편도 티켓에 숙소는 2박 3일 예약된 에어비엔비 숙소가 전부였기 때문이고, 준비된 이유는 단단히 준비된 마음과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노트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노마드라는 단어는 취업을 준비할 때 처음 들었습니다. 디자인과를 졸업했지만 뜬금없게도 마음속에 품고 있던 코딩 공부를 시작한 것이 취업준비의 시작이었죠. 코딩 공부를 위해 찾아간 서울 한복판에 있던 빌딩의 한 구석에 위치한 작은 공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저 같은 취업준비생부터,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는데 본인의 사업을 준비하는 사업가, 세계를 떠돌다 한국의 매력에 끌려 살고 있는 샛노란 머리를 하고 있는 외국인 개발자, 디자이너 친구들까지. 스스로를 디지털노마드라고 소개했던 그들은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코워킹 스페이스라는 공간으로 묶여 느슨한 유대감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쪽 벽에는 디지털노마드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있었고, 그 아래 책상에는 자아를 표현하라고 소리치고 있는 듯한 다양한 메시지가 담긴 스티커가 놓여있었죠. 그렇게 노트북에 스티커를 붙이며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뜬금없이 전공과 상관없이 시작한 코딩 공부는 개발자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코딩 공부는 오히려 디자이너로써 커리어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IT업계의 디자이너는 코딩 경험이 강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죠. 첫 커리어를 시작한 곳은 스타트업이었는데,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과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제 자리가 있었지만, 회사 내부의 다른 공간, 때로는 외부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는 얘기를 평생 들어왔던 저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도적으로 쓰는 것은 너무나도 환상적인 경험이었죠.


시간과 공간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자연스럽게 회사 밖으로 나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업무공간은 주로 카페였는데, 집 근처 10분 거리에 있는 투썸플레이스로 출근도장을 찍고 하기 싫을 때까지 앉아있었습니다. 1층의 제조공간과 분리되어 있는 2층은 직원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어 좋았습니다. 주황빛의 푹신한 의자와 갈색의 나무 책상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은 덤이었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하기 싫음'이 찾아올 때면 자리를 옮기거나 다른 카페로 이동하곤 했습니다. 자리를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치 풍수지리를 보듯 이 자리를 안 좋다고 생각하고 옮기면 '하기 싫음'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난 어느 날 다른 도시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기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이제는 떠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디지털노마드가 되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죠.


노마드리스트라는 노마드 하기 좋은 도시를 알려주는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물가, 인터넷, 코워킹 스페이스, 후기 등을 모아서 순위를 보여주는데, 치앙마이는 그 사이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한편에 동남아의 인터넷과 일하는 인프라가 얼마나 좋을까라는 편견도 있었지만, 사이트의 꼭대기에 있는 치앙마이는 꽤나 매력적이었습니다. 보통 새로운 도전을 할 때면 본능적으로 안 해야 하는 명분을 찾곤 합니다. 치앙마이는 ‘벌레가 크다’라는 것 말고는 완벽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벌레는 나를 막지 못했고 어느새 내 몸은 치앙마이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습니다.


치앙마이는 실제로 디지털노마드를 위한 도시였습니다. 인터넷은 빠르고 저렴했습니다. 한국돈으로 6천 원이면 한 달 동안 무제한처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고 곳곳에서 wifi도 이용할 수 있었죠. 도시를 걷다 보면 초록 초록한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카페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다양한 카페를 찾아다니며 일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치앙마이의 랜드마크인 마야 쇼핑몰 꼭대기층엔 24시간으로 운영되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었습니다. 창의적인 미팅 공간이라는 컨셉을 갖고 있었는데 뾰족하게 생긴 책상들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듯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먹거리도 다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햇살이 바삭하게 내려오는 야외 카페에 가서 말차 초코 도넛과 우유를 목구멍에 꿀떡 넘기면 ‘행복하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오후엔 주로 야시장에 갔습니다. 야시장에는 저렴한 먹거리가 많았는데, 특히 팟타이와 팟씨유 그리고 얌운센을 자주 먹었습니다. 나중엔 마치 현지인처럼 즉석에서 취향대로 소스를 제조해서 먹곤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점은 숯불에 치킨을 구워서 파는 곳이었는데, 옥수수 쏨땀과 함께 먹으면 황홀함이 느껴졌습니다. 한국이었으면 새벽까지 맥주와 함께하는 곳이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오후 4시면 문을 닫아서 점심때마다 부지런히 가서 먹었습니다.


치앙마이의 다양한 모습 중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사람들의 ‘여유로움’이었습니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택시가 엉켜있었지만 빵빵거리며 성질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물 흘러가듯 여유롭게 흘러 다녔습니다. 음식점에선 부족한 태국어로 주문하면 웃으며 엄지를 올려주고, 단골집에 갈 때면 옆자리에 앉아서 부족한 영어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했습니다. 도시 곳곳에선 요가, 춤, 쿠킹, 드로잉 등 다양한 클래스가 열리곤 했습니다. 같은 도시의 다른 공간에 살던 사람들이 약속된 시간과 공간에 모이고, 저마다 애쓰며 동작을 따라 하며 웃곤 했죠. 파란 하늘을 지붕 삼아 초록한 공원에서 이 풍경을 바라볼 때면 여유로움을 잔뜩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두세 번씩 경험하여 처음이 아닌 것이 많아졌고, 치앙마이에서의 삶은 익숙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지도 앱을 보지 않고도 음식점과 카페를 찾아갈 수 있었고 단골집도 생겨났습니다. 눈에 익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지나가다 인사하는 사람들도 생겼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익숙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문득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작이 즉흥적이었던 만큼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결제하는 것도 즉흥적이었습니다. 다른 여행과 다르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서 만나자고 할 수 있는 친구처럼,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느낀 익숙한 느낌은 해외를 떠돌며 사는 게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동시에 익숙한 친구 같은 도시를 더 많이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도 심어주었죠.


요즘도 "오늘 점심 뭐 먹지?"라는 고민을 할 때면, 오토바이를 타고 바삭한 햇살을 가르며 숯불 치킨과 옥수수 쏨땀을 먹으러 가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워할 수 있고 또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고맙습니다.








keyword
이전 07화왼쪽눈이 안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