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밤마다 환청을 듣는다

by 박희종

아이를 재우고 밥을 먹다가 보면 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 나만 가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경험은 비단 밥을 먹을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화장실에 씻을 때도 문득문득 들리는 소리에 물을 잠그고 동작을 멈추는 경우가 있고,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다가도 그러곤 한다. 나는 이런 현상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와이프도 요즘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거실에서 둘이 같이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와이프는 나에게 질문을 하곤 한다.

" 아기 울지? 울음소리 나지 않았어? "

"아니 환청이야! 잘못 들은 거야!"

워낙 서로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에 동시에 듣는 경우가 아니면 상대방이 바로 아니라고 말을 해준다.

이런 증상은 우리 아이가 조리원에서 집으로 오면서부터 발생했는데,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할 때 자꾸 환청을 듣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일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심각하게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와 와이프에게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요즘 8~9시 사이에 맘마를 먹고 잠이 드는데, 그때는 우리가 거실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안방에 있는 아기침대에서 재운다. 그러면 보통은 3시간 정도 잠을 자는데 간혹 중간에 깨서 찡얼 대거나 우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다가도 종종 뛰어가곤 한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와 와이프에게는 문득문득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와 와이프의 이런 현상이 아이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게 들어왔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가 잠 들고나면 주로 밀려있는 집안일을 하기에 바쁘지만 그래도 가끔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함께 보기도 하고, 시원한 맥주를 한잔하기도 한다. 아무리 예쁜 아이라고 할지라도 육아의 고충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육아의 퇴근이 이뤄지고 나면 나름 오붓한 시간들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만큼은 아이에 대한 신경보다는 편안하게 둘만의 시간에 집중하고자 하는데, 그럴 때마다 서로 번갈아가며 환청을 듣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우리에게 온 순간부터 우리의 머릿속에서 아이의 존재가 절대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나는 어머니와 큰누나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원래는 어머니와 나만 가려던 여행에 누나들도 같이 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기획했었다. 조카들의 학기 중이었기 때문에 조카들과 매형들은 빼고 누나들만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었는데, 아직은 너무 어린 조카 때문에 작은 누나는 함께하지 못하고 큰누나만 같이 가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여행에 어머니도 큰누나도 너무 좋아했지만,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도 큰누나도 부모라는 사실이었다. 여행 내내 좋은 곳을 볼 때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는 함께 오지 못한 작은 누나 얘기를 했고, 큰누나는 두고 온 조카들을 이야기했다. 나는 오랫동안 육아에 힘들었을 누나에게 아주 좋은 힐링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누나는 너무 좋은 만큼 두고 온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함께 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얼마 전에 와이프와 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만약에 나중에 우리 아이를 누가 봐준다고 하면 우리 둘만 여행 갈 수 있을 것 같아?"

" 아니 못 가지. 애기를 두고 어디를 가"

" 아니 좀 커서 한 4~5살 되면 말이야"

"그래도 못 가지. 눈에 밟혀서 어떻게 가"

아이는 우리에게 온 지 고작 170일이 채 안됐다. 나는 아이가 없던 세상에서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 170일도 되지 않은 시간으로 아이는 나의 나머지 모든 삶에 들어와 사라지지 않을 예정이다. 나는 항상 더 좋은 상황을 상상하며 미래를 꿈꾸곤 한다. 하지만 이제 아무리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고 그려간다고 해도 아이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상상조차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아이는 우리의 삶이 되어버렸고, 나의 의식과 무의식에 가득 자리 잡고 있다.

나는 화장실에서 씻을 때마다 들리는 환청은 원인을 알고 있다. 고무로 만들어진 욕실화가 걸을 때마다 삐~익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먼 방에서 우는 아이의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양치를 하다가도 머리를 감다가도 수시로 얼음이 되곤 한다. 알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이고 울음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아니 조만간 이 환청이 없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거나 걷기 시작해서 나를 쫒아다니기 시작하면 이런 착각은 없어질 것이다. 다만, 이 환청이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또 다른 감각과 촉으로 아이를 인지하고 신경 쓰고 있을 것이다. 이미 나의 모든 식스센스는 아이에게 향하고 있고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