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눈이 잘 안 보여요”
고등학교 교실 창가 쪽 뒷자리에 앉아서 수업의 지루함을 견뎌내던 어느 날 왼쪽눈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루함은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게 합니다. 눈을 한쪽씩 번갈아가며 깜빡이며 창 밖을 보는데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엄살이 심한 편이라 불편함을 느끼면 참지 않고 바로 동네 병원에 가곤 합니다. 동네 안과에 가서 증상을 말하니 의사 선생님은 이런저런 검사를 하셨습니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며 의사 선생님의 미간엔 깊은 골짜기가 생기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더 큰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네요”라는 문장이 정적을 깼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일산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동하는 길엔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괜찮아 별일 아닐 거야’라는 생각과 ‘심각한 일이면 어떡하지?’라는 두 생각이 의미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검진을 받고 한, 두 시간쯤 흘렀을까요. 저는 커튼을 치고 그 안에서 고무줄로 된 큰 병원복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안구의 앞쪽은 각막이라 하고 뒤쪽은 망막이라 합니다. 망막은 뒤쪽에 있기 때문에 검사를 위해서는 동공을 확장시키고 빛을 비춰서 살펴봐야 했습니다. 동공을 확장시키는 약은 여러 번에 걸쳐서 넣습니다. 10분 간격으로 3번 정도 넣고 초조한 시간을 버텨야 합니다. 아무 문제없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동공에 빛을 비춰서 망막을 검사하는 것은 꽤나 괴롭습니다. 동공이 확장되면 빛에 굉장히 취약해져서 눈부심이 상상 그 이상이라 빛을 쳐다보는 게 괴로워지기 때문이죠. 그 상황에서 강력한 빛을 눈 바로 앞에서 비춰서 망막을 봅니다.
의사 선생님이 번쩍 하는 번개를 사진으로 찍은 것 같은 사진을 보여줍니다. 망막이 찢어져서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문이 막히고 놀랐는데요, 아마도 부모님은 더 놀라셨을 겁니다. ‘수술하기 싫어요’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을 수 없었습니다. 입원을 하고 이것저것 검사를 한 뒤에 침대에 누워서 수술실로 이동합니다. 발끝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워서 여기저기 이동하는 경험은 썩 즐겁지 않습니다. 전혀 편하지 않고 두려움만 커집니다. 하얀색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펼쳐진 천장만이 반복됩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두려운 마음에 눈을 바쁘게 굴려서 선생님들을 쳐다봅니다.
의사 선생님은 저에게 눈을 맞추고 자 숫자로 다섯까지 세볼게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 둘, 셋, 넷 까지 세고 정신이 들었을 땐 수술이 끝나있었습니다. 전신마취가 풀리는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30시간 정도 깊게 잠들어있는데 누군가 뺨을 때리며 깨우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렇게 수술이 잘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이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망막박리 수술은 더 좋아지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는 수술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이는 것의 소중함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파란 하늘과 구름, 회색빛 아스팔트 도로와 초록색 나뭇잎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 자체로도 아름다움이 있겠지만 내가 볼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기에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꽃은 지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고요.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과정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저는 콘서트에 가거나 여행을 가서 동영상과 사진을 많이 찍지 않습니다. 최대한 눈에 담으려 노력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눈으로 보는 게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싶습니다.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싶고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가서 햇빛이 비추는 아파트 단지의 풍경을 바라봤습니다. 일상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봤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