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두고 온 가방을 가지러 종로에 갔다가
11월의 토요일 길을 나섰다.
날씨가 좋았다. 낮기온이 19도까지 올라가는 날이었고, 심한 일교차로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을 오후였다.
조계사 옆 서울시 유적 우정총국에 볼일이 있었다. 오전에 아들이 들른 곳이다. 한 달에 한번 가는 역사체험의 일환으로, 오늘은 근대사 현장을 둘러본다고 했었다.
월 1회 정도 에너지 넘치는 역사선생님께서 동네 초등 아이들과 지하철에서 만나 데려가주신다. 엄마가 함께 가지 않는 것이 아주 새로웠다. 주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갔고, 가끔 이렇게 서울 근교 유적을 탐방한다.
어쩌다 팀에 끼게 되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제 만 2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 경험이 훗날 한국사 시험 점수를 올려주리라 기대되진 않지만, 세상 경험치를 올려줄 것으로는 기대한다; 아이는 이제 혼자 지하철을 탈 줄 안다. 둘째는 아직 못하고 있다.
또 지하철에 물건을 두고 내리면, 유실물센터에 전화해봐야 한다는 것도 알고,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도 안다. 아이의 가방은 지난 2년간 최소 두 번 유실물센터를 다녀왔다.
오늘은 역사체험 중 아들이 세 번째로 가방을 두고 온 날이다. 이번엔 지하철이 아니라 우정총국 건물에 두고 왔다고 한다. 어효. 누굴 탓하리오. 해외여행 갈 때 여권 두고 공항 가는 어미를 닮은 탓이겠거니 하면서도. 열이 뻗친다. 다른 아이들은 한 번도 안두고 오는데 왜 얘만 이러는가!
마음 같아서는 스스로 찾아오라고 하고 나의 휴일을 즐기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들이 아빠와 시골 증조할머니댁에 가기로 한 날이다.
오후 1시 이후 버스표도 사두어 지체할 시간이 없었건만. 12시 우정총국 점심시간이 겹쳐 문 닫은 시간 동안 지체하면 버스를 놓칠 것이라 일단 버스를 타러 가라고 했다. 나중에 전화연결된 우정총국에선 가방을 일주일씩 보관하기 어렵다했다.
결국 내가 가게 됐다. 나의 시간만큼 다음 주 평일 핸드폰 타임을 빼는 것을, 나는 비용으로 아들에게 요구했다. 아들은 수용했다. 이거 나쁘지 않은데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딸은 동행하지 않고 동네 친구와 놀겠다 했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김연수의 단편을 한 편씩 읽어 총 두 편을 볼 수 있었다. 좀 더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조계사 옆 우정총국을 찾아가다가. 조계사 사천왕상이 아주 세련되게 바뀐 것을 보았다. 입체이면서 평면이고, 부드러우면서 날카롭고, 무채색이면서 다채로웠다. 누가 이렇게 디자인했을까. 사천왕상 주변으로 가득한 노란 국화로부터 언뜻 기대하지 않던 향기가 났다. 마음이 완전히 개었다.
드디어 도착. 조계사 바로 옆에 있어 부속건물인 줄 알았던 것이 우리나라 첫 우체국인 우정총국이다. 수없이 스쳐지나온 길이건만, 처음 들어가 보았다.
이곳이 1884년 갑신정변의 무대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됐다. <해저이만리> 쥘 베른이 노년을 보내던 때. 그러니까 1910년 한일합방과 1912년 타이타닉 침몰 20-30년 전. 넓은 세계를 맛본 개화 세력의 어처구니없는 삼일천하 정변이 갑신정변이다.
그 소동 한가운데 있던 우정총국이 이렇게 잊히지 않고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에, 어쩐지 조금 안심이 되는 마음이 들었다. 꼭 누군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주는 것처럼.
뭐 세상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종각역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아쉬움에 방향을 틀었다. 인근에 햇빛이 들어오고 단풍을 바라볼 수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무엇을 먹을까. 양으로나 가격으로나 가벼운 에스프레소 한 잔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씁쓸하기만 한 것은 감당이 안될 것 같아 크림을 올린 에스프레소 콘파나로 주문했다.
앙증맞고 귀여운 에스프레소 콘파나 한 잔을 앞에 두고 이렇게 끄적이니. 정말 세상 나쁘기만 한 일은 없구나 싶다. 쌉싸름하기만 한 일은 없구나 싶다.
갑신정변도.
가방을 두고 다니는 일도.
토요일 오후에 종로를 방황하게 되는 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