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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Aug 02. 2023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책을 읽을 때의 일이다.
아이가 와서 물었다. 위대한 개츠비? 재미있어?
내가 답했다. 응 재미있지. 근데 좀 쓸쓸해.
아이가 되물었다. 그래? 그럼 왜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야? 쓸쓸한 개츠비여야지.

 
개츠비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비참하다. 개츠비의 파티에 주말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었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누구도 오지 않았다. 조문객이라곤 신문을 통해 소식을 알게 된 개츠비의 친아빠, 이야기의 서술자이자 개츠비 옆집 사는 닉, 언젠가의 파티 손님이었던 이름 모를 올빼미 안경남 뿐이었다. 별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진 않다. 씁쓸한 마무리인데. 개츠비는 뭐가 그렇게 위대한 걸까.
 
위대하다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도량이나 능력, 업적 따위가 뛰어나고 훌륭하다'라고 풀이된다. 보통 사람들을 넘어서는 그의 능력이나 업적.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5년작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에서 보이는 개츠비의 뛰어난 도량이나 능력, 업적을 굳이 찾아봤다.  
 
 
첫 번째 이유. 그는 실행력 훌륭한 자수성가형 부자였다.
 
개츠비는 미국 중서부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주어진 상황을 벗어나 데이지로 대표되는 상류층에 편입하고자 갈망했고, 부단히도 노력했으며, 실제로 부자가 되었다. 신흥부자들의 성지인 에스트 에그에 대저택을 구매하고 성대한 파티를 연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작가가 처음 책의 제목으로 <웨스트 에그의 트리말키오>를 점지했다고 한다. 트리말키오는 <사카라티>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어느 성공신화를 쓴 노예의 이름이다. 그는 노예신분에서 해방되고 금전적으로도 크게 성공한다.
 
마지막 챕터에서 공개되는 그의 시간표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10대로 추정되는 그 시기 개츠비는 아침 6시에 일어나 8시 반에서 오후 4시 반까지 일했다. 부모와 같이 살 때니까 아마도 농장일인 것 같다. 새벽에는 아령 운동과 전기학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구기 운동과 웅변연습, 발명 공부를 한다고 되어있다. 샤워를 이틀에 한 번은 꼭 하고, 저축과 비평지 읽기를 꾸준히 한다고 그는 계획표에 적었다. 매주 5달러의 저축은 힘들었는지 줄을 그어 3달러로 정정되어 있었다.

물론. 계획표가 전부 지켜졌을 것 같진 않다. 그게 계획의 생리니까. 그래도. 그의 이러한 모습은 아버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례식에 온 아버지는 아들이 계속 살았으면 아주 훌륭한 인물이 되었을 거라고 닉에게 강조했다. 아버지가 흔히 가질 수 있는 아들에 대한 환상이겠지만. 나의 가능성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삶의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요즘 같았으면 개츠비는 SNS에서 이미 실행력 '쩌는' '핵인싸'가 되어있을 법하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가 자기 계발서적을 꾸준히 읽고, 계획표를 하나하나 실행하는 모습이 업로드 되었겠지. 뉴욕 인근에 대저택을 구매하고 화려한 파티를 열 때쯤엔 '좋아요' 3만 개쯤 받았을지도 모른다. 데이지와 헤어질 당시 옷이 군복 밖에 없던 사실은 업로드 못했겠지만, 훗날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어 성공신화를 풍부하게 하는 사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다만 그의 성공이 전적으로 성실함과 실행력 덕이라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실행력 훌륭하고 부지런하겠지만, 공통적으로 운도 좋다. 개츠비도 운이 좋았다.


미네소타 인근 슈페리어 호에서 억만장자 댄 코디를 만났고, 마침 술을 안 마시면서 함께 배를 탈 수 있는 비서가 필요했다. 전쟁 후 어쩔 수 없이 옥스퍼드에 몇 달 다닌 것도, 그 간판 덕에 뉴욕에서 사업수완이 좋은 유대인 마이어 울프심과 손을 잡게 된 것도 그의 운이다. 술 판매를 금지하는 금주령이 시행된 때에 마침 약국사업을 한 것 역시 운. 미국 경제 대부흥기인 1920년대에 책이 발표되었고, 이후 1929년 경제대공황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세상은 생각보다 운빨이다.


그러나 우리는 운이 좋은 사람에 대해 위대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허.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가 좀 부족한 것 같다.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두 번째 이유. 좌절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희망을 감지하는 특출 난 능력이 있었다. 경제적 여건이 확연하게 차이나는 데이지와 헤어졌을 때,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나 데이지를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5년간 그는 절치부심하면서 스스로의 경제적 지위를 키워갔다. 가끔 편법도 마다했다. 찾았다, 보통 사람들을 뛰어넘는 개츠비의 능력. 포기하지 않는 일편단심, 그리고 희망으로 끊임없이 충전되는 목표.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미명하에 흔히 미화되곤 하는 진부한 감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it was an extraordinary gift for hope, a romantic readiness),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p.13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문학동네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을 사랑한 적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의 딸을 봤을 때조차 그 본 것이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종종 그의 마음에 데이지가 그 정도가 아니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만의 여신일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도 놓치지 않았으며, 프로그램상 버그나 오류로 취급하여 정정했다. 그의 경로는 매번 데이지로 세팅되었다.
 
데이지가 그의 차를 운전하면서 사망 뺑소니 사고를 냈을 때에도, 그는 데이지가 톰에게 모욕을 당할까 걱정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데이지는 톰에게 의존한다. 이후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개츠비는 데이지의 창가를 지켰다. 다음날 집에서 그는 그녀의 전화를 기다렸다. 아마 죽어가는 순간에도 기다렸을 것이다.


이쯤 되면 개츠비의 희망을 감지하는 특출 난 능력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보통의 경우 헤어진 연인에게 이렇게까지 몰입하지 않는다. 그래선 안된다. 적어도 그녀의 아이를 만났을 때나, 톰을 사랑했다고 말했을 때나, 뺑소니를 친 날 밤 톰과 싸우지 않았고 개츠비를 전혀 찾지 않았을 때에는 희망을 포기했어야 한다. 그의 끈질기고 대책 없는 일편단심을 위대함이라고 보는 것은, 스토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 같다. 위험하다. 두 번째 이유도 재고해 봐야겠다.
 
 
세 번째 이유. 그는 신의 아들이었다.
 
9개 챕터로 구성된 책 중 6 챕터에 실린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완전히 수긍했다. 개츠비는 위대하다고.


새로운 출발을 갈망한 그는 자신에 대한 신화를 스스로 써 나갔다. 그만의 이데아, 이상, 플라토닉 컨셉에 충실했다. 그는 마음속에서 부모를 진짜 부모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물려받은 이름 James Gatz 제임스 개츠를 버렸다. 그리고 댄 코디와 말을 틀 때부터 Jay Gatsby 제이 개츠비란 이름, 스스로 창조한 이름을 썼다.

 

롱아일랜드 웨스트 에그의 제이 개츠비는 그의 이상화된 자기 형상화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이런 말에 과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말 그대로 그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따라서 그는 '아버지의 사업- 거창하면서도 대중적이고도 또한 그럴싸해 보이는 아름다움에 봉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에 종사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열일곱 살짜리 소년이 만들어낼 법한 제이 개츠비란 인물을 창조했고, 끝까지 그 이미지에 충실했다. p.122

The truth was that Jay Gatsby of West Egg, Long Island, sprang from his Platonic conception of himself. He was a son of God- a phrase which, if it means anything, means just that- and he must be about His Father's business, the service of a vast, vulgar, and meretricious beauty. So he invented just the sort of Jay Gatsby that a seventeen-year-old boy would like to invent, and to this conception he was faithful to the end.

p.98 <The Great Gatsby> F.Scott Fitzgerald, Scribner

 

먼 옛날 인간 예수가 그렇게 보였던 것처럼, 개츠비에게는 허황된 그 만의 이상향이 있었다.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욕할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이상향은 돈을 쌓은 신전에 데이지가 입성하면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 예수와의 차이라면 그의 이상은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그에게 동조자가 셋만 있었다면 데이지교 창시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살인자라거나, 캐나다로부터 파이프를 통해 술을 들여온다는 등 허황된 소문을 퍼뜨리더라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남들의 왈가왈부는 그저 진짜 동굴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 그림자만 보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이상향이 너무나 확고했고, 그는 끝까지 그 컨셉에 충실했다. 데이지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그 무엇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개츠비와 데이지가 루이빌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은 거의 신앙고백, 사도신경 기도문 수준으로 묘사됐다.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심장은 더욱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는 이 여자에게 키스하고 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의 비전들이 곧 사라질 그녀의 호흡에 영원히 결부되고, 그의 마음은 이제 신의 마음처럼 다시는 유희와 장난의 세계에 머물 수 없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별에 부딪히는 소리굽쇠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렸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가닿자 그녀는 그를 향하여 꽃처럼 피어났고, 상상의 육화가 완성되었다. (, and the incarnation was completed)

 
 
그러나 역시 의심은 남는다.
 
찝찝하다. 특정인에 대한 사랑이란 감정을 이렇게 이상으로 삼아도 되는 것인가. 종교화해도 되는 것인가. 아무리 요정의 날개 위에도 바위처럼 단단한 현실이 세워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하면 곤란할 것 같다. 글쎄. 개츠비가 내 옆에 실재하는 인물이라면 거리를 두고 싶을 것 같다. 아무리 공짜로 주변인들에게 술과 음식과 음악을 베풀어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는 확실하지가 않다.
 
한 때 'Son of God' 신의 아들로 묘사됐던 개츠비. 장례식에서 올빼미 안경 쓴 남자에게 한 마디 듣는다. 'Son of a bitch'.
 
 
혹시 피츠제럴드는 비꼬고 있던 건가.
 
책의 말미에 닉이 개츠비를 향해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을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라고 말했다. 그때 울컥했다. 닉에게 심히 공감했고 개츠비가 불쌍했다. 그런데 책을 읽은 후 한 달이 넘어서 차분히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를 따져보니 좀 다른 생각이 든다.
 
개츠비를 사랑하던 데이지는 원조 부자 톰에게 돌아갔고, 톰은 데이지가 실수로 죽인 그 여자가 자신의 정부였음을 감췄고, 죽은 정부의 남편에게 그 자동차가 개츠비 것이며 개츠비의 집이 어디인지를 알려줬다. 그러고도 그들은 자신의 손실에만 슬퍼하고, 개츠비의 죽음을 모른 척 한 채, 슬그머니 자신의 인생을 산다. '그 빌어먹을 인간들'이 너무 오만하고 부주의하고 가증스러워서 상대적으로 개츠비가 빛나 보인다.
 
닉이 말하던 '촌스런 결벽증'이 내게 유입되었던 걸까. 이 책은 역시 씁쓸하다.
 

Unsplash - Jack Cohen


 
추신.
개츠비는 확실히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상류층으로 인정받았다 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늘 그가 사악한 수단으로 돈을 벌었을 것이라 여겼고, 그의 파티에서 먹고 마시면서도 안 좋은 소문을 냈다. 대대로 부자인 톰은 개츠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톰이 어느 정도로 부자인가 하면, 데이지에게 요즘 화폐가치로 100억 가까이하는 목걸이를 선물할 정도다. 톰 눈에 개츠비는 "반지를 선물하려면 어디선가 훔쳐와야 하는 놈"이었다. 이 말이 내게는 '돈을 벌어야 하는 놈'으로 들렸다. 돈을 번다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 어딘가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합법적으로 가져오는 것이니까. 톰의 그 말은 내게 참 뼈 아팠다. 톰의 친구들도 개츠비의 파티에 우연히 들러 마실 것을 얻긴 해도, 자기네 파티에 오라고 말은 하면서도, 결코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상류층의 언어는 완전히 달랐다. 개츠비는 부자만 되었다. 트리말키오처럼.

이 책은 역시 씁쓸하다.


 

Unsplash -  Girl with red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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