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유년은 나의 주변에서 폐허가 되었다. 부모님은 어느 정도 당황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누이들은 아주 낯설어졌다. 각성이 나의 익숙한 느낌들과 기쁨들을 일그러뜨리고 퇴색시켰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 세계는 낡은 물건들의 떨이판매처럼 서 있었다.
...
그렇게 어느 가을 나무 주위로 낙엽이 떨어진다.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비, 태양 혹은 서리가 나무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리고 나무 속에서는 생명이 천천히 가장 좁은 곳, 가장 내면으로 되들어간다.
나무가 죽은 것은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p.90 <데미안> 민음사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의 본격 사춘기를 여는 글이다.
두 번째 챕터 ‘예수 옆 매달린 도둑’의 끝부분이다.
싱클레어는 타지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이후 문제아로 생활하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사람의 일생을
계절에 비유하자면
그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한번만 순환되는게 아니라 몇 번 반복된다.
아기로 태어나 (봄)
유아기를 거쳐 (여름)
학교에 가서 인간 사회와 성취를 배운다. (가을)
그리고 첫 겨울에 사춘기를 맞는다.
삶의 시원에 대해 고군분투하며 알아가는 시간.
인생의 첫 겨울은 참 혹독하다.
지나면 괜찮다.
지구는 공전을 계속한다.
어느 정도 질서를 내면화하고 각자의 비밀을 안은 채 다시 20대의 봄으로 계절은 이어진다.
20대에 부모를 벗어나 여름과 가을을 누리고, 누군가는 결혼 출산 후 환골탈태의 겨울을 또 지낸다. 그 겨울엔 눈이 참 많이 내렸을 것이다. 생활과 외출은 불편하지만,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래. 어떤 사람에게는 시간이 다르게 흐를 수 있다.
저 흐름은 내 시간이다.
지금 나는
또 한번의 여름을 맞고 있는 듯 하다.
아이는 점점 스스로 할 수 있는게 많아지고 있고,
내 품을 떠나 살 자기 세계의 재료를
탐색하는 중이다.
아마 언젠가의 겨울에는
아이들이 사춘기에 진입하고,
내 부모가 많이 약해지지 않을까.
그 겨울이 오기 전
가을에 뭔가 추수할 것이 많고
마음 곳간이 풍성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