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 어른들이 누구 닮았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고 한다.
"저는 아빠랑 판박이래요 "
그 당시에는 내가 아빠를 닮았다는 것이 좋았고, 그렇게 대답할 때 어른들이 웃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누가 물어보던지 간에 힘차게 대답을 하고 다녔고, 그때마다 어른들은 웃으며 똘똘하다고 칭찬을 하곤 했다.
세월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제일 좋아했을 사람은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나이 마흔이 넘어 얻은 늦둥이 막내아들. 본인이 장손이다 보니 많은 압박을 받으셨을 것이고, 그렇게 늦게나마 얻게 된 자식은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프셨을 것이다. 심지어 그런 아들이 누군가가 물어보면 자신과 판박이라고 하고 다니기까지 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정말 이쁜 자식이었을 것이다.
원체 무뚜뚝한 아버지 셔서 지금까지도 직접적인 애정표현이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내가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하면 항상 자신의 앞자리에 태원 동네를 한 바퀴 돌아주시던 기억과 목욕탕을 가게 되면 집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욕탕 안에서 팔던 바나나우유를 사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는 내가 받는 사랑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딸아이를 낳고 나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누구 닮았냐라는 질문이었다. 보통 첫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속설이 있다 보니 나오기 전부터 불안 불안했는데, 막상 나와서 처음 그 아이를 보게 된 순간 내가 판박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 딸인데..."
살면서 생김새에 대한 큰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던 나는 웬만하면 엄마를 닮기를 바라고 있었다. 특히, 아이의 성별이 딸임을 알게 된 순간부터는 간절한 마음이 더 컸다. 내가 이 얼굴로 살아보니 남자일 때는 어디 가서 큰 대접은 못 받아도 나름 다른 장점들로 커버할 수는 있겠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와 닮은 딸이 태어나면 그 아이의 삶에 큰 숙제를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빠 닮으면 잘 산다는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보였던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나의 누나인 고모를 닮았다는 말도 듣고, 여전히 나를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아기 사진 보면 팀장님 대신 강의해도 될 것 같아."
우리 회사의 한 직원이 아이의 사진을 보고 한 이야기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이 나를 닮았다는 말이 참 아쉽고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비록, 성별이 달라서 좀 힘든 세상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이쁘고 귀여운 모습으로 커주고 있고, 앞으로도 수십 번은 더 달라지는 과정이 남아 있기에 마냥 내 자식으로서의 애정만 더 돈독해지는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이를 보면 항상 필사적으로 찾아본다. 엄마를 닮았는지 아빠를 닮았는지. 심지어 어떤 경우는 시댁 쪽 가족들은 아빠랑 똑같다고 이야기하고, 친정에서는 엄마를 닮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의 얼굴은 계속 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성별에 정말 똑같이 닮은 2세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자라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 나름의 외모로 변해가고 진화하는 것 같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는 제일 큰 관심사 일수는 있어도 큰 의미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열심히 아이와 나의 공통점을 그리고 아이와 와이프와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눈이랑 코는 아빠를 닮았고, 입이랑 예쁜 이마는 엄마를 닮았다. 손과 발이 길고 큰 것은 나를 닮아서 키가 크기를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서 자신의 손을 빨고 발가락을 빨며 자신의 신체를 하나씩 탐색해보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온 아이의 구석구석을 관찰하며 우리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키워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어딘가를 닮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닮은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점점 더 커가며 닮아갈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신과 닮은 아이의 모습들을 찾아가며 또 다른 사랑의 이유를 하나씩 늘려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아이가 나를 더 많이 닮아서 더 이쁜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아이가 와이프를 더 닮았다고 해서 이렇게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더 닮고 누구를 덜 닮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서로의 모습을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서로의 닮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은 나에게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스코어이긴 해도 딸이니까 그래도 조금은 더 엄마를 닮았으면 하는 아빠의 이기적인 바람을 계속 간직하고 있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