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가을이 아쉽다

세 친구와 가평에서 하룻밤

by 옥곡재

학연도 지연도 전혀 없는 60대 남자 셋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일 년에 두세 번 나들이한다. 셋의 인연을 이야기하자면 45년 전 과거로 돌아가야 하니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나들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11월 어느 주말 우린 가평으로 달렸다. 가을이 겨울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또 그렇게 무심히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산으로 달려갔다.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고, 계곡이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 친절하고 맘씨가 넉넉한 주인아주머니가 좋아 가끔씩 찾는 민박집이 있다. 시설이 좋다고는 못해도 가성비가 좋고, 무엇보다 넉넉한 인심이 좋다.


송파에서 10시쯤 만나 가평읍내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 찬거리를 준비한 후 미리 찜한 숯가마로 행했다. 주말이지만 단골들만 주로 찾는 곳이라 사람들은 많지도 적지도 않다. 가장 뜨거운 토굴의 입구를 가린 거적만 살짝 걷고 얼굴을 디밀었는데 숨이 턱 막힌다. 바로 포기, 가장 온도가 낮은 토굴에 들어가니 그나마 견딜만하다. 대부분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가족끼리가 아니면 부부끼리 왔는데, 우리만 남자 셋이다.

컴컴한 토굴 안에 앉아서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하면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며 연신 흐르는 땀을 닦는다. 두 시간 남짓 이 토굴 저 토굴 옮겨 다니며 뜨거운 맛을 보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민박집 마당이 어수선하다. 상황을 보니 김장을 마치고 정리하는 중이었다. 반갑게 맞이하는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숯가마 찜질방에서 땀을 많이 흘린 탓에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머니가 커다란 쟁반을 들고 찾아왔다.


세상에! 절인 배추 속은 개나리 색깔이고, 배추김치 양념에 버무린 무채는 빨갛게 빛나고, 굴은 진주색으로 반짝이고, 파전은 봄날의 뚝길색이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색색깔의 먹을거리가 놓인 쟁반은 가을빛 자체였다. 그리고 봄날 기다란 가시나무 꼭대기에서 따낸 두릅으로 만든 장아찌까지 그야말로 원님덕에 나팔 부는 격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가평의 특산물 잣막걸리도, 그건 잔칫집 음식이었다.


우린 숯불에 삼겹살을 구우려고 했던 계획을 수정하여 수육을 하기로 했다. 수육이 익는 동안 마을 산책을 하면서 저무는 가을, 가는 세월이 늙는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생각, 그리고 산등성이로 너머로 해가 숨어버리자 어둑어둑한 마을처럼 마음도 쓸쓸해질 즈음, 인덕션에 올려놓고 나온 수육이 생각났다.


방문을 열자 잘 익은 수육이 냄비 안에서 아우성이다. 썰어 담고, 와인도 따고... 쓸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모두 왕성해진 식욕으로 젓가락질에 바쁘다. 잘 절여진 배추 속에 수육과 굴을 얹고 양념을 곁들여 입에 쏙, 와인으로 입가심하 나니, '인생 뭐 있어? 먹는 게 남는 거지!',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추억이 쌓였다. 동무들아 건강하자. 2026년 가을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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