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룸

by 사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다른 공기가 먼저 얼굴에 부딪혔다. JFK 공항 특유의 세제 냄새. 코끝이 간지러워 한 번 숨을 얕게 들이켰다. 사람들은 줄을 맞춰 걸었고, 누군가의 캐리어 바퀴가 바닥을 긁었다. 입국 심사를 기다리고, 수하물 벨트 앞에서 가방을 기다리는 동안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방금 착륙했어'

'입국심사 기다리는 중'

'짐 찾는 중'

아내에게서 온 답장은 한 줄이었다.


'응. 게이트 앞에 가 있을게'


입국 게이트 앞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껴안고, 어깨를 두드리고, 울기도 웃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내와 둘째 딸을 찾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둘째는 몇 년을 못 본 사이 키도 더 컸고 이젠 제법 숙녀 티가 났다.

아내가 손을 한 번 들었다가 내렸다. 나는 카트 손잡이를 잡고 그쪽으로 갔다.


“오셨어요.”


둘째가 한국말로 말했다. 그 말이 너무 또렷해서, 나는 잠깐 멈췄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의 팔을 한 번 다독이고 카트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손잡이가 금세 차가워져 있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아내는 뉴저지로 가는 도로의 이름을 말했고, 둘째는 학교 얘기를 했다.


“캠퍼스가 넓어.”

“수업이... 어렵고.”

“기숙사가...”


문장 사이사이에 영어가 끼어들었다. 아내가 자연스럽게 받았다. 나는 대화의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길가의 잔디가 지나치게 반듯하게 깎여있었다.


집은 깔끔했다. 현관 바닥이 반짝였고, 신발장은 비어 있는 칸이 하나 있었다. 내 신발이 들어갈 폭만큼.

거실 벽에는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졸업식 가운, 캠퍼스 잔디, 크리스마스트리. 셋이 서 있는 사진. 셋이 앉아 있는 사진. 액자의 금속 프레임은 얇았고 유리는 손자국 하나 없었다. 사진을 보는 각도를 바꾸자 유리 위로 내 얼굴이 잠깐 겹쳤다가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첫째는 늦게 집에 왔다. 문이 열리고, 신발이 벗겨지고, “언니” 소리가 한 번 났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첫째가 웃으며 다가와 내 어깨를 한 번 감쌌다.


“왔네.”


내가 말하자 첫째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행가방 지퍼를 열고 준비해 온 선물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둘째가 포장을 뜯고, 첫째가 “고마워”라고 했다. 아내는 “이런 거까지”라고 말하며 봉투를 정리해 한쪽에 모았다. 나는 테이블 모서리를 손끝으로 밀어 맞췄다.


늦은 저녁을 집에서 먹었다. 음식이 식탁에 이미 올라와 있었다. 접시가 부딪히고, 물이 따라지고, 웃음이 몇 번 섞였다.


"그래서 걔가 그랬지 뭐야. 'No way, you gotta be kidding me!' 하면서."


둘째가 말을 끝내자 첫째가 동시에 웃었다. 아내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받았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물컵을 한 번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첫째가 말을 이어갔다.


"아빠는 휴가라서 좋겠다. 난 다음 달 Midterm 진짜 죽음인데."


숟가락이 국그릇에 한 번 닿았다. 웃음이 끝날 때마다 젓가락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우리 딸들 이제 다 컸네”라는 말을 목까지 올렸다가 삼켰다. 대신 샐러드를 조금 더 덜었다. 포크가 접시 바닥을 긁었다. 금속이 접시 바닥을 긁는 소리가 식탁 위의 웃음소리와 미묘하게 불협화음을 냈다.


식사가 끝나자 딸들은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발소리. 문 닫히는 소리. 위층으로 올라가는 소리. 아내는 설거지를 시작했고, 나는 옆에서 거들었다. 설거지를 마친 컵을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아내가 말없이 컵 하나를 살짝 돌려 모양을 맞춰놓았다. 아주 조금.


수건을 걸고 손을 털던 순간, 아내가 내 쪽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방은... 게스트룸 써요”


나는 자연스럽게 안 쪽을 한 번 흘끗 봤다. 아내가 그 시선을 따라오지 않았다. 싱크대 아래에서 종이타월을 꺼내 조리대 끝에 가지런히 놓고, 물기를 한 번 더 훑었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 피곤할 텐데... 혼자 편하게 쉬는 게 낫지. 시차도 있고.”


설명을 덧칠하는 목소리. 나는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아내는 게스트룸 문을 열어주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잠깐 머뭇거렸다가, 금방 놓였다. 침대 모서리를 한 번 눌러 보이고, 옷걸이 위치를 가리키고, 수건이 든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내일 나 퇴근하고 올 때 사 오던지 하면 되니까.”


물론 당장 필요한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아내는 문고리를 다시 잡았다.


“피곤할 텐데 푹 자요.”


나는 “그래”라고 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았다. 아내는 더 말하지 않고 문을 닫고 나갔다.


정돈된 침대, 얇은 베개, 섬유유연제 냄새. 나는 가방을 침대 옆에 내려놓고 불을 끄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벽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국말과 영어가 섞여서. 잠깐 크게 터졌다가, 다시 낮아졌다.

나는 잠깐 손바닥을 펴 보았다. 손끝이 조금 거칠었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한국은 한낮인 시간이었다. 알람시간을 한 번 더 맞추고 화면을 껐다.


다음 날 아침, 부엌으로 나가 물을 한 잔 마셨다. 냉장고 옆에 달력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의 이름과 시간 약속들, 날짜 옆에 체크 표시. 나는 달력을 한 장 넘겼다가, 다시 원래 달로 돌려놓았다.


아이들이 곧 내려왔다. 둘째는 잠옷 바람, 첫째는 머리를 묶은 채. 둘째가 토스트를 굽고, 첫째가 오렌지 주스를 꺼냈다. 아내가 “아, 그건…” 하다가 멈췄다. 그 사이에 토스터가 ‘팅’ 하고 한 번 튀어 올랐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딸들에게 물었다.


“오늘 뭐 해?”


둘은 동시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과제가 있어서 학교 가야 돼.”

“아르바이트”


나는 “그래”라고만 대답했다.


“그럼 아빠는... 오랜만에 근처 좀 산책해 볼까.”


아내와 아이들이 분주하게 각자의 길을 떠난 후, 나는 특별한 계획 없이 집밖으로 나섰다.

햇빛이 맑았다. 뉴저지는 길이 넓고, 나무 가지가 반듯했다. ‘QuickChek’이라고 쓰여 있는 가게에서 커피를 한 잔 샀다. 종이컵이 손바닥을 덥혔다. 컵을 조금 더 꽉 쥐자 컵이 살짝 찌그러졌다. 커피가 약간 새어 나와 손바닥이 뜨겁게 젖었다. 나는 컵을 반대쪽 손으로 다시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은 비어 있었고, 집은 조용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무로 된 문과 문틀 사이의 마찰음이 정적 속으로 짧게 흩어졌다.


침대에 앉아 여행가방 지퍼를 열었다. 옷 사이에서 얇은 나무 액자가 나왔다. 손바닥에 가볍게 뜨는 무게. 액자 속에는 오래된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한강 둔치. 첫째가 과자봉지를 들고 웃고, 둘째가 내 어깨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사진 속의 나도 웃고 있었다.

나는 액자 모서리를 엄지로 쓸었다. 유리에 손자국이 얇게 남았다. 소매로 한 번 문질렀다.

나는 액자를 다시 옷 사이에 끼웠다. 지퍼를 끝까지 닫고, 가방을 침대 옆 바닥에 내려놓았다. 가방이 게스트룸의 반짝이는 나무 바닥에 닿는 순간 생소한 소리가 났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집 전체가 숨죽인 듯 조용했다. 거실 쪽에서 냉장고 모터 소리가 한 번 돌았다가 멎었다.

나는 아주 작게,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래도... 잘 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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