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만에 이루어진 만남
2018년 늦은 가을, 사무실 내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린다. 무의식적으로 전화기를 들고 "네, 00부입니다."라고 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혹시, 000 선생님이신가요?"
"그런데요. 누구시지요?"
"아, 네... 저를 누구라고 해야 아실지... 저~"
"너, Kㅇㅇ이지? 맞지? Kㅇㅇ."
"어떻게 알았어? 그동안 잘 지냈어? 너를 찾고 싶었는데 드디어 찾았네."
"그랬구나, 나도 가끔씩 네 생각하곤 했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 참, Lㅇㅇ은 연락되니?"
"그럼, 가끔 만나면 늘 네 얘기했지. 지금 당장 보자."
37년 만에 걸려 온 친구 K의 전화, 그의 목소리는 굵고 미성이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가락동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한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터라 가끔 가락시장에 가면 일부러 채소 시장을 둘러보곤 했었다. 아내는 사지도 않을 거면서 왜 돌아가냐고 물었지만 나는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니 이렇게 만나게 되나 보다.
전화를 끊은 후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37년 만에 친구가 전화를 했고 퇴근 후 만나기로 했다고 말하자, 주위 동료들은 잘 된 일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모두들 만나지는 말라고 했다. 30년이 넘게 연락이 없다가 찾아오는 친구는 거의가 보험을 들라거나 정수기 판매원이라나 뭐라나......
약속한 전철역 입구에 서서 '저 사람인가? 아닌가?'를 반복하며 기다리는데, 멋진 외제차가 내 앞에 멈추더니 "ㅇㅇ아! 얼른 타" 외쳤다. 사각형 차창 안으로 보이는 운전자는 모자를 썼지만, 얼굴의 윤곽은 기억 속의 모습과 오버랩이 될 정도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K가 미리 예약한 식당 주차장에 도착하여 서로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정말 뜨겁게 포옹했다. 식당 안에서 마주 앉은 그는 씩 웃으며 "내가 이렇게 변했어"라고 하며 모자를 벗었는데, 전등빛에 반사된 알머리가 반짝반짝 윤이 난다. 세월이 머리 위로만 관통했나 보다.
" Lㅇㅇ도 퇴근 후에 바로 이리 오기로 했으니 오면 같이 식사하기로 하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우리가 37년 만에 만났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하니? 앞으로 자주 보면......."
이때 Lㅇㅇ이 식당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 쪽으로 왔다. 옛날보다 살이 조금 쪘지만 하얀 얼굴은 그대로다. 37년 전 젊었을 때는 머리가 새하얀 색이었는데, 지금은 머리가 까맣다.
반갑게 포옹을 하면서, 내가 "옛날보다 더 젊어졌네." 하자, 나의 속뜻을 금방 알아채고는
Lㅇㅇ은 "젊은 사람 밑에서 먹고살자니 머리 염색했지."라고 하며 웃는다.
"근데 나를 갑자기, 어떻게 찾았어?"
"우리 둘은 쭉 일 년에 한두 번 보고 지냈는데, 만날 때마다 네 얘기했었거든. 그러다가 어젯밤에 인터넷에 네 이름을 검색하니 턱 나오더라고. 얼굴도 비슷하고 말이야. 그래서 Lㅇㅇ과 통화해서 찾은 것 같으니 내일 전화해 보겠다 했지."
"그랬구나. 일찍 검색해 보지 왜 어제서야 했냐? 니들이 머리만 좋았어도 10년 전에는 만났겠다."하고 하자
"네가 인터넷에 나올 줄 생각이나 했냐? 어제 해본 것만도 내 머리가 좋아서 그런 거지."
두 친구와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시간 날 때마다 강원도 바다, 제주도 올레길, 경상도 안동, 경기도 계곡 등을 다니며 그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서로에게 보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