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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Mar 20. 2023

그가 없어져 버려야 한다

<변신> 나와 너의 쓸모



나의 변신을 회상한다.


둘째가 아직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2시간 이상 걸리는 미용실 행차도 버거웠다. 긴 시간 비울 수가 없었다. 당시 내 머리카락은 보통 덥수룩하고 매우 길었다.


어느 날 큰 마음먹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예약해 둔 펌을 했다. 집을 떠난 시간은 대충 2시간. 산뜻하게 머리를 자르고 펌을 한 후 집에 돌아왔다. 달라진 스타일이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가벼워진 머리에 기분이 좋았다.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 반응을 마주치기 전까지는.


달라진 내 머리카락을 본 둘째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엄마가 아니라고. 엄마 돌려달라고. 나는 계속 나인데, 몇 년씩 떠났던 것도 아니고, 단 두 시간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짧아졌을 뿐인데, 엄마가 아니란다. 황당하고 불편했다. 내 얼굴은 벌레씹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가 생각났다. 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다. 다르다. 그의 변신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별로 당황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마치 자기가 원래 어느 정도 벌레였던 것처럼.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을 뿐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누어진 불룩한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덮여 있었다. 다른 부분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서 맥없이 허우적거렸다.
'어찌 된 셈일까?'하고 그는 생각했다.

<변신> 카프카, 민음사, p.13



변신 이야기는 대부분 멋있다. 피그말리온의 석상이 살아있는 사람으로 바뀌고, 보통의 어린 학생이 세일러문으로 바뀌고, 수줍은 과학자가 헐크로 바뀌는 이야기 말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혐오스럽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방도 침대도 가족들도 그대로인데, 내 몸만 바뀌었다. 등에 딱딱한 껍질이 있고 여러 개의 다리가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딱 뒤집힌 바퀴벌레 꼴이다.


그는 옷가게 직원이었다. 직원 중에서도 가게 안에서 손님을 기다리지 않고, 옷감 샘플을 들고 다니며 손님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외판사원이었다. 이를테면 회사의 영업사원. 영업사원의 변신은 썩 멋있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옷은 사회적 갑옷이라더니. 그는 갑옷을 두른 벌레로 변신했다.


나의 변신과 그의 변신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사람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는가 유지하는가.


그는 벌레가 됨으로써 사람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싹둑 자르고 겉모습이 달라져서 왔지만, 엄마로서의 기능은 수행 가능했다. 여전히 밥을 차릴 수 있었고, 아이들을 씻기고 책을 읽어줄 수 있었고, 집 청소도 출근도 가능했다. 그는 불가능했다.


당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그였다. 가족은 엄마, 아빠, 여동생. 아빠의 사업이 잘 안 되었고, 온 가족이 의식주 해결을 위해 그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레고르 잠자는 새벽 일찍 나가서 타지에서 숙식을 해결할 때가 많았으며, 가족과 함께 식사하거나 담소를 나눌 일은 거의 없었다. 출장길을 불평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일에 썩 자부심을 느끼지도 않았던 것 같다. 외판사원을 사람들이 반가워했을까. 대부분의 영업직들이 그렇듯 갈 곳은 많아도 반겨주는 곳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벌레처럼 일했다.



그러다 몸이 안 좋아 출근을 못했더니 가족들은 이제야 그를 걱정했다. 기분이 색달랐다. 열쇠공을 불러서 방문을 열어야 한다고 야단법석 떨 때 그가 벌레 턱으로 자물쇠를 열자 그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듯 뿌듯했다. 그의 근무태만을 지적하러 온 직장상사는 커다란 벌레로 변한 그의 모습에 크게 놀라 뒷걸음질 쳤다. 직장상사로부터 처음 받아본 경이의 눈빛이랄까. 오히려 벌레가 된 직후 사람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극적인 감동은 순간이었다. 궁극적으로 그는 그의 쓸모를 잃었다.



Unsplash - Francisco


벌레로 변신한 모습에 가족들은 스스로 먹고살 길을 힘들게 찾아간다. 아버지는 제복 입는 경비원 일자리를 구했고,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시작했고, 동생도 가게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들의 새로운 기능이 생겼다.


그는 벌레의 모습으로 여러 날을 그들과 함께 보내지만. 가족에게  완전히 짐이 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한 후 숨을 멈춘다.



감동과 사랑으로써 식구들을 회상했다. 그가 없어져 버려야 한다는 데 대한 그의 생각은 누이동생의 그것보다 한결 더 단호한 듯했다. 시계탑의 시계가 새벽 3시를 알릴 때까지 그는 내내 이런 텅 비고 평화로운 숙고의 상태였다. 그는 사위가 밝아지기 시작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고는 그의 머리가 자신도 모르게 아주 힘없이 떨어졌고 그의 콧구멍에서 마지막 숨이 약하게 흘러나왔다.

민음사 p.82



스스로의 쓸모를 던져버리는 변신.


같은 제목의 아주 오래된 고전, 오비디우스의 <변신>에도 비슷한 형태의 존재변환이 나온다.


아폴로의 열렬한 구애를 피해 달아나던 다프네는 아버지 신에게 간절히 빈다. 그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해달라고. 나무로 변하게 해달라고 빌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올리브 나무로 변했다. 아폴로의 열렬한 구애는,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막강한 신이 자신을 강간하려고 쫓아오는 꼴이었다.


아폴로의 손이 막 그녀에게 닿기 직전 그녀는 나무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Ovid writes "She has just ended this prayer when a heaviness pervades her limbs, her tender breast is bound in a thin bark, her hair grows into leaves, her arms into branches; her foot, a moment before so swift, remains fixed by sluggish roots, her face vanishes into a treetop.

Jhumpa Lahiri <In Other Words> 가운데  Ovid <Metamorphoses> 인용부분 발췌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 팔다리에 무게가 느껴지고, 부드러운 가슴은 얇은 나무껍질로 쌓였고,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자라났으며, 두 팔은 나뭇가지들이 되었다. 직전까지 빠르게 움직이던 그녀의 발은, 나무뿌리로 고착됐고, 그녀의 얼굴은 나무꼭대기 속으로 사라졌다.


다프네는 나무로 변신함으로써 여자로서의 쓸모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리고 안심한다.


그레고르 잠자도, 혹시 다프네처럼, 스스로의 쓸모를 던져버리고 기능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나와 너의 쓸모는 존재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것들 중 하나다. 내가 집과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회사에서 맡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반겨줄 수 있을까.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나에게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들이 있다. 내가 내 역할을 하지 않으면, 네가 네 역할을 하지 않으면, 함께 살아가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쓸모는 달리 말하면 노동이다.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한나아렌트가 얘기했다던 인간의 조건에도 노동이 분명히 있다.


다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쓸모의 가치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 걸까.


내가 나의 노동, 쓸모, 기능만으로 설명될 수 없듯이.

너도 너의 노동, 쓸모, 기능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터.


나와 너의 존재 이유가 쓸모에 매몰되면 곤란하다고. 쓸모의 가치가 지나치게 확장되어 존재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가면 괴물을 만든다고. 지금 우리에게 카프카가, 오비디우스가, 옛이야기들이 넌지시 말하는 것 같다.


그럼? 우리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 기능이나 쓸모 외에도 무엇에서 더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


그레고르 잠자의 쓸모 말고, 그가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려본다. 바이올린 연주, 너무 뜸 들이며 구혼했던 어느 모자점의 회계원, 방에 걸어둔 액자 속 사진 - 털 팔토시를 끼우고 팔을 쳐들고 있는 여자, 오래된 서랍장, 직선으로 떨어져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 가족들의 조용한 저녁식사 정경...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그냥저냥 주변에 있을 수 있는 어떤 것들이다. 마음을, 풍경을 말랑말랑하게 해주기도 하고, 선명하게 해주기도 하는. 사소한 것들. 아폴로가 다프네에게 다가갈 때 이런 사소한 것들을 공유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이성의 신이기에 속성상 그러할 수 없었던 걸까.


휴일 아침 7시. 아직 깨어나지 않은 도시의 길을 걸어, 밤새 술 마신 젊은 남녀의 소란스러움을 보며, 이제 막 문을 연 카페에 나와, 이렇게 끄적거릴 수 있는, 사소한 여유가, 오늘 새삼스럽게 좋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고, 실수할지언정 내일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감사하다.


살아있다.



Unsplash - Lucio Pa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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