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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의미

<고전이 재밌다> 로빈슨 크루소 4편

by ㅈㅑㅇ


1791년 출간된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에는 실제 모델이 있습니다 : 알렉산더 셀커크.


셀커크는 1704년부터 5년여간 남미 칠레의 한 섬에서 생활하다 1709년 구조된 인물입니다. 스코틀랜드 사람이래요. 그가 살았던 섬은 지금도 로빈슨 크루소 섬으로 불립니다. 본래는 마스아티에라(육지에서 가깝다는 뜻) 섬, 또는 아과스부에나스(좋은 물이라는 뜻) 섬이라고 불린답니다.


4년, 아니 1달 동안 아무도 안 만나고 살 수 있나요?

그는 섬에서 자유를 만끽했을까요?

사회로 돌아간 후 행복했을까요?


경기도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아기를 키우던 때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뭐가 많이 생겼지만) 주변에 걸어갈 수 있는 떡볶이 가게가 없었어요. 보이는 것이라곤 주말 농장과 누군가의 선산, 그리고 교회가 전부인 듯한 동네였어요. 너무나 섬 같은 곳.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면서는 사람들 사는 육지와의 거리가 더 멀어진 듯했었더랬죠. 아기와 나만 섬에 떨어진 듯했습니다. (옹알이 보다) 말 같은 말을 듣고 싶고, (뽀로로 보다)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보고 싶던 때였습니다.




그가 나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정말 듣기 좋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건 내 목소리 말고
25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사람 목소리였다.

p.276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 열린책들




듣기 좋은 사람 목소리. 25년간 혼자 살아온 로빈슨 크루소는 식인 축제의 희생양으로 끌려온 또 다른 원주민 프라이데이를 구출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그는 사람 목소리에 감동받아요. 이후 프라이데이와 생활한 때를 '섬에서 만난 모든 기간 중 가장 즐거웠던 해'라고 회상합니다. 개와 고양이가 처음부터 있었는데도요. 사람, 타인이 주는 만족감은 비교 불가였던거죠.


하긴 '너' 없이 '내'가 있을 수 있나요. 상대가 있어야 내가 존재하죠.


여분의 타인이 꼭 필요합니다.


물론 타인보다 중요한 것이 나 자신. 나와 너는 세계를 이루는 주요 소재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고 돌아봤습니다. 고독을 충분히 느꼈지요. 그랬기에 타인과 마주할, 혹은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몰라요. 마침 그 타인이 자신을 지지하고 열심히 따라주니 얼마나 스스로 만족스러웠을까요?! (타인이 자신을 지지해 줌 <-이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부분이네요.) 고독했지만 결과적으로 외롭지 않았던 그의 섬 생활이 이쯤 되면 조금 부러워집니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8852/episodes/25111972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엄지들의 각양각색 육아 시절 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섬에 홀로 있는 듯해서 우울했던, 또한 섬에 홀로 있어서 자유로왔던,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각자의 그 시절에 대해서. '타인'의 덕목에 대해서. 동물도 타인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나'의 범위와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제 경우엔 갓난아이 키울 땐 옷도 안 사고, 미용실도 안 갔어요. 가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필요성이 떨어지더라고요. 유모차에 아기용품 다 챙겨서 외출하려면 정말 섬에서 항해 준비하는 기분 들잖아요. 산후 우울증의 상당 지분은 동등하게 이야기 나눌 타인의 부재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아기는 타인으로 치지 않아요. 그렇다고 타인이 너무 간섭하면 또 싫어요. 남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아이가 어렸을 때 놀이터도 안 나갔었다는 아지 같은 사람도 있더라고요.


palle-knudsen-hQGdAv1qhf8-unsplash.jpg Unsplash의 Palle Knudsen



오늘 점심시간에 혼자 여유 있게 식사할 수 있다면 타인과의 오후 업무가 좀 더 수월할까요?

저녁 식사시간 전후에 혼자 카페 미타임을 즐긴다면 가족을 대하는 마음이 더 여유로워질까요?


기간한정 무인도 이용권은 좋아 보입니다.





*어쩌다 함께 책 읽는 다섯 명이서 팟캐스트를 합니다.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30~40대들입니다 (2024년 기준). 책 읽고 톡방에서 엄지손가락으로 떠들다 만나게 되어 '엄지 작가'라고 명명했습니다. 물론, 진짜 작가는 아니에요, 아직. 팟캐스트는 곧 유튜브랑 통합한다고 해서 팟빵과 네이버 오디오에 올리고 있어요.

*나리, 쓸, 하니, 아지, 쟝. 이 가운데 쟝의 편집과 글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이번주로 마무리하고 다음주부터 <올랜도>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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