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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Mar 01. 2023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하는데

<프랑켄슈타인> 크리에이터의 자세


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우연들도 사람의 감정만큼 변덕스럽지는 않다. 나는 생명 없는 육신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열망으로 거의 2년 가까운 세월을 온전히 바쳤다. 이 목적을 위해 휴식도 건강도 다 포기했다.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열정으로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하지만 다 끝나고 난 지금, 아름다웠던 꿈은 사라지고 숨 막히는 공포와 혐오만이 내 심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내가 창조해 낸 존재의 면면을 차마 견디지 못하고 실험실에서 뛰쳐나와 오랫동안 침실을 서성였지만, 도저히 마음을 진정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p.72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문학동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물체가 눈을 뜬 순간, 도망갔다.


그 무책임함이 어이없고 화나면서도

나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내가 만든 무언가의 면면이

끔찍했던 적 있으니까.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줬다가

후회되던 순간이 떠올랐고.

내가 그린 그림을

학교 동아리 전시회에 꺼내놓았을 때

그저 쥐구멍으로 숨고 싶던 그때도 생각났다.


톡방에 긴 글 쓰고 전송했다가

삭제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술에 취해 쏟아낸 취중과담도

화난 지인 마음에 붙은 불을 끄겠다고

소화기를 들고 갔던 우스꽝스러운 행동도

주워 담고 싶다.


유흥가 길목 아침에

군데군데 눈에 띄는 간밤 부침개의 흔적.

그 원작자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도

내가 한 일을 없던 것으로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예술가들은 어떨까.


영화, 그림, 음악, 시 등의 창작물이

항상 원작자에게 만족스럽진 않을 것이다.


어떤 창작물은

꼭 살아있는 것 같다.

거기에서 영혼 같은 게 나와서

내 마음에 들어올 때도 있으니까.

그 창작물을 피조물 creature라고 불러본다.



11월의 어느 음울한 날,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이 깨어나자 화들짝 놀라 도망가고 있다. 1831년본 삽화.




창조자와 피조물.

크리에이터와 크리처.

유튜브크리에이터와 그 동영상.


유튜브 Youtube.

그래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유부트 동영상은

요즘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새로운 생물종 같다.


개체수는 이미 인간을 앞질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존 환경으로 전자기기와 데이터가 필요하다.

네트워크 어딘가에 저장공간만 있다면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하다.

스스로 이동이 어렵고,

그래서 사람과

공생 또는 기생관계에 있다.


이들 가운데 예술작품을 감별해내기는 어렵지만, 인간 군집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개체는 많다. 주식입문, 부동산 경매, 자동차 엔진오일 갈기, 김치 담그기, 반려동물의 일상, 외국어 배우기 등 정말 소재도 다양하다. 그러니까 공생에 가까울 것도 같다.


번식은 공유나 촬영을 통해 이뤄진다.

박테리아 수준의 증식이지만

분명히 생명체와 닮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창조자다.

동영상으로 피조물을 만드는 '부모'이다.


요즘 아이들이 장래희망으로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꼽는 현상은


어쩌면 인간에서 진화한 새로운 종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영상을 증식시키는 구독자들도

새로운 형태의 '소극적 부모'가 될 수 있겠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마더 가이아.






창조자들에게

이 책 <프랑켄슈타인>은

일종의 '부모' 지침서로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책 속 피조물이 감명받은 <실낙원>에도

유의미한 구절이 있다.


크리처를 이해하고,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세를 되새기는데

도움이 될만한 인용문을 아래에 덧붙인다.

문학동네 <프랑켄슈타인>번역본과

V-Club에서 제공받은 <Frankenstein>과 <Paradise Lost>원문을 인용했다.




기억하라. 내가 당신의 피조물이란 사실을.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타락한 천사가 되어 잘못도 없이 기쁨을 박탈당하고 당신에게서 쫓겨났다. 어디에서나 축복을 볼 수 있건만, 오로지 나만 돌이킬 수 없이 소외되었다. p.132

I AM THY CREATURE ;
I OUGHT TO BE THY ADAM;
BUT I AM RATHER THE FALLEN ANGEL,
WHOM THOU DRIVEST FROM JOY FOR NO MISDEED.
EVERYWHERE I SEE BLISS,
FROM WHICH I ALONE AM IRREVOCABLY EXCLUDED.

<FANKENSTEIN>



DID I REQUEST THEE, MAKER,
FROM MY CLAY TO MOULD ME MAN?
DID I SOLICIT THEE
FROM DARKNESS TO PROMOTE ME?

<PARADISE LOST>



전능한 신이 피조물들과 싸우는 장면은 가능한 모든 경이와 외경심을 일깨우는 힘이 있었다. p.173



당신의 작품인 내 육신을 파괴하더라도, 그걸 살인이라 부르지 않겠지. p.194




프랑켄슈타인의 출간당시 원제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이다.



새로운 문물을

인간들에게 전해주고

정작 본인은 제우스로부터

형벌을 받는 그 프로메테우스.


언젠가 인간영웅 헤라클레스가 구해주기 전까지 끊임없이 간을 쪼아대는 독수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그 프로메테우스 말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창조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터넷 어느 구석에

이렇게 끄적이는 내게도 유의미하다.


이 한 꼭지의 끄적거림은


흘러갈 나의 말일까,  

치워야할 배설물일까,

책임져야할 피조물일까.




<Frankenstein> 초안 "It was on a dreary night of November that I beheld my man completed..." 18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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