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뒤집어 버리셨다

일생일대의 사건

by 박희종

요 며칠 우리는 참 많이 힘이 들었다. 한동안 8시에 잠들어 주던 우리 아이는 요 며칠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고, 낮잠도 아주 짧게 짧게 자다 보니 엄마의 피곤도 극에 달해 있었다. 심지어 어제는 새벽 2시에 칭얼대기 시작해서 모유를 먹였는데 먹고 나서 잠들어야 하는 아이는 품에서는 자다가 내려놓으면 칭얼대고, 다시 또 안아주면 자다가 내려놓으면 칭얼대고를 2시간가량하다가 결국 4시가 넘어 모유를 한번 더 먹고야 잠이 들었다. 우리는 아이가 이쁜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점점 피폐해졌고,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엄청난 소식이 들렸다. 아이가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다. 요 며칠 슬슬 뒤집기를 시도하던 아이는 실패할 때마다 땡강을 피웠고, 결국 그 스트레스가 잠을 잘 못 들게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성공을 한 것이다.

"이얍! 기합과 함께 뒤집기 성공했어요"

와이프의 신나는 소식은 나도 들썩이게 만들었고, 회사에서 몰래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게 되었다. 심지어 요 며칠 계속 컨디션이 안 좋았던 우리 와이프의 한마디

"머리 아팠는데 설이 보고 나은 거 같아"

그동안의 피곤이 마치 가시는 것 같다는 한마디가 이 아이의 존재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실은 우리 부부에게 아이의 뒤집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뒤집기가 좀 느리다고 해서 평생 못 뒤집을 것도 아니고, 실제로 뒤집기를 하지 않고 바로 기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기 때문에 간절히 기다리거나 초초하게 바라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뒤집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즐거운 사건이 되었다.

어쩌면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아주 사소한 사건일지도 모른다.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뒤집기는 정말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 너무 당연한 과정일 것이고, 누구나 지나는 통과의례와도 같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행동이 엄마에게는 두통이 가실 만큼 커다란 사건이고, 아빠에게는 화장실에 가서 몰래 동영상을 재생하게 만드는 사건인 것이다.

우리는 아이의 성장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이의 사소한 성장의 모습들이 부모의 커다란 추억으로 하나하나 쌓여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대단하지도 않은 과정들이 부모들에게는 순간순간을 모두 담아두고 싶은 특별한 추억들이 된다. 나는 어릴 적 사진들이 많지는 않다. 이사를 많이도 다녔던 탓에 어린 시절 많은 추억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사진들이 그렇게 많이 아쉽지는 않은 것이 나에게 그 어린 시절의 사진들은 어렴풋한 기억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어릴 적 사진은 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없다고 해서 많이 아쉽거나 슬프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몇 장 남지 않은 사진들을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참 다르시다. 그 순간순간의 기억들을 참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시며, 그 날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 흐뭇하게 추억을 이야기해주신곤 한다. 그러니 어머니에게는 많지 않은 그 사진들이 소중하시고, 잃어버린 사진들이 그렇게 아까우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어릴 적 추억은 우리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부모님들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지 않던 순간들이라도 우리의 부모님들에게는 평생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컷 한컷 소중히 셔터를 누르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과정이 남아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설 것이고, 뒤뚱뒤뚱 걷기도 할 것이다. 아마 곧 아빠! 엄마! 우리의 혼을 쏙 빼놓을 첫 말을 시작할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를 꺼내 연신 저장하고 기록하고자 할 것이다. 나는 처음 아이의 사진을 찍으면서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사진을 보여주면 무척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사건을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더 흐뭇하게 웃으면 좋아할 사람은 나와 나의 와이프일 것이다. 이 모든 아이에 대한 기록은 결국 우리를 위한 추억을 만들어 가는 작업인 것이다.

아이는 지금도 아주 작은 것들로 우리의 삶을 뒤집어 놓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이 엄마 아빠의 삶을 아주 행복하고 뿌듯하게 꽉 채워주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그 수많은 사건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뒤집어 놓을지 너무나도 설레고 기대된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그 소중한 사건들이 나중에 오랜 시간이 흘러 나와 와이프가 지금의 순간을 추억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아마도 그때는 지금 피곤하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모두 잊은채 지금의 이 행복한 추억들만 한가득 떠올릴듯 하다.