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아래 서랍은 늘 조금 빡빡했다.
내가 도서관 열람실의 새 근무자가 되던 날, 선배가 말없이 서랍을 밀어 넣는 걸 보았다. 서랍은 처음에는 버티다가, 마지막에 체념하는 소리를 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주인을 잃은 물건들—학생증, 얇은 머플러, 머리핀, 펜, 메모지, 이어폰 한 짝, 손목시계 같은 것들이었다. 대부분은 한동안 그대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주인이 찾아왔거나, 일정 기간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아서 폐기되었거나.
나는 점심시간 근무였다. 열두 시쯤 되면 도서관 열람실에 있던 학생들이 식당으로 몰려갔다. 그 시간이 되면 열람실이 거의 비었다. 빈자리 위로 햇빛이 선처럼 누워 있었다. 그 선은 시곗바늘처럼 조금씩 옮겨갔고, 나는 선의 움직임에 맞추어 서랍들을 한 번씩 열었다 닫았다.
초여름의 어느 날, 분실물로 검은색 접이식 우산이 들어왔다. 아침에 비가 왔다가 오후에 화창하게 갠 날이면 누군가는 꼭 우산을 놓고 갔다. 우산의 회색 손잡이는 작고 둥글었는데, 손잡이 겉면에 흐리게 “M.J.”라고 새겨져 있었다. 펜으로 눌러쓴 자국 같았다.
나는 그걸 서랍 첫 번째 칸에 넣었다. 첫 번째 칸은 높이가 낮아서 작고 가벼운 물건을 넣는 게 좋다. 우산은 사실 작지 않지만, 손잡이가 작아 서랍을 닫을 때 방해되지 않을 거라고 대충 이유를 붙였다.
그날 이후로 우산은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이 오고, 달력이 다음 숫자로 넘어갔다. 나는 점심때마다 서랍 손잡이를 열어 우산 손잡이의 M.J.를 확인했다.
어느 날 늦은 오후, 데스크 앞으로 누군가가 왔다. 회색 후드티에 검은 반바지, 손목에 얇은 밴드를 한 남학생이었다. 그는 말하기 전에 먼저 숨을 내쉬었다.
“혹시… 우산 하나 들어온 거 있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랍을 열었다. 우산 손잡이가 어두운 서랍 속에서 반달처럼 보였다.
“혹시 표시가 있나요?”
“안쪽에… M.J.라고, 볼펜으로 썼던 것 같은데요.”
나는 우산을 빼서 손잡이 안쪽을 돌려 보여주었다. 그는 가까이 얼굴을 가져왔다.
“아, 네. 제 거예요.”
그는 우산을 받아 들고는 손잡이를 한 번 쓸었다. 그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듯하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비가 오는 것 같아서요. 우산을 안 가져왔는데... 지난번에 잃어버리고 간 게 오히려 행운이네요. ”
나는 창밖을 봤다. 밖이 어두워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가 보네요.”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우산을 열어보려다 말고 접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동안, 검은 우산 끝이 보였다 사라졌다.
며칠 후, M.J.가 다시 왔다. 같은 후드티, 같은 밴드, 같은 걸음. 그는 이번엔 데스크 위에 학생증을 내려놓았다.
“노트북 충전기 대여 가능할까요?”
“네, 가능해요.”
나는 대여 장부를 꺼내어 펼쳐놓고, 이미 알고 있을 그에게 학생증을 보증으로 맡아두는 규정을 설명했다.
“이름 확인할게요.”
학생증엔 최민재라는 이름이 적혀있었고, 사진 속 머리카락이 지금보다 약간 길었다.
“반납 시간은 다섯 시 이전이고요.”
“네. 금방 쓸게요.”
나는 서랍 마지막 칸에서 C타입 노트북 충전기 하나를 꺼냈다. 검은 케이블이 고무줄로 단정히 묶여 있었다. 학생증은 우산이 있던 첫 번째 칸에 넣었다. 우산보다는 신분증과 지갑 같은 작고 중요한 것들을 넣기에 딱 적당했다. 그는 데스크 앞에 서서 아크릴 가림판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 번 보고, 내 손이 움직이는 걸 한 번 봤다.
“여긴.. 매일 사람이 바뀌어요?”
“매일은 아니지만 교대를 자주 해요. 근무표대로요.”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오후, 그는 충전기를 반납했다. 케이블은 내가 묶은 모양과 조금 달랐다. 나는 고무줄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그가 묶었던 모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생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내일도 필요하면 미리 예약하셔도 돼요.”
“그럴게요.”
그가 웃으면서 덧붙였다.
“우산 찾아간 날 사실 비 안 왔어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알아요”
장부 모서리를 천천히 문지르던 내 손가락이 멈췄다. 그가 그걸 내려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아주 짧게 끄덕였다.
그가 떠난 뒤 서랍은 갑자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첫 번째 칸이 썰렁해 보이지 않도록, 아래 칸에 있던 펜과 메모지를 첫 번째 칸으로 올려 정리했다.
서랍은 여전히 조금 버티다가, 이번엔 별소리 없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