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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Sep 23. 2023

현재의 꽃만 장미처럼 활짝 피었다

<멋진 신세계> 유토피아의 무게




이야기는 스마트폰에서 시작된다.


이 글을 시작하기까지 참 많은 스크롤을 내리며 뜸을 들였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이메일, 연락도 하지 않는 이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옛날엔 소모적인 멍 때림을 TV로 했다. 그래서 '바보상자'라 했는데, 지금은 이 모든 것을 '똑똑한 전화기'로 하고 있다. 만화책부터 TV, 농담까지 전부 스마트폰을 통해 하고 있으니, 스마트폰이 가히 혁명적이긴 하다.


멍 때림 자체가 문제 될 리 없다. 그 시간으로 소진된 에너지가 충전되고, 그걸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줄 행동을 한다면야 거칠 것이 무엇 이리. 그저 할 일이 있는데도 자꾸 멍 때리며 행동하고 생각할 시간을 뭉개는 게 문제다. 내 할 일은 다른 사람들과 연계되고, 연계된 사람이 적을수록 그 영향은 직접적이다. 내가 스마트폰 붙잡고 음식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 식사가 부실해지고. 영업직이 회사 제품을 팔지 않으면, 제조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불편해진다.


글을 쓰는 것은 조금 결이 다르다. 이것을 미루면 내가 제일 좌불안석이다. 이렇게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소멸하기 싫어서 뭐라도 꺼내 끄적이고 싶은 마음. 하루하루 먹고 일하고 가족을 돌보며 사는 것 외에 무언가 다른 일을 이루고 싶은 마음. 그걸로 끄적이는 것인데. 스마트폰에 어른거리는 다른 이들의 강렬하고 감각적인 삶이 내 내면을 자꾸 별 볼 일 없게 만든다. 거기 볼게 뭐 있어. 여기 봐. 하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은 후였다.



마침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직후라서였는지. 이 책과 나의 합이 그러한 것인지. 이렇게나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웠던 책도 없다. 아니, 이 책 왜 이렇게 힘들지?! 밀려든 생각들 가운데 씨앗을 골라 나무로 키우고 가지치기하는 것이 매우 괴로웠다. 책 속 야만인 존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정화하고자 했던 괴로움이 연상됐다. 개요가 잡히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 끄적이다가 또 스마트폰으로 손이 갔다. 업무 중에도 마찬가지. 일을 하는 사이사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전화기를 확인하고 있더라.


내가 스마트폰으로 짬짬이 도피하듯.

멋진 신세계 그들은 소마로 도망간다.



소마는 일종의 마비시키는 약. 국가가 무제한 보급해 준다. 방금 멋진 신세계 속 한 남자가 원치 않는 지역으로의 전출, 유배나 다름없는 전출 소식을 듣고 소마를 4알 삼켰다. 이곳에선 감당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이렇게 대처한다. 그리고 잊는다.


"과거가 어떻든 앞으로가 어떻든지 간에 이것저것 따져봤자 골치만 아파져요." 그녀가 말했다. "소마 1그램이면 그런 걱정은 다 없어진다니까요."
결국 그녀는 소마를 네 알이나 삼키도록 그를 설득했다. 5분 후에 근심의 나무에서는 원인의 뿌리와 결과의 열매들이 사라졌고, 현재의 꽃만이 장미처럼 활짝 피었다.

p. 171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소담


The flower of the present rosily blossomed.

p.90 <Brave New World> Aldus Huxely, Vintage



올더스 헉슬리가 그리는 신세계는 활짝 핀 장미처럼 매력적이다.


일단, 가족과 부대낄 일이 없고, 책임질 생명도 없다. 명절 차례와 전 부치기는 당연히 없겠지. 엄마도, 늙음도, 질병도, 두려움도, 사색도 없고, 그래서 이야기도 종교도 철학도 없다. 오로지 몸뚱이의 감각만이 남아, 그것을 최대한 충족시키는 삶을 산다. 와우 화끈하다. 과학의 도움으로 30대의 젊음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죽음에 이른다. 죽음은 그냥 일련의 이벤트 중 하나일 뿐, 심각할 것 없다. 그런 쿨한 생활은 스마트폰 SNS 속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만, 혹은 관념으로만 가능한 줄 알았다. 아참, 이것도 상상의 이야기였지. 개인의 감각과 행복이 너무나 소중한 세상이라, 헷갈렸다. 이 시대의 신념은 나의 행복 아니던가.


둘째,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점은 내게 최고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어떤 일을 할까, 이 직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자아성찰하며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 그것은 정해져 있다, 다정한 운명처럼. 사람들은 유리병에서 수정되어 부화습성본부에서 태어나는데, 태아 때부터 추후 배정받을 직업과 계급에 따라 세심한 습성훈련을 받는다. 낮은 계급에는 알코올이 주입되어 지능을 낮게 조정한다거나. 용광로에서 일할 이들에게는 더운 환경에서 산소를 더 공급해 줘, 열기에 편안함을 느끼도록 태어난다. 비슷한 사람끼리 안정적으로 모여 산다. 낮은 계급은 수십 명씩 쌍둥이다. 내가 알파로 태어나든, 감마로 태어나든 그곳에선 안분지족 하며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쇼킹했던 점, 그곳에서는 원하는 사람과는 누구든 사귈 수 있다. 아니 사귀어야 한다. 사귄다는 것이 곧 잠자리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좀 꺼려지긴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번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개념도 내가 받은 교육과 주변 문화의 소산일 터. 지구의 자전속도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듯, 그곳에서 태아 때부터 교육받는다면 거리낄 게 없겠지. 만나면 바로 잔다. 허 참. 한 사람하고만 자지 않고 골고루 해야 한다.


이 곳에선 그러니까. 태아 때부터 모든 것이 설계된 유리병 안에 유리된 채, 고민 없이, 감각과 젊음을 즐긴다. 고백하건대 51%쯤 유토피아라고 느꼈다. 2023년에 만나는 1932년의 디스토피아는 치명적이게 좋다.


자유롭고 가볍다.


아무것도 책임지거나 견뎌야 할 것이 없다. 근심 걱정 할 것이 없다. 천국은 그런 곳 아니었나? O brave new world!


"너희들 가운데 혹시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에 한 번이라도 봉착했던 사람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너희들 가운데 혹시 욕망을 의식하고 시달리면서 그것이 충족될 때까지 오랜 기간을 견디며 억지로 살아야 했던 사람은 없었나?"
"글쎄요..." 한 소년이 말문을 열고는 머뭇거렸다.
"어서 얘기해 봐." 부화본부 국장이 말했다. "포드 님께서 기다리게 하지 말고."
"저는 언젠가 어느 소녀가 저를 원할 때까지 거의 4주일을 기다려야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강렬한 감정을 느꼈나?"
"끔찍했어요!"
"끔찍했다는 것, 바로 그거야." 통제관이 말했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근시안적이었는가 하면, 처음 개혁자들이 대두하여 그런 끔찍한 감정들로부터 해방을 시켜주겠노라고 나섰을 때,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어."

p.89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소담


야만인 존은 달랐다.


그는 소마를 거부했고, 멋진 신세계를 가치 없는 곳으로 결론지었다.


태생부터 달랐다. 그는 문명 세계와 격리된 야만 세계에서 태어났다. 다른 사람들처럼 인공수정 되어 인공혈액이 담긴 유리병에서 자라나지도 않았다. 엄마가 있었고, 비참함을 알았고, 아름다움을 갈망했고, 이야기에 심취하며, 신을 궁금해했다. 보통의 우리들이다. 책의 전반부가 그 신세계의 정밀함과 쾌적함, 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반부는 그가 신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빚어지는 해프닝이 중심이다.


거기 한 여자가 있었다. 레니나. 그녀는, 진부한 설정이지만, 매우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그녀를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단히 탄력적'이라고 말했다. 레니나에게 반한 남자들은 많았다. 그녀와 자는 것은 너무 쉽다. 만나서 합의 하에 지퍼를 내리기만 하면 된다. 복잡하게 살필 것 없이 아이처럼 요구하면 된다.


존을 야만인 구역에서 데리고 나온 남자, 버나드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행동한다. 그도 레니나를 원하는 많은 이들 가운데 하나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하듯 레니나와 바로 침대로 가기보다 대화를 나누며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랐다.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욕망이었다. 버나드는 사람들이 레니나를 고깃덩이처럼 취급하고 그녀 조차도 스스로를 고깃덩이로 여긴다는 점에 화가 났다. 소마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고 사회질서를 무시하고 자신의 특권을 거부하는 것은 또 두려웠다. 그래서 항상 짜증이 치밀거나 우울한 상태였다.


존은 레니나와 대등해지기 위해 성인이 되어야 했다. 그는 그가 태어났던 인디언 사회의 성인식처럼, 아름다운 레니나를 위해 가치 있는 무언가를 내어주고 싶었다. 신세계에선 그게 불가능했다. 슬픔과 고통의 눈물을 치우기 위해 기쁨의 눈물까지 말려버린 곳이었다. 가치도, 눈물도, 소중하고 친밀한 관계도 걸리적거려서 치워버린 마당에, 무엇을 내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시도들은 답답하고 우스꽝스럽다. 레니나와의 관계는 그들 사이의 화학적 끌림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잘 되지 않고 답답한 채로 남는다.


존에게 이곳은 천사 레니나가 존재하는 지옥이었다.


그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무가치에 오염된 스스로를 정화해야 했다. 통제관에게 불행할 권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문명 사회를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 값진 것이 없는 곳'이라 지칭한다.


"당신에게 절실한 것은 모처럼 한 번씩이나마 흘리는 눈물입니다." 야만인이 말을 이었다. "이곳에는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 값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p.361


가치는 희소성에 비례한다.


경제의 기본 명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치는 그것을 얻기 위해 겪는 고통과 불행에도 비례하는 것일까. 내가 지금 겪는 괴로움이 가치를 만드는 재료가 될까. 고통과 불행의 무게가 곧 가치라면, 어둡고 무거운 디스토피아는 가치 있는 곳인가. 디스토피아는 무거운 곳일까 가벼운 곳일까. 유토피아는 가치 있는 곳일까, 없는 곳일까.


가치의 무게는 중력으로 가늠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 인력으로 측정된다.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의 겹이 무게를 이룬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유물 같은 보물도 좋지만, 하지만, 관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가벼움도 소중하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하나의 문에 연결된 양쪽 공간 같다. 여기가 저기고, 저기가 여기다.


이렇게나 뻔한 이야기라니. 이것도 저것도 중요하다, 둘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단 이야기에 다다르러 책 얘기를 이리 길게 늘어놓았나. 참 쓸모없다. 소모적이다. 그렇다. 난 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마무리 중이다. 가벼운 노트북으로 썼고, 날렵한 인터넷으로 업로드한다. 2023년 9월 23일 오늘 날씨는 장미처럼 활짝 피었다.



Unsplash - Tim 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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